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명법문] 용심用心을 잘 쓰자

2018-09-03     도일 스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혼자 살아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살다 보면 함께 하기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드릴 말씀은 ‘용심用心을 잘 쓰자’는 겁니다. 용심이란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잘 쓰자는 겁니다. 용심을 잘 쓰는 것은 배려와 자비입니다. 반대로 용심을 잘 못 쓰는 것은 이기와 욕심이겠죠. 용심을 잘 쓰면 복이 절로 들어오고, 용심을 못 쓰면, 어떻게 보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사진 : 최배문

|    씨앗은 그냥 자라지 않는다

용심, 즉 마음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혼자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어떠한 것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연기 관계.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는 것이라는 연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연에 따라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여기 씨앗이 있고 땅이 있습니다. 땅에 씨를 뿌리면 싹이 트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싹을 내리고, 곡식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씨앗이 있고 땅이 있으면, 수확은 얼마든지 거둘 수 있구나’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비가 와야 합니다. 물이 있어야 하지요. 수분을 공급해줘야 씨앗에 싹이 틀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다 되느냐? 공기도 있어야 합니다. 공기가 없으면 생물이 살 수가 없어요. 또 공기도 오염이 되면 안 됩니다. 탁한 공기가 아니라 맑은 공기가 있어야 합니다.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데에도 무수한 과정과 관계가 더해집니다. 우리 사람도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면 잘 사는 것 같지만,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땅과 물과 공기와 햇빛이, 즉 지수화풍이 모두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지구상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그 관계가 더 복잡합니다. 지수화풍의 자연적인 요소에 더해 사회적인 요소들도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그 어떠한 것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렇듯 세상 모든 것은 연기,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는 것이라는 인연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용심, 즉 마음을 잘 쓰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양보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부산을 간다고 할 때, 어느 하나 양보하는 사람 없이 서로 빨리 가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사고가 나겠죠. 결국 부산에 못 가게 됩니다. 이렇듯, 서로가 이기심과 욕심을 내면 모두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함께 양보한다면 무사히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죠.

그리고 부산으로 향하는 그 길도 과거의 누군가 현재의 우리를 위해 길을 잘 닦아놨기에 편안하게 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애를 써서 길을 잘 닦아놨고 자동차가 가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에 우리가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노력과 배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 역시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 합니다. 서로 애를 써야 모두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게으름 피우면서 남에게만 게으르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내가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마음을 잘 써야 상대방도 그렇게 나를 대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용심을 잘 써야 복을 받는다는 것을 당연히 생각해야 합니다.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후손까지도, 자손대대로 이어져 이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발전할 것입니다. 부지런히 가꾸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자신도 부지런히 정진하고 자식에게도 부지런함을 가르쳐야 점점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너그러운 마음으로 복을 짓자

불만이 많은 사람은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죠. 아주 미운 얼굴로 남을 바라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와는 조금 다르게 ‘지금은 못 살아도 남들이 잘사는 것을 존경하고 나도 더 열심히 복을 지어야겠다’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장은 힘들더라도 마음을 잘 쓰기 때문에, 성실하기 때문에, 부지런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잘 될 것입니다. 

초년에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고생을 하더라도 마음을 잘 쓰고 열심히 꾀 안 부리고 사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압니다. 그런 사람은 꼭 복을 받아요. 복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살다 보면 그런 복이 내 가까이로 오는 것이거든요.

직장생활도 마찬가집니다. 한 우물을 파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신입사원에서 관리자 위치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각자가 부단히 노력해 나아가면 못 할 게 없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진정한 나’를 닦아갑니다. 부잣집 아이든 가난한 집 아이든 다를 것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삶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부잣집 아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걷는 거 아니잖아요.

그 과정에서 용심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잘 써야 해요. 나보다는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마음은 계속해서 쌓이게 되고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너그러운 마음, 넉넉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이 있으면 지금은 약간 힘이 들 수 있지만 나중에는 복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믿었던 친구한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친구가 돈을 조금 빌려달라고, 금방 갚겠노라고 해서 빌려줬다고 가정해봅시다. 빌려준 사람은 계속해서 독촉을 하지만, 빌린 사람의 사정이 금방 나아지기는 힘들죠. 서로 마음 상하는 과정만 쌓입니다. 용심을 잘 못 쓰는 사람은 인연의 과정에서 마음이 힘들어요. 그 빌려준 돈이 계속해서 생각나고 친구가 원망스럽고 분해서 잠이 안 옵니다. 남 탓으로 돌리니 마음이 시꺼멓게 탑니다. 하지만 용심을 잘 쓰는 사람은 그 돈 친구에게 줬다고 생각하고 잊어요. 잘못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잠이 잘 와요. 시간이 흐른 후에 친구가 돈을 갚을 수도 있고 못 갚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마음입니다. 또한 그 아픔을 낫게 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이죠. 

용심을 잘 못 쓰면 마구니가 될 수 있고, 용심을 잘 쓰면 불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예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공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만큼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해심이 없기 때문에,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범부중생이라고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자비로운 마음,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행동한다면 언젠가 그 손해 본 만큼 내 존재의 가치가 올라가 있을 겁니다.

산에 가서 닦는 것만이 도가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것을 묵묵히 이겨내는 것이 도예요. 이 마음이 뒤집어지면 악마가 됩니다. 반면에 그것을 능히 이겨낸다면 마음에 평화를 가질 수 있습니다. 힘든 고난의 순간을 이겨내면 극락이고, 이겨내지 못하면 지옥입니다. 그 두 가지가 따로 있지 않아요. 현실을 살면서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이 있으면, 희망이 있으면 여러분은 지금 극락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용심을 잘 써서 함께 극락에서 삽시다.          

                                                


법문. 도일 스님
1973년 초안 스님을 은사로 입산하여 1984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초안 스님으로부터 석굴암 주지를 위임받았다. 2015년까지 봉선사 문화국장 및 양주시 경승실장을 역임하고, 현재 오봉산 석굴암 대작불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