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불교 상징] 화승畵僧 금어金魚

2018-06-28     김나래
금어의 탄생. 그림 : 김나래

금어金魚는 불화, 단청, 개금, 조각 등 사찰 불사의 모든 것을 두루 섭렵한 이에게 칭해진 용어로써, 존경을 담은 호칭으로 쓰인다. 그 유래는 부처님의 상을 그리면 내세에 극락정토 연못의 물고기로 환생시켜 주겠다는 불교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화승의 호칭으로 금어를 사용한 가장 빠른 화기畵記는 충북 갑사의 괘불도(1650년)로 확인되며, 이후 금어란 표현이 널리 사용 되었다. 

18세기 문헌 개암사 괘불의 화기(1749년)에서는 의겸 스님을 ‘금어존숙金魚尊宿’이라 표현하고 있어, ‘금어’는 남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존경받는 스승임을 확인 할 수 있다. 금어 외의 용어로는, 화사畵師·용면龍眠·경화敬畵란 존칭이 있으며, 비수毘首·편수片手·양공良工이란 호칭은 장인과 화승을 통용하는 의미로 쓰였다. 

실상은, 금어의 칭호가 현재 사전적 의미와는 또 다른 시련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말까지도 왕명으로 불화를 그리는 관직이 있었는데,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당시 종 9품 관직에 해당하는 내반종사內班從事에 봉직하는 관료 서구방과 김우문의 작품이었으며, 조선의 ‘관경변상도’(1465년 이맹근 作)나, ‘관음32응신도’(1550년 이자실 作) 또한 관료화가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될수록 관직은 사라지고 억불숭유 정책에 밀려난 승려들이 사찰불사 전반을 도맡아 하며 금어의 명맥이 전승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족한 절 살림에 큰스님들은 제례에 행해질 의식을 자급자족 했어야 했기에 동자승을 화동으로 길러 그 중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금어가 됐던 것이다. 

‘어지간히 대충’이란 뜻을 지닌 ‘얼추’는 불사의 1~2가지만 잘하는 화승에게 붙여진 ‘어축漁畜’에서 전해진 말이라는 설도 있다. 현실이란 급류 속에 사실상, 금어는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김나래
문화재수리기술자(단청, 도금)이며 불화 작가다. 불교미술일섭문도회 문도이며, 현재 북촌불교미술보존연구소 불화/보존 실장으로서 전통문화재 보존을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더불어 불교미술을 알리고자 일반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북촌단청공방에서 단청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