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어머니

빛의 샘,잊을 수 없는 사람

2007-09-15     관리자

작열 하는 태양이 여름만을 끝없이 이어지게 할 것 같더니 며칠 사이에 선선한 기운이 감돌면서 차가운 물보다 따뜻한 물이 좋고 외출시에도 긴소매 옷으로 갈아입게 되니 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로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계절, 가을이 깊어 갈수록 화려하고 들떠 있던 마음은 어느새 서정적이고 감상적으로 젖어들어 무언가 정리정돈하고 싶어지는 조용함으로 가라 앉는다.
마음이 조용해지면서 주변을 되짚어 보게 되고 그동안 생각지 않았던 누군가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지나간 추억도 새겨보게끔 하는 게 가을이란 계절에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나 또한 이 계절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학창시절의 친구나 아니면 막연하게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가을을 맞았었다.
그런데 결혼 8개월에 접어든 신참내기 주부인 올 가을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유난히 친정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한 가정의 주부로서의 위치에 있는 현재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결혼을 해봐야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와 자식들의 건강을 돌보느라 항상 어머니의 건강은 뒷전에 미뤄둔 채 희생하면서 바쁘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지나간 세월이 이젠 가슴으로 느껴진다.
사회생활이고 자아실현이고 취미생활이고 하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에서 떠나서 이젠 가족의 휴식공간인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요즘 나의 일상들,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으로 해야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까 고민하고, 청소에 빨래에 .... 이런 보상없는 가사일에 매달려 생활하다보니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다.
40여 년 가까운 세월을 이러한 일상에 매달려 살아오신 어머니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리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고 허리가 아프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말로 듣고 넘겨 버리곤 하였다. 아무리 몸이 불편하시더라도 그 몸을 이끌고 가족들 뒷바라지에서 헤어나지 못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고 항상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던 것이다.
어머니가 감기 기운이라도 있어서 아프시다는 말씀을 하시면 짜증이 나서 오히려 "이 옷은 오늘 입어야 되는데 아직까지 다림질 안하고 놔뒀느냐." "반찬은 그게 뭐냐."는 식의 투정으로 맞서던 때가 이제와서 후회스럽다. 그것도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 내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심란하더라도 어차피 가사일은 내 차지라는 것을 안 지금에 와서야 서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한평생 자신을 위해 보약 한 번 지어 드시지 못하시면서 이번 여름에 사위가 여름을 타는지 기운이 없다 한다고 하니까 선뜻 보약을 지어 보내시면서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 어머니의 바람든다는 다리가 이젠 정말로 걱정스럽다.
지난 추석에도 결혼해서 분가한 자식들을 맞이하기 위해 이것 저것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시고 떠나는 자식들 손에 조금이라도 보따리 보따리 더 싸서 보내시려고 혹시나 모자라지나 않을까 시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셨다니 어머니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끝이 없는가 보다.
이제는 우리 자식들이 연로하신 어머니 걱정을 해야 할텐데 ....
추석이 지나간 가을 하늘이 저만큼 높아졌고 그 높아진 하늘 아래로 저멀리 더 넓게 보인다. 꼭 어머니의 마음 같다.
나도 가을 하늘 같은 어머니의 넓고 높은 마음을 닮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고혜경 님은 '63년 서울 출생으로 신참내기 전업주부이다. 현재 방송통신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