[상상붓다] 강원환경설치미술제 성민 스님과의 차담

강원환경설치미술제 조직위원장 성민 스님과의 차담예술의 공성空性

2018-10-26     마인드디자인(김해다)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 조금은 선선해진 날씨에 나들이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홍천으로 향했다. 
백락사百樂寺 주지 성민 스님이 2006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13회째 주최해온 강원환경설치미술제를 보기 위해서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도량을 가꾸는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지는 백락사와 주음치리라 불리는 마을에는 그 이름처럼 백 가지 즐거움이 숨어 있었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각양각색의 조각품들을 실컷 구경하고 난 한 주 뒤, 조직위원장 성민 스님과의 차담을 위해 다시 백락사를 찾았다.

사진제공 : 강원환경설치미술제 조직위원회

|    일상을 예술처럼

경내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보이는 작품은 김도현 작가의 ‘자유로운 새(The Free Bird)’이다. 한 마리의 새가 석탑 위를 날아가는 순간을 나무젓가락을 집적하여 포착한 조각이다. 바쁜 일상 속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나무젓가락들이 새가 되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수행과 자유가 부처님의 사리나 경전을 모셔놓는 탑의 전통적인 상징성 위에서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대만에서 온 보센 리아오Bosen Liao와 용창 첸Yungchang Chen이 대만 원주민들의 전통 공예 방식으로 대나무를 엮어 만든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박상덕 작가의 작품 ‘문門’이 보인다. 門의 글자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작품의 형태는 사방이 입구이고 동시에 출구이다. 안과 밖이 둘이 아님을 말하는 현대판 불이문不二門이다.

강원환경설치미술제는 하얗고 텅 비어있는 갤러리 공간도 아니고, 도량과 숲의 환경에 맞추어 작가가 직접 제작, 설치하는 상당히 공이 많이 들어가는 방식임에도 사찰 도량과 뒷산에는 올해 초청작가 33인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전 작가들이 남기고 간 작품들까지 약 50여 점의 작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꽤 큰 규모다. 어떻게 시작된 미술제일까?

일은 성민 스님이 이필하 교수(건국대학교 예술대학장)와 차를 한잔 기울이다 시작되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 아름다운 뒷산을 보고 미술 전시를 한번 해 보자는 이필하 교수의 제안을 스님은 ‘쿨하게’ 승낙했고,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전시에서 스님은, 미술에 반해버렸다.

2006년에 치렀던 첫 전시는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추어 이른 봄 개막했다. 새순이 돋기도 전에 설치를 마친 작품들은 봄의 기운이 만연해짐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스님은 “녹음이 우거지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술 작품이 하루하루, 아니 순간순간 다르게 보이는 경험은 놀라웠습니다”며 첫 전시에서 느꼈던 경외감을 회상한다. 그 감동이 13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50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을 초청하여 전시를 꾸리게 된 이유였다.

스님에게는 생활공간이었던 도량과 뒷산이라는 환경을 미술작품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는 스님은 농사를 지을 때에도, 사찰을 꾸밀 때에도 정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일상이 예술이 됨을 한 번 맛보니, 농사도 그렇게 짓게 되었습니다. 묘목을 반듯하게 심지 않아도 수확이야 잘 되겠지만, 정성을 다해 일을 하자 마음이 달라지더라고요” 하는 스님은 행복해 보였다.

사진제공 : 강원환경설치미술제 조직위원회
사진제공 : 강원환경설치미술제 조직위원회

 

|    사라짐을 내포하는 조각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열리는 행사지만 작가 섭외부터 설치까지 일 년 내내 신경을 써야 한다. 초청한 작가들에게 숙식과 작품 제작에 소요되는 재료비, 외국 작가의 경우에는 항공료까지 지원해주며 꾸려온 행사는 미술에 대한 웬만한 애정 없이는 힘들 것 같다. 스님에게 어떤 작품이 제일 좋은지 물었다.

“멀리서 외국 작가들을 초청하다 보니 미술제가 끝나도 작품을 회수하러 올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해서 주음치리에는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작품들도 몇 있습니다.” 4년째 숲을 지키고 있는 재독 미술가 현혜성의 돌로 만든 방석은 스님이 특히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방석에는 가을이면 낙엽이 앉고, 겨울이면 소복한 눈이 앉는다. 만물에 깃든 불성을 상기시키듯 그 위에 올라가 있으면 무엇이든 귀해 보인다. 

