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한 동물 식물]후추와 거북

2018-10-01     심재관

후추
많은 향신료들이 그렇듯 고대 인도에서 후추는 일상적인 식재료뿐 아니라 의학적인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요가수행자들은 이 후추와 오줌을 섞어 마시기도 했는데, 인간의 약 중에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실제 남인도 타밀의 싯다Siddha들이 남긴 고전 속에는 오줌에 후추와 강황, 님나무잎, 암라(이는 비타민이 매우 풍부한 열매다) 등을 같이 섞어 마시거나 몸에 바르면 최상의 몸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몸을 부드럽게 해주고 머리카락을 검게 해준다고 적고 있다. 후추와 강황, 암라 등은 여전히 사용하는 대표적인 식재료이자 약재다.   

이렇게 비전秘傳적인 연금술과 요가수행법에서 사용되는 경우뿐 아니라 불교경전 속에도 후추는 식재료나 의학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비구들이 병약해졌을 때 이들이 죽을 끓여 후추를 첨가해 먹는 것을 허용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심지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병이 들었을 때 약을 제조해 먹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진 : 심재관

『마하승기율摩訶僧祈律』이나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에는 소비라(蘇毘羅 sovīraka)라고 불렀던 약의 조제방법이 등장한다. 소비라는 일종의 발효음료(아마도 식초에 가까운)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보리와 같은 곡식과 함께 여러 향신료를 오랫동안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약을 승단에서 허락한 계기는 사리자가 풍병風病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소비라의 제조는 부처님이 직접 방법을 이야기하는데, 보리를 깨끗이 씻어서 빻은 다음 보리수염과 향신료를 넣어서 남쪽이나 서쪽의 서늘하고 어두우며 통풍이 잘되는 곳에 오랫동안 보관할 것을 당부한다.

그 재료의 위쪽에는 아마도 약성藥性을 강화하고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위 삼과(三果 triphala: 약성이 풍부하고 서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많은 약의 제조 시에 이것을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와 호초胡椒와 필발蓽廢 등의 향신료를 같은 비례로 넣고, 천이나 진흙으로 입구를 막은 다음 오랫동안 보관하게 된다. 이삼 년이 지나면 재료들이 발효되어 갈색으로 변하는데 이를 걸러 물과 함께 섞어 먹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호초와 필발 등이 모두 우리가 현재 말하는 후추의 종류들이다. 호초와 필발 두 가지 모두 현재 남아시아 등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다. 호초는 말 그대로 ‘호국의 산초山椒’라는 뜻인데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흔히 먹는 작고 동글동글한 검정 후추다(Piper nigrium). 대부분 남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많이 재배하는데 후추 덩굴에서 이 초록색 씨앗이 달린다. 이 초록색 후추 씨앗을 말려서 그냥 연둣빛의 후추로 쓸 수는 있지만 오랜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대개는 검은 후추로 만들거나, 피클을 만들어 쓴다. 이 후추 열매를 완전히 익기 전에 따서 끓는 물에 데친 다음 말리면 껍질이 과육에 달라붙어 마르면서 검은 후추가 된다. 하지만 완전히 숙성된 열매를 껍질을 벗겨 말리면 백색이 되기 때문에 검은 후추가 아니라 흰 후추가 된다. 이 흰 후추가 좀 더 부드러운 맛이 나고 약간 더 값이 나간다. 최근에는 요리가 발달하면서 빨간 후추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시각적 효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것은 브라질 후추(남미 후추)라고 해서 종種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경전에서 호초와 함께 등장하는 또 다른 후추 필발은 피팔라Pipala 등으로 부르는 다른 종류의 후추(Piper Longum L.)다. 한역으로는 필발(蓽撥, 蓽茇, 篳發), 필발리蓽撥梨 등으로 음사하여 옮기고 있는데, 고대 마가다Māgadha나 비데하Videha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마가디Māgadhī 또는 비데히Videhī라고도 불렀다. 이 후추는 검정 후추와 함께 현재 남아시아에서도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에 가늘고 긴 형태로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후추 모두 몸에 뜨거운 열성을 제공하고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몸의 풍냉風冷에 좋을 뿐 아니라 약을 만들 때 방부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이 두 종류의 후추는 강정제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위에서 말한 소비라를 만들 때뿐만 아니라 경전에는 음식이나 약환藥丸을 만들 때도 거의 빠짐없이 들어갔었던 재료로 보인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에는 부처님이 카필라바스투에 들러 라훌라와 야소다라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때 부처님을 만난 야소다라는 부처님 출가 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궁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 특별한 음식을 장만한다. 그리고 수많은 여자 시종들에게 춤과 노래를 준비시켜 부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전후의 사정을 간파한 부처님은 야소다라의 의도를 제자들에게 전하면서 그를 아직 욕정에 휩싸인 여인으로 묘사한다. 아직도 자신을 그 특별한 음식으로 유혹하여 속세에 머물게 하려는 마음이 있으며, 야소다라의 음탕한 마음은 전생에도 마찬가지여서 과거세에 똑같이 그 음식으로 유혹하려 했었음을 제자들에게 이야기해준다. 문맥을 보면, 부처님이 야소다라의 행위가 비난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보시하여 궁전에 머무르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야소다라가 준비하고자 하는 음식의 종류 때문에 야소다라의 행위가 더 욕정적으로 보인다는 뜻이었다.  

