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욕쟁이를 두둔한 붓다

2018-06-28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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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제자 중에 유명한 욕쟁이가 한 명 있다. 그는 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 Pilinda-vatsa)이다. 한문에서 그의 이름을 ‘악구惡口’라고 번역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입이 더러운 사람’이었다. 『마하승기율』과 『대지도론』에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머무실 때 일이다. 그 무렵 필릉가바차가 어느 마을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는 매일 갠지스강 건넛마을로 걸식을 다녔다. 그는 갠지스강가에 다다를 때마다 손가락을 튕기면서 늘 이렇게 말했다.

“야, 이년아! 멈춰라. 나 좀 건너자.”

그러면 갠지스강이 당장 멈추고 바닥이 드러났다. 그는 강을 건너고 나면 또 이렇게 말했다. 

“야, 이년아! 이제 흘러가거라.”

그러면 갠지스강은 다시 도도하게 흘렀다.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자, 갠지스강의 여신이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와 투덜거렸다. 

“부처님, 필릉가바차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맨날 말끝마다 이년 저년입니다. 제발 욕 좀 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이 말을 듣고, 부처님이 곧바로 필릉가바차를 불렀다. 

“네가 갠지스강의 여신에게 매일 이년 저년 한다는 게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갠지스강의 여신이 그 말 때문에 상처받고 너를 싫어하고 있다. 여신에게 사과해라.”

그러자 필릉가바차가 정중히 합장하고 여신하게 고개를 숙였다. 

“야, 이년아!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야, 이 년아! 용서해라.” 

갠지스강의 여신은 기가 막혔다. 

“또 이년 저년 하면서 그게 무슨 사과입니까?”

그때였다. 붉으락푸르락 분을 참지 못하는 여신을 부처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여신이여, 노여워 말라. 저 사람이 말만 저렇지 마음은 너무도 겸손한 사람이다. 습관이 고쳐지지 않아

‘이년, 저년’ 하지만 그대를 업신여겨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놀라운 일이다. 부처님은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비난받는 걸 몹시 꺼려한 분이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비난의 소리가 들리면 당장 불러 꾸짖고 고치게 하셨으며, 그 비난이 당신이 세운 원칙이나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면 당장 대중을 모으고 그 제도를 바꾸셨다. 여름 우기에 3개월 동안 안거하는 제도를 만들고, 하루에 점심 한 끼만 먹도록 정하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부처님은 그런 분이셨다. 구구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며 변명을 늘어놓거나 제자들을 두둔하는 행동은 좀처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유독 필릉가바차에게만은 달랐다. 호되게 꾸짖기는커녕 도리어 잔뜩 화가 난 여신에게 “당신이 좀 이해해 주세요”라고 하신 것이다. 게다가 필릉가바차를 두둔한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의 고약한 말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과 여덟 명의 대 제자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나 “이놈아, 저놈아” 하였다. 재가자는 물론이고 자신의 스승, 승단의 어른들에게까지도 예외가 없었다. 결국 비구들 사이에서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 

“왜 아무에게나 이놈, 저놈이야? 저만 바라문 출신이야? 가섭 존자, 사리불 존자, 목련 존자도 바라문 출신이지만 그분들이 우리에게 ‘이놈, 저놈’ 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어. 저런 사람은 승단에서 쫓아내야 해!”
비구들은 회의를 소집하고, 사람을 보내 필릉가바차를 불렀다. 심부름꾼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대중스님들이 모여 장로를 부릅니다.”

자신을 쫓아내려는 것임을 눈치챈 필릉가바차는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사람을 보내도 끝내 나오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비구들은 “그가 오지 않겠다면 우리가 갑시다” 하고 결정하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그대들은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비구들이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서 내가 부른다고 하라.”

부처님이 부르신다는 말에 드디어 필릉가바차가 문을 열고 나와 대중 앞에 섰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그대가 비구들에게 ‘이놈, 저놈’ 했다는 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네 말버릇 때문에 비구들이 상처받고, 너를 싫어하고 있다. 비구들에게 사과하라.”

그러자 필릉가바차가 애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부르려고 하면 저도 모르게 ‘이 놈’ 소리가 튀어나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필릉가바차가 ‘이놈, 저놈’ 한 것은 그가 교만하거나,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거나, 남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500생 동안 항상 바라문 집안에 태어나 그런 말투가 입에 배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다. 자칫 일방적으로 한쪽을 편드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부처님은 유독 필릉가바차에게 이리도 관대하셨을까? 이 의문은 『사분율』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를 읽고 저절로 풀려버렸다. 

 

필릉가바차가 가끔씩 방문하던 신자가 있었는데, 그 집에 두 꼬마가 있었다. 그 집에서도 필릉가바차는 여전히 “이놈, 저놈” 하고, “이년, 저년” 하였다. 그런데도 그가 찾아가면 부부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하였고, 아이들도 그의 다리를 붙들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릉가바차가 그 집에 걸식을 갔는데,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맞았다.

“이놈아, 이년아, 무슨 일이냐?”

“저희 집 애들이 사라졌습니다.”

“집 안 어디 있겠지. 구석구석 찾아봤어?”

“집 안에 있다면 지금쯤 스님 목소리를 듣고 쏜살같이 달려 나와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겠지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시 찬찬히 찾아봐.”

필릉가바차는 곧장 사원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천안天眼으로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았더니, 해적들이 아이들을 납치해 배에 태워서 가고 있었다. 필릉가바차는 신통력으로 곧바로 자신의 방에서 사라져 해적들의 배 위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필릉가바차를 발견한 아이들은 “스님!” 하고 달려들어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필릉가바차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다시 순식간에 그곳에서 사라져 아이들의 집 다락방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당에 나와 부부를 불렀다. 

“이놈아, 이년아, 애새끼들은 찾았냐?”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다락방도 살펴봤어?”

“이미 뒤져 봤습니다.”

“다시 가봐!”      

다시 다락방으로 간 부부는 드디어 아이들을 발견했다. 

 

필릉가바차는 이런 사람이었다. 말투는 거칠고 건방지기 짝이 없지만 아이들이 붙들고 장난치고 싶은 사람, 타인의 눈물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사람, 그 눈물을 몰래 닦아주고도 생색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는 겉은 시퍼렇지만 속이 잘 익은 망고였던 것이다. 부처님은 그 고운 속내를 알고 계셨기에 그리도 그를 두둔하셨던 것이다. 

마음이 곱다면 그 나머지야 …. 

겉만 뻔지레한 사람이 넘치는 세상이다 보니, 차라리 마음씨 따뜻한 욕쟁이가 그립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