한 번은 일본에서 온 작가 카쥬나리 사코가 작품 설치를 위해 사다리를 타다가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스님은 서둘러 작가를 응급실로 데려갔고, 회복한 작가는 작품 설치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 한해 더 미술제에 참가하게 된 작가는 특별한 작품을 준비했다. 히로시마 원폭지에서 살아남은 나무의 묘목을 가지고 와 심은 것이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평화의 상징이었던 작은 묘목은 한창 한일관계가 시끄러웠던 시기여서 더욱 의미 있었다. 늦여름에 심은 탓에 정성스러운 보살핌에도 결국 뿌리내리지는 못했으나, 스님에게는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스님에게 좋은 작품이란 ‘보너스’와 같은 것이다. 스님은 “지금 법당 옆에 있는 ‘사이를 가다(Go Between)’를 만든 김선득 작가는 고인이 되었지요.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 남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며 조용히 차를 따랐다. 작품을 하는 순간순간에 푹 빠져 하다 보면 결과물이 좋을 때도 좋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결과물이야 어찌 되었든 몰입했던 그 순간들이 바로 행복이었으니 결과물이 좋지 않아도 좋고, 어쩌다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보너스가 생긴 것이니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스님에게 결과는, 과정에 비하면 공허하다.

사진제공 : 강원환경설치미술제 조직위원회

|    예술은 유아독존唯我獨尊

예술행위의 결과물이 공허하다면, 좋은 작품은 단지 보너스일 뿐이라면, 그럼 예술은 무엇일까. 우리는 종종 아주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예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지리산 풍경이나 미모의 여성처럼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예술인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현대미술이라는 딱지를 붙여 전시된 작품들은 꼭 쓰레기 같이 보이며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것들도 많으니 점점 더 혼란스럽다. 예술가의 수만큼 예술의 정의는 수만 가지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다’고 했고 미술 비평가 아서 단토는 ‘우리가 아는 예술, 정의내릴 수 있는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기도 했다. 

스님에게 예술이 무엇이냐 물었다. 스님의 대답은 확실했다. “유아독존 하시라.” 화두를 드는 것은 화두를 통해 몰입하기 위함이지 화두 그 자체를 위함이 아니듯, ‘예술은 이런 것이다, 아니다 저런 것이다’ 하는 수많은 논쟁 속에서,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들여다보는 것은 이제 그만 멈추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따라와, 내가 이렇게 정리했으니까!’ 하고 자신만의 예술에 몰입하라는 뜻이다.

예술, 그 고귀한 이름에만은 자성自性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의식 깊은 곳의 기대가 조용히 물러갔다.                                                                                                          

2019 강원설치환경미술제

기간 : 2019년 8월 18일 ~ 9월 8일 
장소 : 홍천 백락사 및 주음치리 일대
홈페이지 : www.gwinart.org

 

이달의 볼 만한 전시  

 

2018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기획전
아라아트센터, 서울 | 2018. 10. 24 ~ 2018. 10. 30 | 관람료 : 무료 
대한불교조계종이 개최하는 45년 역사의 불교계 최고 권위의 미술대회 및 전시회. 올해는 ‘자비와 평화’를 주제로 역대 수상작을 비롯하여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불교미술작품들을 선보인다. 생동하는 한국 불교미술의 동향을 한자리에서 살펴보자. 문의: 02)733-1981

‘창령사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특별전
국립춘천박물관, 춘천 | ~ 2018. 11. 25 | 관람료 : 무료
오래전 폐사된 절터에서 발굴된 영월 창령사 오백나한을 주제로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낸 전시. 꾸밈없이 수수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는 오백나한, 그 신묘한 힘을 느껴보자. 문의: 033)260-1500

최정화 – 꽃,숲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전시실, 미술관 마당, 서울 | ~ 2019. 2. 10 | 관람료: 4,000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듯, 평범한 일상의 사물도 화려한 예술이 될 수 있다. 7,000여 개의 식기가 모여 탄생한 <민(民)들(土)레(來)>를 비롯하여, 무쇠 솥, 항아리, 밥공기 등으로 쌓아 만든 탑 앞에서 우리 안에 내제된 불성을 느껴보자. 문의: 02)3701-9500

장욱진과 백남준의 붓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1층 전시실, 양주 | ~ 2018. 12. 2 | 관람료: 5,000원
장욱진과 백남준의 작품을 선禪의 관점으로 되짚어보는 전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간결하고 압축적인 장욱진의 그림과 예술이라는 개념마저 해체하고자 했던 백남준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예술로 던지고자 했던 화두를 발견해보자. 문의: 053)661-2331

 

마인드디자인 김해다
한국불교를 한국전통문화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고민하는 청년사회적기업으로, 현재 불교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서울국제불교박람회·붓다아트페스티벌을 6년째 기획·운영하고 있다. 사찰브랜딩, 전시·이벤트, 디자인·상품개발(마인드리추얼), 전통미술공예품유통플랫폼(일상여백) 등 불교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접근하며 ‘전통문화 일상화’라는 소셜미션을 이뤄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