과연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야소다라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이 음식은 과연 부처님 당시뿐 아니라, 과거세에서도 부처님을 유혹할 만큼 특별한 음식이었을까. 이에 대해서 경전은 더 상세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형태는 과자 같은 형태의 단 음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경전에서는 단지 환희단歡喜團이라고 밝히고 그 재료를 나열할 뿐이다. 『비나야파승사』뿐 아니라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나 『대지도론』 등에서도 그 내용은 유사하다. 재료는 요구르트나 혹은 우유, 밀가루와 꿀, 포도와 호도胡桃, 석류, 유자油子 등을 섞은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호초와 필발은 빠지지 않는다. 앞에서 소비라를 만들 때와 같이 이 환희단이라는 음식을 만들 때도 후추는 빠지지 않았다. 

이 환희단의 맛은 어떠했을까. 재료로 보건데 고소하고 강한 단맛이 입안을 감쌌을 것이다. 그리고 코 위로 다시 후추의 상쾌하고 알싸한 향기가 살짝 오를 것이다. 마치 굴랍 자문Gulab Jamun과 같은 단 음식은 아니었을까.  

거북
세계의 토대로서 거북은 종종 전 문명 속에서 단단한 기초의 상징물로 등장하곤 했다. 고대 인도의 베다 의례에서도 제단의 밑바닥에 거북을 묻고는 했는데, 이러한 거북의 상징성은 후대 힌두의 세계관과 동남아시아의 우주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도모했다. 대표적으로 ‘우유의 바다 휘젓기’ 신화에서 보듯이 세계의 중심축 수메루산을 떠받치고 있는 것도 거대한 거북 쿠르마Kurma였다. 거북은 세계의 토대로서 기능했을 뿐 아니라, 우주적 재난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인도 신화를 통해 잘 알려지다시피, 우주적 말기에 대홍수가 일어나 세계가 물속에 잠길 때 유일한 인간 마누Manu를 구원하고 새로운 인간의 역사를 시작하도록 도모했다는 설정이 그런 것들이다. 

사진 : 심재관

불교에서 거북은 때로 견고한 수행자의 보여주는 예로서 등장하며, 때로는 헌신적인 구원자이자 보시자로 묘사된다. 상응부相應部 경전에 비유된 것처럼, 수많은 번뇌들은 거북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자칼로 비유하며, 거북은 계행에 철저한 수행자로 비유된다. 해변에 올라온 거북은 먹이를 찾는 자칼을 보고 빠르게 단단한 자신의 껍질 속에 몸을 숨겼다. 자칼은 거북을 먹기 위해 오랫동안 거북의 옆을 배회했으나 자신의 허약한 육체를 단단한 껍질 속에 갈무리했고, 마침내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 경전은 ‘자신의 육근과 육경을 잘 갈무리한 자’만이 죽음의 신 마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본생담』 속에서 거북은 때로 부처님의 전생으로 나타나 자비로운 구원자로서의 면모를 대신한다. 여기서 거북은 힌두신화에서 홍수로부터 인류를 구했던 쿠르마의 이미지를 반영한다. 언젠가 수많은 상인을 태운 상선이 풍랑을 만나 상인들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그 상선 옆을 지나가던 거대한 늙은 거북은 상인들을 자신의 등에 올라타도록 한 후 죽을힘을 다해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에 도착한 상인들과 거북은 모두 기력을 잃고 잠이 들었는데, 곧 잠에서 깨어난 상인들은 오랫동안 굶주렸기 때문에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상인들은 옆자리에서 막 잠에서 깬 거북을 잡아먹기로 도모했다. 거북은 이 사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물론 『본생담』에 등장하는 부처님의 다른 과거생도 다 자기희생의 보시를 보여주고 있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현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