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견문록]유럽 마음치유센터 탐방기

우리는 만나기 위해 떠난다

2018-10-01     오용석

우리의 삶은 떠남이다. 매일 일터로 혹은 누군가를 만나러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쉬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그러나 다시 떠나지 않으면 삶은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생존과 죽음이라는 미망의 환영 속에서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봄을 찾아 멀리 떠났다가 집에 와보니 봄소식이 와 있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며 직장과 가족 그리고 친구와 낯선 이들의 주위를 돌면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찾아 헤매는 삶은 초라하다. 반대로 어떠한 갈구하는 마음이 없을 때 우리의 떠남은 새로운 만남과 열림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진 : 오용석


|    마음과 관련된 동서양의 다양한 담론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는 2010년 한국연구재단의 HK연구 사업에 선정되어 동서양의 마음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담론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유럽 일정은 마음인문학연구소의 교수 10명과 기자 2명이 동행하였다. 유럽 탐방의 목적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탐색하고 그것을 우리 삶에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탐방이 단순한 방문이나 인터뷰 수준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를 비롯한 교수진들은 탐방에 앞서 독일-스위스(경유)-프랑스-영국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짜고 방문할 센터들을 나누어 미리 위치, 연혁, 기관의 특징과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인터뷰할 질문 등을 준비하였다. 

내가 맡은 곳은 독일의 불이선원(Zen-Center Regensburg)과 아야 케마(Ayya Khema, 1923~1999)가 설립한 숲속 수도원인 메타 비하라Metta Vihara 두 곳이었다. 전체 일정은 7월 4일에서 7월 18일까지의 15일이나 되는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독일의 경우 레겐스부르크 발도르프 학교(Freie Waldorfschule Regensburg), 불이선원(Zen-Center Regensburg), 벨텐부르크Weltenburg 수도원, 네팔 히말라야 파빌리온(Nepal Himalaya Pavilion), 디트푸르트Dietfurt 프란치스코 수도원, 노르트발트 젠도Nordwald Zendo이며, 프랑스는 떼제Taize 공동체, 파리 불교아카데미, 영국은 아마라바티 명상센터(Amaravati Buddhist Monastery), 담마디파 위빠사나 센터(Dhamma Dipa Vipassana Meditation Center), 카큐 삼예 종(Kagyu Sammye Dzong)의 모두 11곳이다. 이 가운데 메타 비하라Metta Vihara는 중도에 장소를 찾지 못해 방문하지 못했다. 위의 센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현각 스님이 설립한 불이선원(Zen-Center Regensburg), 떼제Taize 공동체, 아마라바티 명상센터(Amaravati Buddhist Monastery)이다. 

사진 : 오용석

|    독일에서의 참구, 호흡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독일에서 방문한 명상센터는 대부분 기독교의 전통을 중시하지만 특히 일본식의 선불교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 전통에 일본 선불교의 수행 방식을 도입해서 이 둘을 조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의 쇠퇴는 동양의 선불교를 통해 새로운 활기를 얻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선뿐만 아니라 기공, 태극권, 요가, 꽃꽂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명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현각 스님의 불이선원(Zen-Center Regensburg)은 선불교 수행의 핵심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중시했다.

불이선원은 2016년 3월에 개원하였다. 여기에서는 한 달에 한 번 3일간 용맹정진을 하고, 여름에 한 달 동안의 하안거, 겨울에 석 달 동안의 동안거를 한다. 생활은 침묵과 좌선 그리고 발우공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선을 배우기 위해 참석하는 사람들이 내는 약간의 보시금에 의지해 소박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선방에서 현각 스님과 함께 좌선과 경행을 번갈아 가며 수행하고 중간에 발우공양을 하였다. 발우공양을 한 후에는 선원 주변을 잠시 산책하고 다시 좌선과 경행을 하고 오후 4시에 방선放禪 하였다. 스님은 좌선 중간 중간에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듣는 그것이 무엇인가?”, 또 “호흡을 하는 이것은 무엇인가?”를 회광반조하여 의심을 일으키도록 지도하였다. 

