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 스님 생활법문] 남편이 죽도록 미울 때

2018-06-28     광덕 스님
이 법문은 1987년 5월 13일 열린 법회에서 말씀하신 법문 중 일부를 담았습니다.

|    나를 먼저 바꾸자
어제 신앙수기를 읽다 보니 우리 불자들이 매우 중요한 열쇠를 모두 다 잡아서 잘 쓰고 계시다는 생각이 새로 들었습니다. 어제 제가 읽었던 수기를 쓰신 분은 올해 61살의 보살님인데, 그분 따님이 여러 법회를 다녀봤지만 불광법회 법문이 제일 마음에 와닿아서 먼저 믿음을 갖게 되어 자기에게 권했다고 하는 내력을 쓰신 것이었습니다. 그 보살님이 무엇을 특징적으로 보았는가 하면,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가 먼저 바꾸어라’는 대목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나 밖에 엄연히 있고, 그 원인도 엄연히 나 밖에 있는 것으로 아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 상식입니다. 내 환경을 바꾸려면 내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줘야 하겠다든가 사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겠다든가 집권자들이 어떻게 해줘야 하겠다든가 하는 식으로 밖으로만 눈을 돌려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거기에서 불평과 투쟁이 생겨나고 소란한 세상이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먼저 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작게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생활환경에서부터, 좀 더 나아가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지금 세상에 있는 것까지 그 모두는 마음 상태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음상태가 어떡해야 하겠습니까? 언제든지 바람직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내 환경을 밝고 기쁜 일로 가득 차게 하고 싶거든, 먼저 내 마음부터 기쁘게 가져야 합니다. 이웃에 대해 미움과 대립을 갖고 싶지 않거든 내 마음의 대립을 먼저 무너뜨리고 미움을 털어버리고, 그 대신 사랑으로 너그러움으로 용서로 무대립으로 채우라는 것이 우리 입장입니다. 

실은 그것이 진리의 길입니다. 대개 마음에 무엇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는 것도 다릅니다. 자비한 마음 사랑스러운 마음 좋다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 사람이 좋게 보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것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까지도 다 좋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플러나 혹은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 하나까지도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을, 아마 형제들은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사랑을 못 해봤기 때문에 그런 점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아내가 얼마나 고우면 처가의 소를 매어두는 그 말뚝까지도 곱게 보이겠습니까. 반대로 미움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미운 것입니다. 내가 들은 이야기인데 남편이 미워지니 남편이 벗어놓은 와이셔츠 같은 옷도 발길로 차고 싶다고 하더군요. 벗어놓은 옷도 더러워서 손으로 쥐지 않고 손가락으로 집어서 세탁기 안에다 넣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더라도 사랑스러운 마음은 아름답게 만들고, 미워하는 마음은 더럽게 보이고 더럽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미움과 심각한 대립 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저 무사한 것처럼 포장을 하고 살다 보면 거기서부터 사고가 납니다. 화합하지 아니하고 격렬한 대립심을 품고 지내다 보면 여러 가지 병이 생기는데, 끈질기게 낫지 않는 종류의 병들이 많이 납니다. 병이 생겨서 좀체 낫지 않는다면 저는 대부분 그 사람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화합하고 있느냐, 미움을 품고 있느냐, 서로 숨은 대립과 감정을 갖고 있지 않느냐 그것을 파악하고자 노력합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마음속에 큰 보따리를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움을 다 녹여 없애 버리고 불평을 다 받아주는 너그러움을 특별히 가져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남편이 왜 저럴까?
양 씨라는 분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양 씨는 직장 상사가 청혼해서 결혼했답니다. 처음에는 자기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였고, 세월이 흘러 세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남편이 미워졌답니다. 무엇을 하든지 자기 입장은 생각해 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나오고 게다가 성질은 급해서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집안에서 벌어져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상태를 유지할까, 내가 죽으면 애들이 불쌍하니 애들까지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버릴까’ 등등 별생각을 다 하게 되었답니다.

