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살행론] 선정바라밀과 무아수행

2018-09-03     재마 스님
그림 : 재마 스님


다른 두 사람의 정혈이 합쳐져 만들어낸 이 몸에 ‘나’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네. 그렇다면 어째서 남의 몸을 ‘나’라고 부르지 못하고, 나의 몸을 ‘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가.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단점과 남들을 귀하게 여기는 많은 장점을 알았으니 이젠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버리고 남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익혀야 하리라. 

손과 발을 자기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듯이 모든 중생들을 한 덩어리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가 없는 이 몸에 대해서 습관을 통해 ‘나’라는 생각이 일어났듯이 중생들에 대해서도 습관을 통해 ‘나’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먹여주면서 아무 보답도 기대하지 않듯이 남들을 위해 일을 할 때 교만하거나 잘난 척하지 말아야 한다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듯이 자비심을 갖고 남들도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한다네.(111~117)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들의 행복을 바라는 데서 오고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자신만의 행복을 바라는데서 온다네.(129) 그대 자신을 철저히 살펴보고 그대가 남들을 위해 일하는지 확인하라. 무엇이든지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이젠 그들에게 이익이 되게 사용하라.(158~159) 그러므로 나 자신이 행복하려면 항상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 자신을 보호하려면 항상 남들을 보호해야 하리라.(173)


불교 수행법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고통을 없애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한 방편입니다. 선정바라밀을 통한 무아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정바라밀은 고요하게 머물러 허물과 공덕을 사유하고,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게 몸과 마음을 챙기는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동요하는 것은 몸과 감각적 욕망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이를 끊어버리는 수행법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탐욕과 집착의 치유를 위해 깨끗하고 좋다고 착각하는 것의 실상實相을 사유하는 부정관不淨觀 수행입니다. 부정관, 실상관은 모두 무아를 위한 수행법입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대상은 대부분 몸을 위하거나 몸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부정관은 몸을 전체적인 것으로 보기보다 살과 피, 피부와 뼈, 림프액과 담즙, 소변과 대변 등의 집합으로 보고 계속해서 변하고 무너지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상하다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영원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특히 생명 현상이 끊어진 몸이 썩어가고 부패해 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몸이 영원하지 않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래서 현재 삶이 소중하다는 지혜가 자라나고, ‘나’가 있다는 생각이 점점 희미해짐을 알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이 세상의 모든 재난과 두려움과 고통은 자기 집착에서 나오고(134), 자아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고통은 피할 수가 없나니 불을 피하지 않으면 불에 타는 것을 피할 수 없다(135)”는 샨티데바 스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한 탐착 외에 우리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분노와 성냄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올라오는 분노나 증오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멈춤을 통한 선정에서 더 깊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견해를 고집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특히 지혜가 자랄수록 우리 마음을 자애로움으로 가득하게 해야 함을 더 깊이 인식합니다. 분노의 해악을 너무나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불만족과 분노, 화의 뿌리를 자르고 치유하기 위해 자애를 깊이 사유하는 수행을 실천합니다. 특히 자무량심수행법은 사랑의 에너지를 마음에서부터 무한하게 피워올려 공간을 벗어나 한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점점 깨달음으로 향하게 합니다. 샨티데바 스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이들은 자신의 이익만 구하고 깨달은 이들은 남들을 위해 일하시는(130)”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내 것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 망상과 무지를 치유하는 연기수행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샨티데바 스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는 정체성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혈血의 방울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니, 나라고 생각하는 이 몸은 내가 아니라 남의 것의 조합이라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남의 것을 내 것으로 가져오려는 습성 때문에 다른 많은 것들도 나의 소유로 취하려는 자기중심적인 발상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연기법을 수행하게 되면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과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조건과 원인들을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혼란과 혼돈은 모든 것을 잘못 이해하는 무명無明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이해하고 알아차리고, 이 무명을 벗어나는 연기수행이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선정바라밀의 내용입니다.

