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한 동물 식물]타마린드와 까마귀

붓다의 비유설법에 등장하는 타마린드와 까마귀

2018-09-03     심재관

타마린드

타마린드(Tamarindus Indica)는 아직 한국 불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나무다. 그러나 인도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이 완전히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커리를 만들거나 처트니를 준비하게 된다면 그 종류에 따라 타마린드 주스나 페이스트가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 : 심재관

타마린드의 열매는 예로부터 굳이 발효를 통해 식초를 만들 필요 없이 신맛이 필요한 음식에 적당한 풍미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약간의 단맛도 가지고 있기에 새콤달콤한 맛의 식음료를 만들기 적당한 재료다. 타마린드 열매는 아카시아처럼 콩깍지가 있는 열매를 맺는데, 이를 물에서 끓이거나 졸여서 만든 타마린드 주스나 페이스트는 최근에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외국 이민자나 노동자들을 통해서 많이 활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붓다는 생전에 이 타마린드 숲을 자주 오갔던 모양이다. 경전 속에는 타마린드 나무의 비유를 통해 설법을 하는 모습이 드물지 않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붓다가 타마린드 숲에서 설법을 할 때면 이 타마린드 나무의 잎을 통해 비유를 들었다. 타마린드 나무에는 마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미모사 또는 아카시아와 같이 긴 잎대에 작고 길쭉한 잎들이 마주보고 난다. 수많은 잎대에 작은 잎들이 붙어있기 때문에 붓다는 종종 이 잎들의 많고 적음을 비유로 들어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니 붓다는 때때로 타마린드 숲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타마린드 나무를 사랑했음이다.

한 때, 붓다가 코잠비Kosambi에 거주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코잠비 성읍 외각에 있었던 타마린드 숲 속에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붓다는 타마린드 나뭇가지의 잎들을 훑어서 몇 잎을 손 안에 넣고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내 손아귀에 있는 잎들이 더 많은가, 아니면 이 타마린드 나무에 달려있는 잎들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당신의 손 안에 있는 잎은 몇 개에 지나지 않으니 타마린드 나무에 달려있는 잎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붓다는 곧바로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설명한다. 

“바로 그와 같다, 비구들이여. 내가 깨달은 바는 타마린드 나무의 잎과 같이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그대들에게 가르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왜 그대들에게 나의 깨달음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그대들의 깨달음과 연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들 사문의 삶의 근본이 되는 바와 관계없기 때문이다. 고집멸도의 길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구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드러냈던 바는 무엇인가. ‘이것이 고통이다’, ‘이것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이같이 말했던 것이다. 내가 왜 이것을 가르쳤겠는가. 이것이 사문의 근본적인 길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고통을 여의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전에서 이 타마린드 나뭇잎은 무수히 많은 것의 비유로 등장한다. 

붓다가 어느 여름 숲 속의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그는 숲 속에서 비탄에 젖어 울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그 남자는 자신에게 걸어오는 이가 세존임을 알아차리고 붓다의 발에 입을 맞추고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제가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해 모든 행복과 부를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비참하고 번뇌로 가득할 뿐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윤회의 삶을 저는 언제쯤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때 붓다는 옆에 서있던 망고 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옆의 망고 나무가 보이지요. 그 나무에 몇 개의 망고가 열려있는 것이 보일 겁니다. 당신은 저 망고 열매의 수만큼 윤회를 반복하다가 삶을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 남자는 열댓 개의 망고 열매가 달린 것은 보고는 다시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심을 다해서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저렇게 많은 윤회의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붓다는 그 남자를 지나쳐 들판을 지나 타마린드 숲을 지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의 삶에 회한을 느끼며 붓다에게 다시 물어왔다. 

“세존이시여, 저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낮에는 타는 듯한 더위에 노예처럼 일했고, 밤에는 젖은 땅이나 건초 위에서 겨우 잠을 청했을 뿐입니다. 행복은 그 어디에도 없고 오직 고통만이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저는 언제까지 이러한 고통스런 윤회의 삶을 반복해야 열반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때 붓다는 숲 속에 무성히 자라난 타마린드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나무는 매우 높이 성장했으며 수많은 가지마다 잔가지들이 자라났고, 잔가지들마다 무수한 잎대에는 잎들이 달려 있었다. 

“사내여, 당신은 저 타마린드 나무가 보이는지요. 당신이 이 유전하는 세계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기쁨을 느끼기 까지는 저 타마린드 나뭇잎의 수만큼 거듭 윤회하는 삶을 반복해야합니다.”

