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 스님 생활법문]부처님 은혜 온전히 받으려면

2018-10-01     광덕 스님

|    마음의 문을 열자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이 끊임없이 햇살처럼 부어지고 계시건만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을 때 그 은혜는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한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을 닫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미움, 원망, 대립 감정, 분노, 불평,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철갑처럼 닫고 있는 한, 활짝 열지 않는 한 불행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우리 형제들처럼 불법을 위하여, 일체중생을 위하여, 온 국토를 위해서 생각하는 큰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천하가 어찌 되건 자기 하나의 이해만 생각해서 내 소망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이기주의의 도구나 수족이 아닙니다. 부처님과 마음을 통하려면 이기심을 버리고 부처님과 함께 하는 넓은 뜻, 호법발원 같은 크고 넓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부처님의 공덕이 그 가슴속에서 햇살처럼 빛나서 일체 어둠이 소멸되고 일체 고난과 재난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기도가 성취됩니다.

여러분, 〈법당의 메아리〉 ①, ②를 차근차근 읽어 보겠습니다.

①  부처님은 법성이시며 불성이시다. 두루 하지 아니한 곳이 없고 지혜와 자비의 크신 물결은 모든 중생 앞에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함께 하신다. 은혜로운 자비 공덕은 일체 중생에게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기원을 드리든, 기도하지 아니하든, 차별하지 아니하고 항상 지혜와 자비의 빛으로 비춰주고 계신다. 마치 방송전파와도 같다. 라디오가 있든지 없든지 듣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채널을 방송주파에 맞추고 있든지 아니하든지 방송전파와 같이 은혜로운 광명은 항상 보내지고 있다. 그렇지만 라디오 채널을 맞추지 아니하면 방송을 들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들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를 온전히 받고자 한다면 부처님의 자비로운 은혜의 파장에 마음상태가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부처님은 자비로운 마음의 파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파장에 우리의 마음이 맞춰지도록 자비한 마음, 평화한 마음일 때 부처님의 위덕은 구체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은덕을 받겠다는 마음만 가지고서는 부처님 공덕을 만나기는 어렵다. 이기적 이득만을 바라는 신심이라면 부처님은 이기주의가 아니므로 은혜를 받기 어렵다. 오히려 바람이 없는 무심한 마음이 되어 일심염불할 때 부처님의 참된 공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② 부처님 공덕을 받자면 일심 염송하여야 하지만 그에 앞서 대립 감정이나 원망심이나 미움이나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이런 마음을 버리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부처님 공덕과 하나 되기 어렵다. 부처님을 이기적 자기 욕망실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서는 결코 부처님 공덕을 입을 수 없다. 
우리가 부처님 자비공덕과 하나 되자면 마음을 말끔히 비우고 감사하며 일심 정진해야 한다. 이때 이기적 마음에서 벗어나야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와 하나가 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되풀이 말하지만 일체 대립심을 버리고 원망 불평심을 버리고 일체를 존중하여 감사한 마음이 되었을 때 우리 마음은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세가 된다. 그리고 소망을 이루자면 다시 더 나아가 일심염불, 일심염송이 끊임없이 함께 이어져야 한다.

또 한 가지 기도하는 데 있어 유념할 것은 마음이 동요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자기 마음의 파장이 바뀌는 것과 같아서 바라는 방송을 들을 수 없게 된다. 모름지기 일체 경계에 마음 팔지 말고 일체심을 버려 오직 순수한 염송 일념이 되어야 한다.

 

|    이상한 경계에 빠진 사람들
일체의 경계에 마음을 팔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염불하고 독경하고 축원하고 정진하고 있을 때, 옆에서 무슨 말이 들려 왔다든지 무슨 생각이 났다든지 또는 모르던 신기한 일이 눈에 보였다든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세계의 소리가 들려 왔다든지, 이상한 것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을 추구하고 들으려 하고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고 그것을 쫓아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참선하다가 마음이 맑아지면, 어떤 경계가 고요하고 맑아지면 그 가운데 자기가 알지 못했던 형상을 눈으로 보든지 귀로 듣든지 하는 것입니다. “나는 광명을 보았다. 꽃을 보았다. 부처님의 손길을 보았다.” 공부하다가 이처럼 무언가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경계에 빠진 것입니다. 경계에 빠졌다는 것은 자신의 본 물건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듣는 데에다 마음 팔리지 말고 자기의 본심이 하나로 맑고 순수하게 되어서 절대 무 대립의 진실 가운데 달려들어야 정진하는 것입니다. 경계를 보고 들은 것에 팔리면 공부는 버리고 실패해 버립니다.