스님이 우리에게 들려준 법문은 여러 측면에서 흥미로웠다. 그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가 마음바탕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소통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마음바탕은 우리 자신에 대한 간절한 의심을 통하여 자각되고 드러난다. 매 순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삶 자체, 삶과 죽음에 대한 자각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강력한 의심을 통해서 강화되고 우리를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나아가게 한다. 

현각 스님은 인터뷰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스승인 숭산 스님은 1949년 21살 때 깨달음을 얻고 정진하다가 1972년 미국의 LA로 건너가 교화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 스님은 아무에게도 인가를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스님이 첫 번째로 인가를 해 준 사람은 한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이 여성은 남편과 함께 미국에 건너와 24시간 주유소를 경영하던 아이 셋을 가진 주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강도에게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강렬한 의심에 사로잡혔다. 남편의 죽음 자체가 커다란 의문으로 다가온 것이다. 불교에 대한 지식과 수행 경험이 전무하였으나 오로지 삶과 죽음에 대한 커다란 의심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스님은 화두의 본질은 형식화된 1,700 공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와 삶에 대한 궁극적인 의심 자체가 바로 화두이자 불교의 본질이라고 역설하였다.

사진 : 오용석

|    부드럽게 노래하고 순수하게 기도하라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2박 3일을 머물렀다. 굉장히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가족, 그룹 등이 방문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지만 공동체 시설은 청결하고 사람들은 고요한 활기가 있었다. 

도착한 첫날 우리는 저녁 기도에 참석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성가와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순수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신을 찬양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몸의 세포들이 전율하는 느낌이 밀려왔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둘째 날 우리는 이 공동체의 신부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공동체가 평화와 비폭력을 추구하고 침묵과 봉사를 중시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사람들이 기도를 통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소박하게 자신들의 삶을 돌보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물론 내게는 신에 대한 믿음이나 개념은 없었지만 종교적 감흥과 생활이 어떤 식으로 우리 삶 속에서 표현되는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 방문한 곳은 아마라바티 명상센터(Amaravati Buddhist Monastery)이다. 이곳은  KBS에서 제작한 다큐인 ‘대장경 천년특집 다큐멘터리-다르마’의 제 2편 ‘치유’(2011년 11월 16일 방영)에 등장하는 사원이다. 이 다큐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유매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과 영국의 태국식 불교 사원인 아마라바티 불교사원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명상 수행의 핵심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스님은 한 비구니스님과 비구스님이었다. 모두 친절하고 자비로운 사람들이다. 점심 공양을 마친 후에는 이 두 스님과 인터뷰를 하였다. 우리의 많은 질문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자상하게 대답해 주신 점에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사찰은 기본적으로 비구와 비구니가 함께 공주公住하지만 엄격한 계율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스님들의 스승은 영국인으로 가장 먼저 태국의 숲속 상가의 전통을 전한 아잔 수메도(Ajahn Sumedho, 1934)이다. 아잔 수메도는 아잔 차(Ajahn Chah, 1918-1992)의 제자이다. 아마라바티 사원은 기본적으로 화합을 중시하고 아잔 차, 아잔 수메도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나는 이들 스승들의 핵심 가르침이 무엇인지 질문하였다. 비구니스님은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수행이란 우리 삶의 매 순간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사진 : 오용석

|    어떤 선입견도 없을 때 비로소 만남이 된다

우리가 방문했던 독일의 명상센터 대부분은 기독교 전통과 선의 전통이 함께 만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영국은 아마라바티 명상센터(Amaravati Buddhist Monastery)나 담마디파 위빠사나 센터(Dhamma Dipa Vipassana Meditation Center)처럼 전통을 중시했다. 영국인들은 지금도 태국 불교와 고엔카의 전통을 변형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어가고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의 떠남이 추상적인 해탈이나 깨달음을 찾기 위한 노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왜냐하면 어떤 선입견도 없을 때 우리의 떠남은 비로소 만남이 되고 새로운 발견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비추기 위해서는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인위적인 의도가 최소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를 비워낼수록 만나는 대상들과 공명할 수 있다는 불법의 소박한 가르침, 우리를 비울수록 새로운 성장과 만남이 가능하다는 가르침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과 고통 없음에 도달하기를 마음속 깊이 염원한다.                                 


불이선원  : zen-center-regensburg.business.site
떼제 공동체 : www.taize.fr
아마라바티 명상센터 : www.amaravat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