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내 가족처럼 여기는 봉사와 헌신의 현장"

[특집]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법당

2018-10-26     유윤정

자비와 연민의 봉사현장 ‘병원법당’

우리 불교계에 처음으로 환자들을 위한 법당이 문을 연 것은 1973년 해인사 정빈 스님에 의해 창건된 국립마산결핵요양원내의 관해사觀海寺가 처음이다. 그후 1987년 서울대병원에 종합병원 최초의 구내 법당이 생긴 이래 여러 병원에 법당이 운영중에 있다. 병원은 생로병사의 고통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중생들의 현장이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병원에서 치료받고,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자비와 연민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다. 불광은 대표적인 병원 법당 5곳을 찾아 환자 곁을 지키는 스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01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법당  유윤정
02    서울특별시 북부병원 법당  김우진
03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법당  유윤정
04    서울대학교병원 법당   유윤정
05    인제대학교 해운대 병원 법당  김우진

 

누구든 내 가족같이 대하는 자비행 –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지하 2층 법당을 찾아가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연녹색 법당 조끼를 입은 보살님을 만났다. “법당에 가시는 길이시죠? 저를 따라오세요.” 부처님 계신 곳까지 앞장서서 이끌어 인도하는 뒷모습이 따뜻하고 든든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병원법당에는 불안에 떨리는 마음을 쉴 수 있도록 언제든 다정히 손을 잡아주는 스님과 12명의 봉사자들이 있다. 이들이 복도를 걸으면 걸음마다 자비가 피어난다.

사진 : 최배문

|    또 하나의 가족

매일 두 번, 오전과 오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법당 봉사자들의 활동이 시작되면 병원 내 800 병상은 밝은 미소로 가득 찬다. 병동을 돌며 환자들에게 안부를 묻고 자비의 손길을 내미는 봉사자들 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법당은 지난해 2017년 11월 처음 개원했다. 채 1년이 되지 않은 법당이지만 지도법사 지인 스님의 원력과 법당봉사자들의 활동은 여느 병원법당 못지않게 원대하고 활발했다. 오히려 이제 날개를 펼쳤기에 더욱 에너지 넘쳤다. 스님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수시로 환자들을 살핀다. 봉사자는 하루 두 번 병동을 다니며 불교 간행물을 비치하고 쾌유기도 접수와 법당 안내를 하며 마음 안식처 법당을 소개한다. 

“법당을 처음 개원하기까지 선배스님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스님들께서 8년 동안 호스피스 봉사도 하셨어요. 병원전법단 단장스님이 정말 많은 애를 써주셨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병원 법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된다고 하세요. 병원에 법당이 있고 스님이 나를 찾아온다는 사실에 ‘잃어버린 부모를 찾은 것처럼 위로받았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지인 스님이 말하는 봉사자들은 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봉사자들은 매일 병실을 돌면서 의사를 표현한 이들의 인적사항을 적어 축원 명단을 만든다. 부처님 가피로 건강하기를 바라며, 법회 때마다 함께 축원을 올린다. 누구든 내 가족같이 대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봉사자 이정은(63) 씨는 병실을 돌면서 팔이라도 한 번 더 주물러드리려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봉사자와 환자가 한 가족 같다면 스님과 봉사자들은 한 몸 같다. 법당 봉사자들은 매일 휴대폰 단체 대화방을 활용해 환자들과 있었던 일들을 공유한다. 봉사자가 교대로 활동하기 때문에 병실마다 대화의 흐름이 끊기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봉사자 하풍자(75) 씨는 13층 중환자실에서 만난 환자의 이야기를 대화방에 공유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라운딩 봉사를 시작한 첫날, 법당에서 왔다고 하니 몹시 반가워하시는 보살님이 계셨어요. 유방암 4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간호하던 남편도 뇌출혈로 입원을 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간호하는데 정말 애절했습니다. 아프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들지 말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길 권했어요. 틀림없이 나을 것이라고 용기를 주고 인사하고 나와서는 대화방에 알렸습니다. 모두가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쾌유를 발원했어요.”

