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참파카와 마카라

2018-06-28     심재관
스리랑카 시기리야의 벽화. 오른쪽 손에 들고 있는 꽃이 참파카이다. 왼손에는 수련을 들고 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참파카
스승 석가모니께서 가끔 머물렀던 앙가An.ga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의 수도는 참파Campā였는데, 옆 나라 마가다에 복속된 후에도 불경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 속에서 이 도시의 통치는 비극적 영웅 카르나에게 위탁되었던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만큼 유서 깊은 도시라 할 수 있다. 지금의 비하르주洲 동쪽에 해당하는 참파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불교유적들과 고고학적 단서들을 통해 인도에서 가장 오래 전에 도시화가 진행된 곳 가운데의 하나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도시화가 된다는 것은 성채城砦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곽도시 참파는 갠지스와 야무나 두 강이 만나 벵골만으로 빠지는 강을 접해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한다. 고대에 이 도시는 태국과도 해상무역을 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전 속에는 이 도시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석가모니가 이곳에 머무르며 설법을 할 때 예의 등장하는 배경들이 있다. 그는 주로 참파에 있는 갈가(揭伽, Gaggarā)연못에서 설법을 하곤 했다. 이 연못은 그것을 축조한 왕비의 이름, 즉 가가라의 이름을 붙였던 것인데, 특히 연꽃으로 유명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도시의 이름이다. 붓다고샤Buddhagos.a는 이 도시의 이름 참파Campā가 꽃나무 참파카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꽃나무 참파카를 흔히 참파 또는 첨복이라고 단순히 부르기 때문이다. 왕비는 연못을 건설하고 그 둘레에 참파카를 심어 동산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아마도 석가모니는 우기雨期가 오기 전 활짝 핀 참파카의 꽃향을 맡으며 참파카 동산 옆에 있는 연못 주변에서 설법했을 것이다. 봄 날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했을 것이고, 따뜻한 공기가 참파카의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채 수행자들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참파카(Magnolia champaca)는 목련과의 나무로 제법 키가 큰 꽃나무이다. 한역경전 속에는 수없이 많은 참파카의 번역명이 등장하는데, 첨복가(瞻蔔伽/贍匐迦), 첨복瞻蔔, 섬복贍匐, 섬파睒婆, 첨파가瞻波迦, 담파薝波, 고말라苦末羅 등등이 그것이다. 경전에서 이 꽃의 색깔을 황금색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미루어 목련과의 특정한 종만을 지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파카는 수많은 불경 속에서 특히 향기가 매우 뛰어난 꽃나무로 그려진다. 인도인들은 당연히 이 꽃을 신이나 스승에게 공양했으며, 왕족이나 여인들은 몸을 장식하는데 사용했다. 지금도 공양을 올리는데 빠지지 않는다. 『브리핫-상히타Br.hatsam.hitā』에 설명된 것처럼 이 꽃을 이용해 향유나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는데 때때로 이 향유는 치료를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당연히 석가모니는 치료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수행자들이 이 꽃을 몸에 걸치는 것을 금지했었다. 『마하승기율摩何僧祇律』에 따르면, 난타와 우파난타라는 두 비구가 참파카로 만든 화환을 몸에 걸치고 도시를 배회한 적이 있었다. 재가자들이 이들의 행색을 마치 왕과 대신과 같은 세속의 행동으로 비웃자, 다른 비구들이 이 일을 석가모니에게 고하게 된다. 석가모니는 난타와 우파난타에게 사실을 묻고 그 이후로 비구들에게 꽃이나 화환을 몸에 걸치고 다니지 말 것을 당부한다. 두통이나 눈을 치료하기 위해서 머리에 화환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착용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특히 스리랑카에서 이 꽃은 성스러운 꽃의 하나로 손꼽힌다. 불상이나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릴 때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꽃이다. 스리랑카의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경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마힌다Mahinda 스님(아쇼카 대왕의 장자)은 불경도 전했지만, 그 땅에서 불탑과 불당을 지은 전설적 인물로 많이 등장한다. 마치 한국의 수많은 사찰이 창건된 사연을 의상 스님에게 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스리랑카 전설에 따르면 마힌다 스님이 불탑과 불당의 창건을 위해 참파카 꽃을 땅 위에 공양하면 그때마다 땅이 진동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땅이 진동하는 사연을 묻는 사람들에게 마힌다 스님은 그 땅이 바로 부처님께서 친히 왕래하셨던 곳임을 꽃과 땅이 증명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시기리야Sigiriya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시기리야의 바위산을 오르다보면 여인들이 꽃을 공양하는 모습의 벽화를 볼 수 있는데, 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꽃 가운데에 참파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수구를 장식하고 있는 마카라. 네팔 박타푸르. 필자는 꽤 오랜 동안 이 해수귀海獸鬼를 쫓아다닌 적이 있지만 아시아를 통틀어 박타푸르의 타우마디Taumadhi 광장에서 만났던 마카라만큼 뛰어난 작품을 보지 못했다.

