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보성 대원사 극락전 나한도

거울에 비추어 보는 나한이 본 것은 무엇일까?

2018-10-01     강호진
사진 : 최배문

보성 대원사 극락전 벽에는 독특한 모습의 나한이 있다. 18세기 후반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나한도는 미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분명 아니다. 나한의 몸은 비례를 벗어나있고 괴석과 화초도 그리 대단치 않다. 극락전을 처음 방문한 이라면 이 그림보다는 동서 중앙 벽에 마주 그려진 관음도와 달마도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보물로 지정된 두 점의 벽화를 젖혀두고 동측 구석의 나한도를 살펴보려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거울을 쥔 나한의 모습은 드물기도 하려니와 거울이 품은 여러 갈래의 의미는 진지하게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그림의 이해를 위해선 나한이 거울을 든 이유를 파헤치는 것이 첩경일 테니, 벽화의 이야기는 거울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다. 

 

거울은 하루에 한 번은 마주치는 생활용품이지만, 거울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거울은 문득 낯설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나는 시간을 안다. 그러나 시간이 무엇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시간을 모른다”라고 했듯, 거울도 시간과 다르지 않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진짜 나인가? 좌우가 뒤바뀐 거울 속 형상이 온전한 나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거울 속 존재, 아니 거울 속에서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저 존재는 누구란 말인가. 이상李箱이 「거울」이란 시에서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라고 말한 존재 말이다. 이쯤 되면 거울이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영화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이 악당을 쫓아 들어간 거울방 씬scene에 이르러 관객의 긴장감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들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낯선 존재, 즉 자신과 타자가 거울 속에서 공존하는 무의식적 공포를 빼어나게 활용했다.  

그러나 거울에 맺힌 형상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은 유아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생후 3개월부터 18개월 사이의 유아는 뜻대로 움직이거나 가눌 수 없는 머리와 팔, 다리를 지니고 있지만, 거울 속 이미지를 통해 통합적인 운동능력을 지닌 신체로 자신을 인식한다. 즉 거울 속의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하면서 유아는 상상적 자아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이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말한 거울 단계(mirror stage)이다. 만일 거울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유아들은 자아를 가지지 못하는가? 라캉의 거울이 꼭 사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유아들은 자신의 행위에 반응하는 엄마의 표정과 신체를 거울로 삼는다. 또한 아이가 보자기를 망토 삼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이가 영화 속 슈퍼히어로와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거울단계의 특징은 허상에 대한 매혹으로 인해 실제 자신에 대한 소외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사진 : 최배문

그렇다면 성인이 거울을 볼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통계에 의하면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외모에 만족하는 남성의 비율은 여성에 비해 두 배나 높다. 여기엔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나는 외모에 관한 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라캉이 말한 유아기적 거울 단계를 더디 벗어나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로 읽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성이 남성보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더 일찍, 더 크게 받는다는 뜻이다.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거울을 보며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니?’라고 묻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권력과 마법을 지닌 여성일지라도 끊임없이 거울이란 타자를 통해 자신의 외모를 검증받아야 하는 운명 말이다.  

언어와 문화, 사회적 시선과 제도는 유아기에 형성된 상상적 자아에 찬물을 끼얹는 일종의 폭력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등장인데 이로 인해 자아와 현실 간의 괴리가 발생한다. 이 균열이 오래 지속될수록 정신병적 분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의 성인은 아버지의 질서에 재빨리 복종함으로써 살아남은 이들이다. 따라서 성인이 출근이나 외출 전에 거울을 보면서 용모를 다듬는 이유는 유아기적 환영이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직장여성의 화장은 사회적 강요와 타인의 시선에 부합하기 위한 노동의 연장이 되고, 공무원의 무채색 일변도의 복장은 집단의 규율이나 조직의 강제가 다른 직장보다 더 억압적임을 드러낸다. 불행히도 우리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살필 수 없다. 우리가 거울에서 발견하는 것은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와 조직이 원하는 나의 모습, 즉 낯설고 텅 빈 타자의 모습일 따름이다. 신영복 선생의 ‘무감어수 감어인無監於水 監於人’, 즉 물에 자신을 비춰보지 말고 사람에게 자신을 비춰보라는 말은 민생정치의 구호로 사용될 정도로 항간에 널리 퍼져있지만, 나는 이 글귀에서 타인이란 거울에 항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 주체의 불안한 지위가 눈에 먼저 밟힌다. 

