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나를 흔들다] 참 사람의 그윽한 향기

2018-10-01     문영섭
그림 : 박혜상

|    7박 8일, 입은 다물고 마음은 들여다보기
참사람의 ‘향기’가 나와 가족에게 머물고 있다. 그 향이 스미어 나타난 변화는 지속되고 있다. 변화는 삶에 다양한 인연으로 다가온다. 미황사 ‘참사람의 향기’는 행복한 삶의 기회를 주는 인연이었다. 2017년 6월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후 가족들과 템플스테이를 했고, 아이는 겨울 ‘한문학당’에 참가했다.

‘화’를 조절하고 싶어서 불교와 참선을 알아보았다. 불교의 마음공부를 통해 화를 다스릴 수 있다고 들었다. 실천방법은 참선이었다. 혼자 책을 보면서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참선 때 졸았고 딴 생각을 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움이 필요했다. 그때 미황사 수행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7박 8일 동안 입은 다물고,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법문도 들었다. ‘화’라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에 대해 알아갈수록 ‘화’는 지나가는 것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많은 것들이 지나가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으라는 것도 배웠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 행동은 바뀌었다. 화는 났지만, 지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호흡 몇 번으로, ‘화’에 몰입하기보다 상대방과 ‘대화’를 했다. 부하직원들과는 싫은 소리건 좋은 소리건 담담하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싫은 소리를 못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속으로는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이런 태도가 ‘화’로 이어졌었다.

습관적으로 마시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커피가 나빠서 끊은 것은 아니다. 마시지 않았을 때 몸이 반응하는 중독을 끊고 싶었다. 또한 허전한 느낌을 받으면 습관적으로 하던 스마트폰도 내려놓고 싶었다. 화면을 볼 수 없도록 주머니를 사서 넣었다. 소리도 무음으로 해 놓고, 필요할 때에만 확인했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필요한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스마트 폰 화면이 아닌 상대방의 눈을 보며 이야기 했다.

행동변화는 아이 교육에서도 나타났다. 실수나 못 알아듣는 것은 ‘화’를 낼 부분이 아니었다. 실수를 반복하는 것도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런 실수를 통해 알아나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아이는 아빠가 ‘참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와 미황사에 관심을 가졌다.  질문을 했고, 경험해 보고 싶어 했다.

 

|    겨울 한문학당, 그리고 금산
여름 끝자락에 가족은 미황사를 찾았다. 처음 절을 찾는 아내는 아침 예불 후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을 잊지 못했다. 초가을 바람이 풍경을 흔들어 만든 소리와 새벽의 선선한 고요함이 아내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었지만 혼자라고 느꼈다고 했다.

아이는 고양이를 따라다니거나 책을 읽었다. 아내와 나는 오전에는 둘레길을 걸었고, 오후에는 책을 읽었다. 그 중 하루는 내내 비가 내렸다. 뒷문을 열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 쳐다보면서 대화하고 책을 읽었다. 서로의 내면에 시선을 던진 시간이었다.  

미황사에서 머문 경험이 좋아 아이는 겨울 한문학당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신청서를 접수하여 결과를 기다렸다. 참가 합격통지를 받아 모두가 설레었다. 겨울방학이 되었고, 아이를 나주역에서 셔틀을 태워 보냈다. 부모와 떨어진 가장 긴 7박 8일의 시작이었다.

아이가 떠난 집은 적막했다. 저녁 8시가 되면 올라오는 미황사 게시판의 사진을 통해 녀석을 확인했다. 항상 웃고 있는 모습. 아이들과 장난치는 모습. 한 장 한 장이 소중해서 몇 번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2018년 1월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한문학당 마치는 날도 눈이 내려 차가 미황사 진입로 입구에서 미끄러졌다. 구난차의 도움을 받아 도로변에 주차해 놓고, 걸어서 올라갔다. 눈은 달마산 초입을 새로운 세계로 만들었다. 차로 올라갔다면 신경이 곤두서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느긋하게 보며 걸었다. 

아이는 눈에 얼은 운동화를 신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마당을 여기 저기 뛰어다니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내 우리를 발견하고 뛰어와서 안겼다. 안경이 바뀌어 있었고 목은 쉬었다. 쓰지 않던 사투리가 입에서 나왔다. 친하게 지냈던 형이 부산에 산다고 했다. 단 하루도 즐겁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했다. 아이는 예불문과 발원문, 반야심경을 모두 외웠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이가 말한 한문학당에서의 가장 좋은 순간과 가장 위기의 순간은 짬뽕을 먹을 때였다고 했다. 짬뽕을 먹는 것이 너무 좋았지만, 혹시 스님이 전화해서 해물을 빼달라고 했을까봐 크게 걱정했다고 했다. 아이는 금산이라는 법명을 받고, 아쉬웠지만 형, 동생들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    아무것도 고칠 점이 없다
금산은 관심사가 특이해서 공유할 친구가 많지 않다. 친구들에게 자기 관심사를 먼저 말해서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미움에 특별히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한문학당 이후 아이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자기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학교생활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는 확실하게 나타났다.

학교에서 아이의 특성을 걱정한 젊은 담임선생님은 조금 무리한 방법을 통해 아이를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고자 했었다. 아이를 혼자 세워두고, 친구들에게 칭찬과 고칠 점을 듣는 시간을 갖게 한 것이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금산의 고칠 점을 이야기 했다. 금산은 하나하나 들었고, 자기 생각과 다른 부분은 차분히 대답했다. 그리고 고쳐야 할 부분은 고치겠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금산에게도 기회를 주어 친구들이 고칠 점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했다. 금산은 친구들에게는 아무것도 고칠 점이 없고, 자기만 바꾸면 된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다른 부모를 통해 들었다. 이야기를 전한 아이는 평소 금산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던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금산이 친구들은 고칠 점이 없다고 이야기한 부분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도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대단했다고 했다. 자기가 그런 자리에 섰다면 울었을 거라고도 했다. 의젓한 모습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저희들은 우선 금산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고, 의젓한 태도를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왜 친구들에게 고칠 것이 없다고 이야기했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놀라웠다. 사람들에게 단점을 이야기해서 그것을 고칠 사람은 없으며 부처님도 오직 스스로 고치라고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기간은 짧았지만 순수한 마음에게는 큰 가르침으로 스며든 <한문학당>의 힘을 보았다.

선생님의 미숙하고 무리한 대응은 단호한 편지로 의견을 전달했다. 사과를 받았고, 일을 불필요하게 크게 만들어 아이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화’를 내지 않고 사실 자체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했다. 불필요한 감정낭비는 없었다. 선생님과 학부모,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이 처리되었다. 금산은 절친한 친구가 생겼고 반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미황사 참사람의 향기, 새벽 30분 명상, 그리고 불교철학 독서는 나와 가족의 삶을 바꾸었다. 마음의 변화는 행동을 바꾸었고 다시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처음에 내었던 그 마음, 참사람의 향기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던 그 순간이 소중하다. 새롭게 다가온 인연들이 고맙다. 나와 아들을 도반으로 만들어 주시고, 담원과 금산이라는 소중한 법명을 주신 금강 스님에게 감사드린다. 언제나 갈 수 있는 미황사라는 도량에 감사하다. 같이 수행하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어느 순간에도 ‘수행자’라는 것을 잊지 마라는 법문을 실천하겠노라 다짐한다. 만나는 이들에게 좋은 향기 될 수 있도록 가정, 직장, 삶에서 정진하겠다.           

 

문영섭. 법명은 담원, 제103회, 109회 미황사 참사랑의 향기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