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정법에 귀의한다, 대구 정법회 거사림

이제 거사의 시대를 열다

2018-10-01     김우진

이제 거사의 시대를 열다

지혜를 실천하는 우바새, 거사居士. 우리는 절에서 만난 남성 불자를 거사라 부릅니다. 이제는 거사들이 활약할 때입니다. 우리 지역 사회에서, 사중에서 오랜 시간 기운차게 활약하고 있는 거사들의 모임을 찾아가 봅니다. 이들은 사찰에서 만난, 법으로 맺어진 형제들이었습니다. 거사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사중의 울력을 도맡기도 하고, 손이 필요한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며, 자신의 신행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형제 도반과 속 깊은 신행 이야기를 나눕니다. 거사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멋진 거사들을 만났습니다. 

01    한마음선원 법형제회  조혜영
02    부산 마하사 거사림회  김우진
03    대구 정법회 거사림  김우진
04    군포 정각사 거사회  김우진
05    서울 옥천암 거사회  유윤정
06    거제불교거사림  김우진

사진 : 최배문

“나는 정법에 귀의한다”      

대구광역시 중구의 한 골목 주택가. 골목 어귀를 돌아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인다. 3층 높이의 회색 주택에 정법회 거사림 현수막이 크게 달려있다. 거사들을 따라 들어선 건물 2층과 3층에는 나무 미닫이문, 벽에 걸린 서화 액자, 구석에 있는 에어컨까지 세월의 흔적이 한껏 묻어났다. “여기 있는 것 중에 사람이 가장 오래됐지”라며 남두희(82) 회장이 말했다.  

 

|    반세기의 역사를 이루는 힘

정법회 거사림은 재가불자 11명이 모여 1965년 11월 신행단체로 처음 발기했다. 그다음 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3월 12일 당시 조계종 종정 효봉 스님으로부터 전국 최초로 신행단체 등록인가를 받았다. 지금이야 신행단체들이 사찰마다 생겨 활동하고 있지만, 그 시초가 50여 년 전에 생긴 정법회 거사림인 것이다. 거사불교라는 말도 생소하던 1960년대, 정법회 거사림은 한국 불교의 새로운 신행문화를 선도했다.

정법회 거사림은 “우리는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하여 자아완성自我完成을 기한다.” “우리는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하여 이타利他의 보살도菩薩道를 실천實踐한다.” “우리는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하여 불교중흥佛敎中興에 이바지한다.”는 행동 강령으로 여타 불자들에게 모범이 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40여 년 전 대구로 내려왔을 때, 정법회 거사림 2대 회장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지역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거사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거사림에 산하 지부가 8개나 있었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법을 배우고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남 회장은 정법회 거사림의 과거를 추억하며 말을 이었다. 당시 정법회 거사림은 단순히 신행단체를 넘어 지역 사회 전반을 이끌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대구 지역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을 주관하여 봉행하였고, 부처님 오신 날을 법정 공휴일로 제정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불교중흥에 앞장섰다. 

또한 거사림에서는 포교를 위해 1971년부터 매년 정법회지를 발간하여 배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결손가정과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중고등학생 장학금과 재난 구호 성금 등을 모금하였으며, 국외에서는 캄보디아 등지에 우물 설치, 의약품 제공, 각종 물품 지원 등도 수차례 진행했다. 지난 52년간 정법회 거사림은 자신들의 행동 강령에 따라 게으름 없이 노력했다.

 

|    주체적인 삶, 능동적인 활동

정법회 거사림에서는 일요법회를 진행한다. 작년까지 정기적으로 수요 법회를 진행했지만, 올해부터 사람들이 더 편하게 올 수 있는 일요일로 날짜를 바꿨다. 거사림 회원들은 직접 집전하며 법당에 들어서 예불을 드린다. 기도를 올리고 염불하며 신심을 다지는 모습이 정갈하다. 거사림의 역사와 함께 회원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었고 머리는 희끗해졌지만, 가지런히 모은 마음은 옛날과 다르지 않다.

“제가 청년 때 저희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여기 나오셨습니다. 그 당시 절에는 거사들보다 보살들이 가서 그냥 기도드리는 모습이 많았어요. 그런데 나이든 남자들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서 활동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보기가 좋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에 거사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올해 일흔이 된 임달수 씨는 거사림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20대 때부터 거사림의 변천사를 직접 보고 참여해왔다는 그다. 흐르는 세월과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어떻게 하면 더 깊은 공부를 할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법을 더 전할 수 있을지 등이 여전히 그의 고민이다.

“저는 원래는 다른 사찰에 나갔었는데, 대부분 거사들이 설 자리가 별로 없더라고요. 재가자보다는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사찰 운영이 이뤄지니까 사찰에서는 기도만 하고 집에 돌아왔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거사림 회보를 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그 모습에 눈이 커진 겁니다. ‘이거다’ 하는 마음으로 왔더니 역시나 그렇더군요.”

이영준(61) 부회장은 거사림의 가장 큰 장점이 거사림 강령에 있다고 말한다. 정법에 귀의하여 자아를 완성하고, 보살도를 실천하고, 불교중흥에 이바지하는 그 모든 것의 주체는 거사들 자신이다. 그렇기에 정법회 거사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각자 목표가 뚜렷했다.

정법회 거사림은 내년 3월 개강을 목표로 거사림 회관에 ‘미얀마 불교대학’을 준비 중이다. 구체적 내용은 아직 기획 중이지만, 초기불교 수행과 공부를 통해 관심 있는 불자들의 동참을 이끌 생각이다.

“불교대학을 열어서 사람들에게 강의를 통해 불교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설립 절차를 알아봤더니 사찰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더라고요. 저희는 재가 단체니까 사찰에 속할 수는 없어서 일반적인 불교 대학은 불가하잖아요. 그래서 미얀마 불교대학을 우리식으로 변모해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남 회장은 정법회 거사림 초청 법사인 구룡사 도일 스님과 함께 미얀마에서 불교대학 설립인가도 받았다며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도일 스님은 “정법회 거사림은 적극적이고 독특한 에너지가 있어 이곳에 올 때면 항상 힘을 받는 것 같다”며 거사림 회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50년이 넘는 역사에는 힘이 있다.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물론 앞으로 이곳을 찾을 사람들 모두 그 에너지를 느낄 것이다. 부처님 바른 가르침을 늘 새기며, 항상 새롭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정법회 거사림. 그들의 열정이 역사를 이어온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