죽을 생각까지 하다가 막상 자살하려고 하니 미운 사람을 놓아두고 자기만 죽기가 억울해서 남편을 죽일까도 심각하게 생각했답니다. 막상 남편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번번이 날짜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어서 ‘이럴 것이 아니다. 같이 안 살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무조건 집에서 나와 버렸습니다. 애들은 집에다 두고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나와서 혼자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직업을 갖고서 애들을 데려오겠다고 마음먹고 몇 년을 그렇게 지냈답니다. 그동안 침놓는 법을 배워 아는 사람들도 생기고 해서 그럭저럭 살아갔답니다. 그런데 가출한 후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가 아프다는 한 젊은 처녀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심각한 충격이 될 만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그럴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직장상사가 어찌나 거칠게 대하는지 매일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으며 지내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불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미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직장상사를 미워할 수도 없고, 참고 있자니 눈물만 나오고 그러다보니 별안간 허리가 아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불교를 모르고 남편에 대한 미움만 생각하면서 살다가 그 환자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 ‘아, 미워하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답니다. 불교 관련 책도 읽고 절을 찾아가고, 법회에 다니면서 불교에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염불도 배우고 염불을 열심히 하다 보니 ‘내가 다 잘했는가?’ 하는 반성이 나오고 그 반성을 하다 보니 ‘내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할 것인가? 남편도 남편이지만 애들하고 떨어져서 내가 끝까지 혼자 살아야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집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답니다.

6~7년쯤 지나서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애들이 ‘엄마가 없는 사이에 우리들도 많이 컸으니까 염려 말고 오세요’라고 해서 집에 들어갔답니다. 그동안 이혼하자고 해도 남편이 불응한 채 재혼도 안 하고 애들하고 살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남편의 태도는 하나도 고쳐지지 않아서 여전히 일방적이고 성급하고 마음에 안 들면 마구 내던질 것 같은 태도를 취했답니다.

그러나 양씨가 예전보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은 불교를 알았던 것입니다. 절에서 배운 염불을 하다 보니 차츰차츰 자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한번은 너무도 마음이 불안해진 나머지 염불하고 독경하면서 ‘남편이 왜 저럴까?’를 생각하다 깨달은 것이 있었답니다. 자기도 직장생활 해 보았듯이 남편이 직장에서 상사, 거래처와 충돌하고, 집이라고 와보면 아내와도 매일 충돌하니 남편 입장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부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여 얼마를 눈물 흘렸는지 가슴이 후련해지더랍니다.

그 이후부터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 남편의 태도가 나쁘다고 말하고, 밉기만 하고, 원망스럽기만 하던 남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답니다. 그 사람이 벗어놓은 옷조차도 발길로 차고 싶고 밥 먹으면서 손에 닿은 수저도 만지기 싫고 더러워 보이고 그렇게 가까이하기 싫었던 생각이 다 풀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성질을 부려도 너그럽게 받아들여지고, 아침에도 밝은 얼굴로 보내고 퇴근 후에도 역시 밝은 얼굴로 맞게 되고, 모든 일에 대해서 대립적인 마음과 감정으로만 대해지지 않더랍니다. 그렇게 자기가 바뀌고부터 몇 달이 지나가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는데 맨 먼저 바뀐 것이 생활비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집안 생활비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애를 먹게 했는데, 월급날이 되면 저녁에 아무 말 없어도 그전보다 넉넉하게 내어놓더랍니다. 이 분은 이렇게 염불을 하고 잘못된 점을 뉘우치고 마음을 비우니 환경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역시 누구나 마음에 큼지막한 보따리를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원망스럽고 밉상스러운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해주고 감싸주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큰 보따리, 큰 주머니를 차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분은 마침내 염불하고 독경하는 가운데서 마음 비우는 것을 알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태도가 되면서부터 집안에 평화가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끊임없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함으로써 내 마음 가운데 어두운 생각을 모두 털어버리고 모든 번뇌 망상과 나쁜 생각들을 다 비워 버리고, 부처님의 광명과 공덕 위신력 은혜가 충만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염불하고 수행하면서 나와 함께 있는 내 가족 내 이웃 등 모든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하반야바라밀 수행은 최상 가운데 다시 최상의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