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으로 읽는 현대경영] 청규경영, 바른 계율의 실천

청규淸規경영, 바른 계율을 실천해서 존경받으며 장수

2018-08-28     이언오

|    계율이 수행·보살행을 이끌고 승가 공동체를 지탱

계율은 부처님 삶과 초기 교단의 운영 방식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은 출가와 고행, 정각에서 열반에 이르는 일상에서 계율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함께 탁발하며 청빈하게 생활하셨다. 자신이 언행에 솔선했고 의문·갈등을 해소해 규율을 정착시켰다. 스승을 믿고 계율을 지키는 제자·신도들이 늘어나서 불교가 자리를 잡았다. 원형이 워낙 뛰어나 오래도록 정체성을 지키며 발전할 수 있었다. 

부처님 정각의 전후 장면을 살펴보자. 고행 집착이 잘못이라 여겨 우유죽을 드시고 선정에 드셨다. 계가 정·혜의 바탕, 중도가 바른 계임을 의미한다. 파계에 실망했던 제자들은 부처님 위의에 감동받아 경배를 했다. 깨달아야 계가 완성된다 하겠다. 팔정도도 혜(견해·생각)를 계(말·행동·생업)보다 앞세운다. 계·정·혜는 솥의 세 다리, 수행·보살행은 단지. 계가 튼튼해야 수행·보살행이 원만하다.  

계가 내적 자제라면 율은 외적 강제이다. 마음이 일체를 만드니 스스로 계를 지켜야 한다. 율은 근기·상황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면 된다. 부처님은 법회에 늦게 온 신자에게 식사부터 하라고 했다. 병든 제자에게 육식을 권했다. 제바달타에게는 조직 통제보다 대중화합을 우선하라 일렀다. 나중에 계율에 대한 견해 차이로 교단이 분열되었다. 계율에 속박되거나 고행·방일의 극단에 빠진 부파는 소멸했다. 중도를 취하며 진화한 경우는 살아남고 또한 융성했다. 

동아시아에 전래된 불교는 선종으로 꽃을 피웠다. 선종은 자율·자립을 버팀목 삼아 난세를 견뎌냈다. 수행·보청普請의 활달한 기풍이 물질·권력에 초연하도록 했다. 특히 백장청규의 선농일치는 수행과 육체노동을 하나로 보았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을 줄이면 작식作食, 일해서 먹고살겠다는 선언이다. 평상심의 도를 생업·생활에서 실천한 것이다. 불교의 경제 계율은 둘 중 하나. 부처님처럼 탁발하며 청빈하거나 백장처럼 작식하며 당당하거나. 둘 다 수행이 전제이다.

범망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48경계, ‘술 팔지 말라’는 10중대계이다. 개인 일탈보다 사회 해악을 더 경계한다. 계율은 수행에 도움 되고 세속고통을 치유해야 한다. 일제하에서 승가는 대처·육식으로 근본 오계를 범했다. 봉암사 결사로 청규를 복구했기에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재가자는 일반인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출가자는 극도로 도덕적이어야 한다. 계율을 지켜서 최소한 지탄은 받지 않아야 불교가 회생한다. 계가 바탕 되어 정·혜와 수행·보살행이 활발해져야 불교가 융성한다.

|    300년 한결같았던 경주 최 부잣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경주 최 부잣집은 300년 동안 존경받으며 번창했던 명문가이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데 12대 만석꾼 9대 진사가 이어졌다. 시조는 신라 말 최치원, 중시조는 조선 중기 최진립 장군. 최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68세에 병자호란 전장에서 순국했다. 자손들은 개간 사업으로 농지를 늘려나갔다. 가족이 솔선하면서 일꾼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했다. 이앙법 도입, 수리관개 등으로 농지의 생산성을 높였다. 소작료가 8할이던 시대에 5할만 받아 함께 하려는 소작민들이 줄을 이었다. 

부를 일구고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지도자의 책무)를 실천했다. 다음은 최 부잣집 가훈으로 내려온 것들이다. ‘재물을 분뇨처럼 보라’ ‘흉년에 땅 사지 말라’ ‘만 석 이상 재산 늘리지 말라’ ‘시집온 며느리 무명옷 3년 입혀라’ ‘진사 이상 벼슬하지 말라’ ‘사방 백 리 굶는 사람 없게 하라’ 등. 행랑채는 선비·식객의 교류 공간, 의병·독립운동가의 은신처로 제공되었다. 적선·음덕이 쌓여서 난세에는 노비와 마을 사람들이 가족을 보호했다.  

12대손 최준은 일제 강점기에 거액의 독립자금을 희사했다. 백산 안희재가 임시정부로의 운반을 맡았다. 해방이 되어 김구와 만난 자리에서 최준은 자금이 정확하게 전달된 것을 확인했다. 그 순간 백산 묘소가 있는 남쪽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남은 재산을 대학 설립에 희사해서 청부淸富의 역사는 끊어졌다. 한옥 공간은 현재 최 부자 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재선 일곡재단 이사장은 최 부잣집 후손이다. 65세에 사업을 정리해서 50억 원을 마련해 재단을 설립했다. 양서를 문고판으로 축약해서 지도층 인사와 공공기관에 무료 배포한다. 재단 비리를 캐려고 교육청이 감사를 한 적이 있었다. 유례없는 모범 운영으로 판명이 나서 표창장을 받았다. 최 부잣집 청규는 국내기업들에게 귀감이 된다. 이처럼 바르게 사업하면 존경받으며 장수한다. 