또, 샨티데바 스님은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바꿀 다른 습관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그대가 남의 정혈 방울을 그대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고 집착하듯이 이제 남들을 그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데도 익숙해져야 하리라.(158)” 남들이 나라고 여기는 수행법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인 자신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도록 하는 발상입니다. 이 또한 무아수행의 한 방법으로 남을 위해 주면 깨달은 이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125), 남들을 위해 해를 입으면 하는 일마다 원만성취(126)가 가능하고, 남은 존중하면 선처에 태어나고 존경과 지혜를 얻고(127), 남들을 위해 봉사하면 후에 군주 같은 경험을 한다(128)고 전합니다. 이는 오랫동안 자타 분별이 정상이라고 보는 범부를 위한 수행법이지요.

나아가 “자신의 행복을 남들의 불행과 바꾸지 않으면 결코 부처님의 지위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윤회의 세계에서도 안락을 얻을 수 없다(131)”고 설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남의 불행을 나에게 가져오고 내 행복을 남들에게 줄 수 있을까요? 이렇게 되면 고통스런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가 되려고 몰아붙이는 경쟁과 노력을 내려놓게 될 것이고, 비교하고 평가하여 우열을 정하고 순위를 매기는 습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샨티데바 스님이 말씀하신 “나 자신보다 더 낮거나 높거나 동등한 모든 사람들을 나 자신이라 생각하고 나 자신을 남이라 생각하며, 자타의 망분별 없이 시기, 교만 경쟁심을 다스리는(140)”것이 조금 수월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남이라 생각하고, 남을 자신이라 생각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장점이나 공덕이 질투나 시샘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공덕이나 장점이 되는 것이지요. 또한 나의 취약점이나 단점이 다른 이의 것이 되어 좀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내 것에 대한 집착과 고통, 좁고 한정된 개념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정바라밀 수행에서 가장 기본적인 번뇌 잡념의 치유를 위한 방법으로 호흡수행이 있습니다. 『구사론』에서는 호흡을 세고 따르는 등의 여섯 가지 방법, 숫자세기와 따라가기, 머물기, 분석하기, 바꾸기, 그리고 완전히 정화하기를 들고 있습니다. 밀교의 진언 전통에서는 번뇌를 따라가지도, 피하지도 않으면서 번뇌를 다른 것으로 바꾸지도 않으면서 가르침의 근본지혜를 통해서 선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티베트 불교의 스승인 감뽀빠는 『해탈장엄론』에서 선정바라밀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기쁨 속에 머무는 선정바라밀과 공덕을 축적하는 선정바라밀,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선정바라밀입니다. 현재의 기쁨 속에 머무는 선정바라밀은 호흡수행 등을 통해 자만심 등의 사량 분별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공덕을 축적하는 바라밀은 해탈과 8선정, 분별지의 선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샨티데바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가장 비슷한 선정바라밀은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선정바라밀입니다. 보살의 길에 들어서는 수행으로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이타심과 이타행을 우리는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요?


이번 달에는 몸의 변화와 부패 과정을 자주 인식하기, 자애 씨앗 심고 가꾸기, 나타난 현상의 조건과 원인을 이해하고 알아차리기, 나보다 높다거나, 낮다거나 차별하고 우열을 매기는 습관 내려놓기, 남이 나라는 생각 일으키기, 지금 이 순간 호흡 알아차리기 수행으로 선정바라밀을 일상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무아로 이타행 실천하기를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함께 해보시겠어요? 고맙습니다.                                             

재마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로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과학연구소에서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움직이는 법당, 춤추는 절을 꿈꾸며 소마명상여행을 이끌고 있다. 또한 종교를 초월해 마음비추기 피정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완화의료병동에서 영적돌봄 봉사를 하고 있다. 박사 논문으로 「사무량심의 가치 재발견과 체화프로그램 개발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