며칠 뒤 링거를 들고서 법당에 찾아온 보살님의 얼굴이 밝아져 있었다. 마음이 단단해지면 병세가 좋아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이런 일들은 봉사자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환자들이 병을 이겨내는 모습을 볼 때 더욱 힘이 났다. 권혜숙(64) 봉사 팀장은 한 불자가 “부처님이 스님을 보내주셔서 병을 낫게 해주시려나 봐요” 하며 삶의 의욕을 되찾기 시작했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전했다. 

사진 : 최배문

|    마지막 순간의 생각이 다음 생을 정한다

“불자들이 병원법당에서 봉사하는 일을 두려워해요. 환자들에게 내가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용기 내어 온 봉사자에게 병실 라운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자의 관점에서 돌봄의 의미에 대해 짚어줘야 해요. 조심해야 할 부분과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불교적 관점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봉사자들의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 첫 번째 일이었다. 조계종 병원전법단 교육부장이기도 한 지인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1대1 맞춤 교육을 시작했다. 불자에게만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자리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덕에 이들은 짧은 시간에도 소통을 이끌어내는 전문가들이 되었다.

“몸이 무너지면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요. ‘나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슨 업 때문에 병에 걸렸나’ 하고요. 그래서 대화로 풀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또 환자와 가족은 서로의 마음을 직접 전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럴 때 다리의 역할을 해줍니다. ‘어머니 입원하고 계신데 마음이 어떠세요.’ ‘따님이 직접 봐주시니까 어떠세요’ 하고 질문하면서 서로 직접 나누지 못했던 가족의 생각을 함께 소통하게 해줍니다.”

지인 스님은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더 병원 포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처님 법을 잘 전할 수 있는 봉사자가 늘어야 불자들의 투병 생활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임종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사후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 없이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도 더더욱 병원 포교가 중요하다고 했다.

“불자가 병원에서 개종하는 경우가 30%나 됩니다. 특히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하시는 분들과 가족의 개종이 많아요. 이웃종교에서는 그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한 예로, 이웃종교인이 한 거사님에게 임종 기도부터, 장례식, 병원비까지 대주겠다며 개종을 권유했던 일을 설명했다. 가족의 요구로 개종한 보살님도 있었다.

“거사님은 개종의 생각이 없으셨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 진지하게 상담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라디오 후원 프로그램에 거사님을 소개해 경제적 어려움을 돕고, 임종하셔도 입관부터 49재까지 기도해드리겠다고 약속했어요. 거사님은 불자로서 편안하게 임종에 드셨습니다. 자녀의 의지로 개종한 보살님은 나중에 제게 따로 ‘제가 갈 때 스님이 염불해주세요’ 하고 조용히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개종을 하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마지막 순간의 생각이 다음 생을 정한다는 말이 있지요. 돌아가실 때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종교의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병원법당에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인 스님은 강조했다.

“이제는 우리도 병원법당에서 환자를 만날 때 영적돌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다른 종교계처럼 영적돌봄에 대한 교육이 자리 잡아야 스님들과 봉사자들의 질적 향상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영적돌봄 교육으로는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 임상교육과정 등이 있습니다. 종단의 관심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지인 스님은 병원법당만큼 좋은 수행처가 없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게는 나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는 수행처가, 봉사자들에게는 자비심을 키우는 수행처가, 직원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복을 지을 수 있는 수행처가 된다는 것이다. 스님에게도 병원법당은 수행처였다. 

“이만큼 자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수행이 없습니다. 자비심은 부처님 공부만 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일으키는 행위와 마음으로 생기죠.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와 자비는 절대 둘이 아니니까요.”

일산병원 법당에 앉아 있는 동안 스님과 봉사자들에게서 느낀 감정은 무한한 따뜻함이었다. 이 포근한 따뜻함의 중심에는 부처님이 앉아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