기업 계율은 팔정도의 정명正命이다. 정과 청은 점 하나 차이, 정명을 점심點心함이 청규. 마음에서 우러나 청규를 실천해야 한다. 미국 유통업체 노드스트롬Nordstrom의 규칙은 ‘모든 상황에서 최상의 판단을 한다’뿐. 폭설이 내린 날, 한 매장의 계산대가 고장이 났다. 책임자는 고객들에게 카트의 물건을 챙겨 귀가토록 조치했다. 30분간 발생 손실은 4천 달러. 고객들은 댓글로 칭찬했으며 본사는 책임자를 격려했다. 

청규는 행동의 습관이다. 어릴 때 가르치고 선배·스승이 모범 보여야 하는 이유이다. 가정·사회 교육은 부실하고 도덕 잣대는 엄격해졌다. 권력자·부유층이 존경받지 못하고 희생양 되기가 다반사이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도덕성이 결여된 지위·재산은 사상누각, 발밑을 살펴 겸손·헌신해야 한다. 자신부터 주인공으로 바로 선 연후에 후배·차세대를 훈육해야겠다. 

청규는 지속가능하게 한다. 한 철강회사는 직급에 상관없이 안전모 색상을 통일했다. 다른 회사는 코너 사무실을 원하는 임원들이 많아 본사를 십자형(12면)으로 지었다. 당연히 후자가 부실화되었다. 규율 있는 기업은 위기 발생 확률이 낮으며 위기가 닥쳐도 쉽게 극복한다. 공장 청소를 통해 기업이 회생한 사례도 있다. 청소로 종업원들 마음이 모아져 품질 향상과 고객 신뢰가 이어졌다. 청규는 기업의 창업·성장·재기를 성공시키는 엔진이다.

청규는 실수·실패에서 배우며 다져진다. 부처님은 첫 화살은 흘려보내고 두 번째 화살에 바르게 대응하라고 하셨다. 실수·실패는 불가피하므로 끊임없는 개과천선이 요구된다. 기업은 포살·자자를 응용해서 윤리경영의 리셋을 시도해야 한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풍토를 혁신해야 도덕적으로 거듭난다. 과거 동기, 현재 과정, 미래 결과의 삼세·삼업이 모두 여의해야 가능한 일이다. 
 
|    불교와 기업의 선농일치로 먹고사는 청규를 선도

세속의 계는 모호하고 율은 형식적이다. 고루한 구세대와 가벼운 신세대가 서로 탓한다. 불교는 구세대의 전형, 계율이 고착·고립되었다. 항목·판단이 시대에 뒤떨어졌는데도 규범 마련과 실천에 소홀하다. 각계 지도자들의 도덕성이 하나같이 실추된 위기 상황이다. 불교는 튼튼하면서 유연한 계율로 세속의 트램펄린이 되어야 한다. 그 위에서 자유롭게 뛸 수 있도록. 

명상이 정신치유에 도움을 주고 교학은 현대물리학 원리와 소통하고 있다. 정·혜에 비해 계율의 역할이 미흡하다. 불교가 청규를 통해 세속과 불이不二해야 승속이 함께 맑아진다. 계율이 세속 모범이 되고 좋은 영향을 미쳐야 불교가 융성한다. 세속에 오염되고 잘못된 행태를 보이면 쇠락한다. 계율에서 현재 불교 수준이 드러나니 참회해야 한다. 계율이 미래불교 융성의 해답이니 분발해야 한다.

선농일치가 불교를 활성화·대중화하는 길이다. 얼마 전 방한했던 중국스님은 “한국 스님들은 일을 안 해서 그런지 다들 비만이다”고 말했다. 보조금, 입장료, 시주로 풍족한 사찰경제는 세속 용어로 졸부이다. 소규모 사암·포교당은 가난해서 기본적인 수행·전법조차 버겁다. 현장 단위조직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해야 한다. 경허 스님은 나병에 걸린 여성과 함께 지냈다. 취약계층 의료사업. 수월 스님은 주먹밥·짚신을 만들어 길손에게 보시했다. 사찰음식과 전통공예 사업. 생각만 바꾸면 유기농, 빈민·노약자 지원, 출판문화 등 불교사업의 기회들이 널려 있다. 

기업들이 계율의 바탕 없이 성과에 매달리고 있다. 탁발과 작식을 경영의 바른 계율로 삼을 만하다. 기업 활동은 그렇고 그런 돈벌이가 아니다. 노동·경영은 수행의 일환이다. 출가자가 기업가 정신을 지도하고, 재가자는 경영·소비를 지원해야 한다. 해제 기간에 시장에서 상인과 같이 물건을 파는 만행은 어떨까. 옛 선사들처럼 일하다가 깨닫는 재가자들이 속출할 지도 모른다.

기독교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고, 이슬람은 하루 5차례 예배를 한다. 종교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결속이 강하다. 불교는 정·혜에 치우쳐 재가자의 생활·생업과 멀어졌다. 『인왕반야경』과 『부모은중경』이 충효 윤리의 근거였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자. 불교가 개인윤리와 사회교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처님의 탁발, 백장의 작식에 계율의 해답이 나와 있다. 꺼내 쓰면 되는데 마음이 어리석고 몸은 게으르다. 개인 신행과 도덕적 삶은 둘이 아니다. 불국토는 도덕적 사회의 이상향이다. 계율의 중요성에 새롭게 눈을 떠서 믿고 실천해야 한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