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아난존자가 내건 조건 네가지

[10대제자 이야기] 성자 아난다

2018-09-03     이미령

|    그에게는 기쁨이 따른다

아난다 존자는 석가족 왕자로, 부처님의 사촌동생입니다. 그가 태어나자 주변에 기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기쁨, 환희라는 뜻의 아난다Ānanda라 불리게 됐습니다. 아난다는 부처님과 나이 차가 제법 있습니다. 경전마다 그 출생시기가 조금 다른데, 어떤 경에서는 싯다르타 태자가 성을 나가 출가했던 날에 태어났다고 하고, 또 다른 경에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가 되신 바로 그 날에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어느 설을 따르더라도 거의 아들뻘이라 할 정도의 나이 차가 나는데 부처님께서 그를 시자로 삼으실 때가 세수 55세 무렵이니, 아난다는 그 당시 (넉넉히 잡아도) 20세를 갓 넘었을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경전에서 그려지는 아난다에게서는 대체로 온화한 성품에 부드럽고 우아한 행동거지가 떠오릅니다. 마등가 여인 사건이나, 여성출가 허락을 받아낸 일 등…. 아난다 존자는 유난히 여성과 연관되어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는데 깐깐한 가섭 존자는 이런 모습이 못마땅해서 대놓고 핀잔을 준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아난다 존자라고 하면, 그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일까요? 부처님도 아난다 존자를 당신의 시자로 삼고 싶어 하셨습니다. 

 

|    시자 되기를 거절하다

붓다가 되신 뒤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시느라 부처님도 지치신 듯합니다. 누군가 곁에서 일정 관리만 해줘도 부처님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실 텐데 말이지요. 물론 당시에는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는 제자들이 형편껏 도와드렸지만 그들도 수행하려고 출가한 것이지 부처님의 시자로 지내려고 출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조금만 곁에서 일을 도와달라고 해도 “저는 지금 숲으로 가서 수행하고 싶습니다”라며 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님은 당신 곁에서 늘 일을 도와줄 사람을 원했었고, 마음속으로는 아난다를 점찍어 두셨습니다. 부처님 마음을 알고서 제자들이 아난다에게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존자여, 부처님의 시자가 되십시오. 부처님께서 바로 그대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는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저는 부처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크신 분입니다. 마치 60살이 된 수코끼리는 힘이 왕성하고 세력이 대단해서 곁에서 보살피기가 어렵듯이,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그분의 시자가 되는 일을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중아함 시자경」)

목건련 존자가 거듭 요청하자, 아난다 존자는 뜻밖에도 이런 조건을 내세웁니다.

“네 가지를 거절해도 된다면, 그리고 네 가지를 무조건 부처님께서 받아주시기로 약속한다면 시자가 되겠습니다.”

시자라면 자기가 모셔야 하는 이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마땅합니다. 더구나 아난다 존자가 모셔야 할 분은 인천人天의 스승이라고까지 하는 부처님 아닌가요? 그럼에도 그는 이런 조건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밍군 사야도의 『부처님의 제자들』(제2권, 오원탁 옮김, 경서원, 96~98쪽)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네 가지 거절과 네 가지 요구

아난다 존자상. 간다라 출토. 4C~5C

먼저 아난다 존자가 거절하겠다고 밝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세존께서 받으신 값비싼 가사를 제게 주지 마십시오.
둘째, 세존께서 받으신 맛있는 음식을 제게 주지 마십시오.
셋째, 세존께서 머무시는 숙소에 저를 머물게 하지 마십시오.
넷째, 세존께서 초대받은 재가불자의 집에 저를 데리고 가지 말아 주십시오.

세상에서 명망이 있고, 세상 사람들의 귀의와 공양을 받는 분을 가까이에서 모신다면 당연히 수많은 이권이 따라올 것입니다. 특히 시자는 제자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 부처님에게 올리는 숱한 이득을 가장 먼저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런 공양물은 그의 손을 거치게 마련일 것입니다. 권력자의 최측근은 대체로 처음에는 그런 이득에는 초연하지만 견물생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제 것으로 챙기고, 그러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는 미리 그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리의 스승을 섬길 뿐이지, 그 어떤 이득을 바라서가 아님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 정중한 네 가지 거절은 자신이 존경하고 세상이 존경하는 진리의 스승을 곁에서 바라지 할 뿐이라는, 오직 진리를 섬기겠다는 아난다 존자의 결심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무조건 받아주시기를 원한 네 가지는 또 이렇습니다.

첫째, 제가 초대받은 장소로 가 주십시오.
둘째, 멀리서 온 방문자를 도착한 즉시 만나 주십시오.
셋째,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제가 질문하면 언제나 대답해 주십시오.
넷째, 제가 없을 때 하신 모든 법문을 저에게 반드시 다시 해 주십시오.

 

|    붓다의 시자, 중생의 시자

굳이 이 네 가지 항목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부처님을 향한 도타운 믿음을 지닌 재가불자들 중에는 차마 부처님 곁에 다가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시자를 통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입니다. 그럴 때 시자는 그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을 부처님에게 전달할 것이며, 시자의 요청이 있을 때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재가자들을 만나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둘째, 출가 제자들은 부처님과 한 공간에 머물지만 재가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은 부처님을 뵙고자 하는 열망만 품은 채 생계를 잇느라 바삐 삽니다. 그러다 겨우 짬을 내어 부처님을 뵈러 왔을 때 시자는 그 간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부처님에게 이들을 만나 달라고 요청할 것이요, 부처님은 그런 요청이 있으면 즉시 만나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항을 보자면, 일반 불자들을 향한 아난다 존자의 배려가 깊이 느껴집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스승님의 시자이면서도 그는 중생들까지도 섬긴 것입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항목은, 간혹 어떤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서 부처님께서 하셨던 법문을 들려달라고 요청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진리의 스승을 모시는 자라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아난다 존자의 생각입니다.

이런 아난다 존자를 시자로 삼아 부처님은 25년을 살다 가셨습니다. 노년으로 서서히 접어든 부처님을 떠올려봅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50대 중반을 넘어서 부처님, 그 곁에는 아난다 존자가 늘 있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림자처럼 부처님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부처님이란 존재는 모든 이들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았기에 누군가가 부처님을 뵙고자 하면 때와 장소를 잘 가려 정중하게 부처님께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알맞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이 서면 그는 부드럽게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일 처리는 매끄러워서 부처님과 중생 어느 편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시자만이 아니라 부처님을 친견하려는 중생을 배려하고 보살폈으니 중생의 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아난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고,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즐거워했습니다. 과연 ‘아난다’다운 분이었습니다. 

수행하려고 출가했지만 뜻하지 않게 부처님의 시자로 인생의 황금기 25년을 보낸 아난다 존자입니다. 부처님도 이젠 그를 놓아줄 때가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반열반의 자리에서 부처님은 그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셨습니다.

“아난다여, 그대가 있어 나는 행복하게 지냈다. 이제 그대가 수행할 시간이 되었다. 머지않아 그대는 아라한이 되리라.”

부처님이 반열반하실 때까지 곁을 지킨 뒤 아난다는 수행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붓다로 하여금 붓다로 온전히 지내실 수 있도록 자신의 수행을 미루신 분, 아난다 존자가 바로 그런 분입니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