 

그렇다면 불교가 거울을 바라보는 입장은 어떨까? 불교가 거울을 차용하는 방식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화엄경에서는 부처의 복전福田과 마음을 정명경淨明鏡에 비유했고, 유식唯識에선 크고 둥근 거울에 실상이 비치듯 모든 것을 환히 아는 지혜를 대원경지大圓鏡智라 불렀다. 영명 연수의 『종경록宗鏡錄』은 “일심을 근본으로 세계를 거울처럼 비춘다(擧一心爲宗 照萬法如鏡)”는 뜻이고, 망자가 지옥에서 심판을 받을 때 등장하는 업경대業鏡臺는 생전의 행위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물건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거울은 왜곡 없이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메타포로 쓰인다. 불교가 거울과 친화적인 것은 허상을 벗어나는 깨침을 준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 불교의 거울은 예전 영화관 복도에 줄지어 부착되어 있던 대형거울과 유사한데, 이때 거울은 영화적 환상에 젖어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줌으로써 신속히 현실로 되돌아오게 하는 각성효과를 지닌다. 위의 사실을 볼 때, 불교는 감어인監於人보다는 감어수監於水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타인의 반응이나 시선이 아닌 자신의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는 것이 우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맑고 깨끗한 거울이라도 그것이 하나의 실체로 고착화하는 순간 거울은 더 이상 거울일 수가 없다. 거울이 모든 것을 비출 수 있는 이유는 비추고 있던 대상이 사라질 때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즉 공空할 때라야만 거울은 거울답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경전 속 거울의 비유는 참신함을 잃고 일심이나 지혜, 혹은 불성 같은 말과 기계적으로 대응되기 시작한다. 실은 일심이니 불성이란 말도 메타포이긴 마찬가지다. 이러한 경직성에 맞서 거울이 지닌 메타포를 사망의 골짜기에서 되살려낸 것은 선가禪家였다.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라는 경전적 정의에 거울 따윈 애초에 없다(本來無一物)라고 받아친 것이나, 옛 거울이 있다고 했다가, 거울이 항상 청정하다고도 했다가, 흠집이 생겼다고 했다가, 돌연 그 거울을 부수라고 내지르는 등의 자유자재한 언어 게임을 펼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왜 사람들이 선불교에 매료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진 : 최배문

우리는 이제 벽화 속 거울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림 속 나한이 든 거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성인가, 지혜인가, 일심一心인가? 우선 그림 속 거울이 무엇을 비추고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거울엔 나한의 얼굴도, 주변의 사물도 담겨있지 않다. 거울은 오직 무심한 회색빛으로 허공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만일 거울을 든 나한을 주관主觀이라 하고, 주변의 사물을 객관客觀이라 한다면, 거울은 주관과 객관을 모두 벗어나 있는 셈이다. 마음의 거울이 형상과 분별을 떠났으니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의 경계가 아닌가? 원상圓相처럼 둥글게 표현된 거울의 형태를 볼 때 화사가 그 경지를 염두에 두고 거울을 비워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화사는 무상無相의 거울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보라, 이 나한은 무심無心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이다.’ 

그러나 화사가 놓친 것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심의 의미는 이것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무심이란 정상적 거울과 다르지 않다. 어떤 것도 비추지 못하는 죽은 거울이 아니라 무엇이든 비추되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을 무심이라 부른다. 보조 지눌은 『수심결』에서 ‘보고 듣고 지각할 수 있는 것은 너의 불성 덕이다(能見聞覺知者 必是汝佛性)’라고 했고, 『화엄경』은 ‘마음은 솜씨 좋은 화사와 같아서 온갖 것을 그려내니,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心如工畵師 畵種種五陰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라고 했다. 불교의 수행은 거울을 통해 실상을 들여다보는 것이지, 거울 자체를 부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거울을 부술 수도 없다. 실체가 아닌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하철 출입문에 기대어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이룬 것 없이 초췌하게 늙어가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다. 그토록 싱그럽던 청춘의 열망은 손에 움켜쥔 모래처럼 어느새 빠져나가 남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지하철이 지상구간으로 진입한다. 갑자기 환한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 창을 다시 보니 중년의 남성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는 것이 오직 푸르게 흐르는 한강이다. 오! 한강.                                                                  

강호진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에 올라가 삼천 배를 하고 성철 스님에게 일각 一角이란 불명을 받았다. ‘오직 일체중생을 위해서 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지금껏 별달리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심정으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