마카라
마카라Makara는 고대 인도에서 시작해 아시아 전 지역으로 유포된 어떤 동물이지만, 여전히 그 정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혹자는 그것이 단지 신화적인 동물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현실의 어떤 동물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힌두문화와 불교문화사 속에서 이 동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카라는 불교의 도상圖像을 통해 미술사의 초기부터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물이며, 인도에서 동남아, 중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거쳐 간 거의 모든 지역에 이 동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설사 이것이 초기의 인도문화(베다나 인더스문화) 속에서 등장했다 하더라도, 불교미술의 장식적 요소나 불교문헌의 은유적 표현 속에서 매우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힌두교에서 이 동물은 물의 신 바루나Varun.a, 사랑의 신 카마Kāma, 그리고 갠지스강의 여신 강가Gan.gā와 같은 신들이 즐겨 타고 다니는 신비스러운 동물로 그려진다. 이 신들이 암시하듯 마카라는 물과 풍요를 의미하는 동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각이나 회화 속에 나타나는 마카라는 신화적인 합성동물로 보인다. 악어의 입과 코끼리의 코, 사자의 몸통과 물고기의 꼬리가 합쳐진 모습의 동물로 나타난다. 어떤 조각은 하마나 코끼리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또 어떤 경우는 돌고래나 악어, 혹은 뱀에 더 가까운 형상으로 표현된다. 

마카라의 인상적인 표현은 악어와 같이 긴 입 혹은 코의 모습인데 대체로 코의 모습은 머리 위쪽으로 휘감겨 올라가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학자들은 이 마카라의 원형을, 인도악어의 일종인 가비알Gharial이나 민물돌고래(river-dolphin) 등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특히 민물돌고래는 인도 북부의 강에서 자생하는 동물로 돌고래보다 훨씬 긴 입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현재 파키스탄의 인더스강이나 갠지스강에 살고 있으며 결코 바다로 나가지 않는다. 초기 힌두문화를 고려했을 때, 이 동물의 출현은 해양 동물이 아니라 오히려 내륙의 수생 동물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물들을 마카라의 원형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동물이 실제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여전히 여러 인도의 사전에서 이 단어를 ‘악어’ 등과 같은 동물로 간단히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은 임의적인 정의일 뿐이다. 

각설하고, 여러 불교경전 속에서 이 동물은 비교적 초기부터 신격화된 동물임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많다. 마카라는 한역경전 속에서 마갈어摩竭魚, 마갈摩竭, 마가라摩伽羅 등으로 불렀는데, 바다에 사는 축생畜生의 왕으로 그려지거나, 여의주 등을 품고 있는 거대한 바다의 신으로도 그려진다. 몸집은 커다란 배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게 묘사되고 있다. 불경 속의 여러 사례에서 마카라는 인간에게 풍요를 선사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보다는 두려움과 외경의 대상으로 그려졌으며, 다소 끔찍한 해수귀海獸鬼로 표현되는 경우가 더 많다. 

『분별공덕경分別功德經』에는 담마류지曇摩留支라는 장자와 석가모니의 대화가 잠시 그려진다. 대화 속에서 석가모니는 전생에 담마류지와 자신이 만났던 인연담을 들려준다. 전생에 석가모니는 어떤 바라문 장자로 태어나 정광불定光佛을 만나게 된다. 그 때 바라문 장자는 즉시 자신의 머리카락을 땅바닥에 깔아 정광불이 그것을 밟아 지나갈 수 있도록 공양하였고, 그 공덕으로 정광불로부터 후생에 부처님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수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옆에서 이를 지켜본 또 다른 바라문, 즉 전생의 담마류지는 부처라 해도 어떻게 사람의 머리카락을 밟고 지나갈 수 있는가라고 속으로 힐난하게 된다. 그 죄로 말미암아 담마류지는 바다의 괴물 마카라로 태어나 살아가게 된다. 

마카라로 태어난 담마류지는 바다에서 풍랑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어느 날 오백 명이 탄 배를 삼키려하니 뱃사람들이 일제히 석가모니의 이름을 외쳤다. 일말의 전생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마카라는 그 때 문득 자신의 본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다시 물속으로 되돌아간다. 그 후 자신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게 된 마카라는 뭍으로 나와 자기의 몸을 모레에 절반쯤 묻고 14일간 단식하다가 절명한다. 그 후 마카라는 곧 담마류지로 태어나게 되고, 현생의 석가모니와 해후하게 된 것이다. 

이 경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당시 불교인들에게 마카라는 공포스러운 바다의 동물로 그려지고 있으면서도 윤회의 존재로 그려진다. 당연히 마카라는 강이나 바닷가에 살고 있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마카라 신앙은 인도 해안가에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아Goa지방의 해안가 농민들은 해일이나 해수면이 높아져 농토가 바닷물에 잠기게 되면, 이것이 마카라의 분노라고 생각하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망게탑니Mannge Thapnee 의례를 치르곤 했다.                                          

인도 할레비드의 호이살레슈바라 사원에 조각된 마카라, 12세기경.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