이는 참선뿐만 아니라 염불하고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했더니 꿈에 어떻게 보이더라, 누가 와서 무슨 소리를 하더라, 염불하다 가만히 들으니까 쥐가 와서 ‘관세음보살’ 그러더라 등등 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무슨 의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든 경계이기 때문에 새롭게 의미를 주려고, 남보다 다른 것처럼 생각합니다. 경계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망妄에 빠진 것입니다.

어떤 염불을 하더라도 아무 재미도 없고 아무 빛깔도 없고 아무것도 들리는 것 없고 아무것도 없는 외골수로, 바라밀 염송을 하든 다른 염불을 하던 외골수로 해 나가는 것이 순수하게 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다, 들었다, 알았다 하면 그때부터 비뚤어져서 엎어져 버립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든지 가든지 마음을 두지 말고 다 비워 버리고 오직 하던 것만,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했거든 오직 그것만 자꾸 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데로 팔렸던 생각이 없어져 버립니다. 만약 다른데 팔렸던 생각을 갖고 있으면 내가 하는 염송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형제들이 가끔 물어오는 것입니다. 선방에 계신 보살들도 ‘경계가 아찔아찔합니다. 망상에 젖어 듭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가끔 물어옵니다.

 

|    망상을 잡는 방법
망상을 망상으로 상대하면 망상에 빠져 버립니다. 망상을 잡는 방법은, 망상이 들어오고 잡념이 들어와도 잡념 망상을 무시해 버리고 상관하지 말고, 화두를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바라밀 염송을 하든지 자기가 하고 있는 것만 하면 그 잡념이 없어집니다. 잡념 없애는 묘한 방법은 일심 염송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조도법助道法이 하나 있다면 호흡법이 있는데 그 법은 좌선하는 사람이 꼭 익혀야 할 방법입니다. 좌정하실 때 앉은 자리에서 불법을 보려는 사람이라면 호흡이 기초입니다. 호흡에 관찰해서 드는 호흡, 나는 호흡이 모두 고르고 가지런해지고 마음과 생각이 바로 호흡과 함께 머물러 있을 때, 그런 호흡이 익혀지면 안정될 뿐 아니라 잠을 극복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만약 그런 호흡법을 일심으로 4~5개월만 닦으면, 한 달 중에서 일주일쯤은 잠을 안 자도 괜찮습니다.

제가 열흘, 이십 일 잠 안 자고 정진했던 것도 호흡의 기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흡법은 망념을 없애고 정진력을 올려주고 삼매 선정을 잘 이끌어 가는데도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그러므로 염송하고, 독경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망상이 오거든 망상을 따라가지 말고 오직 하던 것만 하십시오. 망상이 들어왔다고 하는 것은 벌써 자기가 하고 있던 것이 중지되고 딴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딴생각을 맞아들였기 때문에 망상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상을 놓아 버리고 자기가 하던 것만 다시 해 버리면 망상은 없어집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부디 주의할 점은 염불이나 참선을 할 때 꿈이나 생시에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고 이상하고 기이한 것이 있다고 해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천착을 하거나 보려거나 그것을 가지고 환희한 생각을 일으키거나 하면 실패합니다.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더욱 깊이 정진을 해야 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일심본무상一心本無相, 마음은 본래 형상이 없다.’ 『대승기신론』의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끝부분 가운데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심본무상, 일심은 본래 형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형상을 보았다 하면 가짜를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 형상에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직 외골수로 하는 것만 하고 지어가는 것만 지어갈 때 자기는 바르게 정진이 잘 되는 것입니다.

거듭 불법 배우는 사람들이 내 생명 반야바라밀, 부처님의 일체 공덕 반야바라밀, 궁극적인 실존 마하반야바라밀, 이 반야바라밀 하나밖에 딴 것이 없음을 알고, 반야바라밀 하나라고 하는 진리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들은 일체 대립에서 벗어나고 일체와 더불어 한 몸이 되며, 일체 집착에서 벗어나고 일체 한계를 무너뜨려서 원만한 본성・자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반야바라밀 염송을 모든 수행 가운데서 성실히 이행하셔서 크신 위덕, 크신 성취 함께 이루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