사내는 수천 혹은 수천만의 잎들이 달려있는 그 타마린드 나무를 올려다보고 기쁨에 겨워 울면서 붓다의 발에 입맞추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세존이시여. 저 세월도 곧 다하겠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망고열매의 수가 많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타마린드 나무의 이파리 수나 갠지스 강의 모래알들이 더 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고사에 따라 타마린드 나무의 씨앗은 인욕과 부단한 정진의 상징이 되었다. 


  
까마귀

불교 전통 속에서 까마귀는 다양한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팡차탄트라Pañcatantra』나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꾀 많은 동물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티베트불교의 전통에서 보듯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표현될 때도 있다. 때로는 인간의 근처에서, 마치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이, 사고를 저지르는 어리석은 충동적 존재로 묘사할 때도 있다. 소위 ‘까마귀 자타카’에 묘사되는 이야기는 이러한 까마귀의 여러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사진 : 심재관

세존은 한 때 바라나시 근처의 숲에서 살고 있었던 까마귀로 태어난 적이 있었다. 까마귀의 왕으로서 바라나시 인근의 까마귀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라나시 성 근처에 살던 두 마리의 까마귀는 왕의 사제가 목욕하러 갠지스 강으로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제는 아침 동이 틀 무렵 강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도를 하며 정갈한 몸을 하였다. 그런데, 두 마리의 까마귀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바라문의 머리 위에 똥을 누고 싶어 했다. 

“이봐 저 바라문의 머리에 함께 똥을 싸보는 게 어때?”

“갑자기 왜 그러는 건가. 그러다 바라문의 분노를 사게 되면 우리 까마귀들 전체에 큰 화가 미칠 수 있다네. 그만두세.”

“난 그리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다네.”

동료 까마귀는 친구 까마귀의 충동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까마귀 한 마리는 막 깨끗이 목욕한 바라문의 머리 위에 똥을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바라문은 까마귀가 자신의 머리에 일부러 똥을 싼 것을 알고는 몹시 분노했다. 그리고 바라나시 성 안의 모든 까마귀들을 없애버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때마침 여자 시종 가운데 한 명이 쌀을 말리기 위해 땅바닥에 쌀을 펴놓고 지키고 있었다. 그곳은 왕의 코끼리 축사 근처였는데, 그곳에는 여러 마리의 아름다운 코끼리들이 사육되고 있었다. 그 시종이 벼를 말리면서 선잠이 들었을 때 염소가 벼를 훔쳐 먹고 도망가기를 반복하였는데, 화가 난 시종은 나중에 잠든 척하면서 염소가 다시 왔을 때 염소의 수염과 꼬리에 불을 붙여서 혼내주었다. 그러나 불붙은 염소는 길길이 날뛰게 되었고 결국 근처에 있었던 코끼리 축사에도 불이 붙어 코끼리의 등은 불로 크게 그을려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코끼리들이 등에 상처를 입은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는 사제를 불렀다. 그가 바로 머리에 까마귀의 똥을 뒤집어썼던 그 바라문이었다. 왕은 코끼리 등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바라문은 코끼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까마귀의 기름뿐이라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까마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 바라나시에 사는 모든 까마귀에 대한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은 땅과 지붕 위에서 까마귀를 향해 화살을 날렸고, 그물도 동원되었다. 살아남은 까마귀들은 까마귀 왕에게 찾아와 자신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세존의 전생이었던 까마귀 왕은 살라나무 위에서 십바라밀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백성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죽음을 무릅쓰고 왕궁으로 날아갔다. 창문이 열린 왕의 방안으로 들어가 좌대 아래에 몸을 숨겼다가 왕이 들어오자 몸을 드러내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사실을 고하기 시작했다.

“왕이시여, 코끼리가 등에 입은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저희 까마귀들을 죽이는 것은 바라문 사제의 잘못된 간언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잘못된 치료라는 것인가?”

“왜냐하면 저희 까마귀들은 지방이나 기름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기름기가 까마귀에는 없는 것이지?”

“왜냐하면 저희 까마귀들은 늘 사람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 눌려 살기 때문이지요. 불안 속에서는 지방이나 기름기 있는 육신을 갖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까마귀는 왕에게 오계를 설명해주고, 즉시 까마귀에 대한 살육을 멈출 것을 요청했다. 왕은 까마귀 왕에게 곡식을 주어 극진히 대접했을 뿐 아니라 까마귀들에 대한 살육을 멈추게 하였다. 이 전생담은 까마귀의 지혜를 보여줄 뿐 아니라 까마귀의 충동적인 면모와 인간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까마귀의 생태를 보여주고 있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현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