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명법문] 광명 붇다사 덕선 스님

나와 무명과 연기

2018-06-28     김우진

|    인연을 따라서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어느새 봄이 지나 여름에 들어섭니다.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연기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 일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삼독의 과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 가지 악한 생각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 악한 생각인가. 탐내는 생각, 성내는 생각, 남을 해치려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그것이다. 이것을 중생의 세 가지 악한 생각이라 한다.

그러니 수행자들이여 잘 알아두어야 한다. 만일 탐내는 생각을 가지면 목숨을 마친 뒤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만일 화내는 생각을 가지면 목숨을 마친 뒤에 개나 소나 닭 뱀이나 지네 따위의 축생으로 태어날 것이다. 만일 남을 해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면 목숨을 마친 뒤에 아귀로 태어나 온몸이 불타서 그 고통은 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중생들이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되면 지옥과 축생과 아귀에 태어나는 이유이니라.

반대로 착한 세 가지 생각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 착한 생각인가? 탐욕에서 벗어나려는 생각. 화내지 않으려는 생각. 남을 해치려 하지 않는 생각이 그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탐욕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인간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화내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남을 해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목숨을 마칠 때 모든 결박을 끊고 열반에 들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항상 세 가지 악한 생각에서 멀리 떠나 세 가지 착한 생각을 하도록 하라. 그러면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삼독의 과보에 대한 이 이야기는 탐진치의 악한 생각은 고통의 업이 되고, 탐진치에서 벗어나면 큰 덕을 쌓을 수 있다는 내용이지요. 『증일아함경』 「지주품」에서 말씀하신 이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연기법입니다.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소멸한다.”

‘탐진치의 마음을 쫒아 살면 탐진치의 결과가 오게 되고, 탐진치의 마음을 쫒지 않으면 탐진치의 결과가 오지 않는다’라고 해도 역시 앞서 말한 경전 말씀의 연기 논리에는 별 다름이 없습니다.

불교는 연기법을 떠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 곧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인연업과가 있는 것입니다.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회자정리의 인연업과가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 연기법은 부처님께서 만든 법이 아니라 본래 세상의 이치를 부처님께서 자세히 일깨워주신 것뿐입니다.

연기법을 우리말로 더 쉽게 정의하자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너무나 쉽고, 뻔한 이야기지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를 왜 위대한 법이라고 할까요?

 

|    콩과 팥과 나, 그리고 나와 무명과 연기

우리가 태어나게 된 근본원인은 곧 전생업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전생업의 근본인根本因을 불교에서는 무명無明으로 정의합니다. 무명이란 어둠이고 나 자신에 대한 정보부재를 말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어둡지 않다면 지금 우리는 중생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명을 제1원인으로 해서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이 ‘나’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로서 존재함을 믿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러므로 내가 무명으로 말미암아 ‘나’로서 존재하고 또 자신을 ‘나’로서 인식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명이 사라지면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몸과 마음으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다만 ‘나’로서가 아닌 ‘나 없이 존재하는 세계’의 존재가 있을 뿐입니다. 그 ‘나 없는’ 존재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공空’이라거나 혹은 ‘진공眞空’이라 하고, 더 간곡히 말해서‘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색불이공色不異空,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다’거나 ‘색즉시공色卽是空, 물질이 곧 공이다’라는 등등의 표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무명이 해소된 사람들의 표현일 것입니다. 

또 다음과 같은 표현도 있습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번뇌가 바로 보리이다’라거나,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죽고 사는 것이 그대로 열반일 뿐이다’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나’로서 존재하는 세계에서 보면 ‘나’가 기준이 된 세계가 있을 뿐입니다. 꿈속에서는 꿈이 곧 분명한 현실이듯이 말입니다.

이 무명의 근본 원인이 되는 ‘나’라는 아상의 마음씨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신身, 구口, 의意 삼업이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씨에 따라 몸으로 짓는 행위가 달라지고, 입으로 내뱉는 말이 달라지고, 마음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 즉 무명에서 발생된 ‘나’라는 아상我相의 콩 씨를 심은 것을 연기로 해서만 현재의 ‘나’라는 콩이 비로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곧 연기법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입니다. 
이처럼 내 존재가 삶이라는 현 존재의 모습으로 연기되어지는 무수히 다양한 인연업과의 중심에는 ‘나’라는 아상의 마음씨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마음씨는 언제든지 거둘 수 있고, 또 새로 씨 뿌릴 수 있습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바로 그 자리가 다시 거두고 새로 씨 뿌리는 자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나’라는 이 한 생각의 근본무명이 나를 연기하게 하는 콩이고 팥입니다. 탐진치로 이루어진 인연업의 시작이 곧 ‘나’라는 생각으로부터이며, 그에 따른 결과가 곧 ‘나’라는 현존재입니다. ‘나’라는 생각의 마음씨가 곧 연기의 제1주체인 것입니다. 제1주체란 말은 이 ‘나’라는 아상의 마음씨가 없으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사의 윤회는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게 된 근본 원인은 그러므로 ‘나’라는 생각일 뿐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곧 무명의 본질입니다. ‘나’라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콩 심은데 콩이 난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윤회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나’라는 한 생각의 근본무명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보다 먼저 이 몸뚱이가 ‘나’라고 믿어지고, 느껴지는 꿈속의 이 ‘나’를 어떻게 깨우시겠습니까?                                     
 

법문. 덕선 스님

광명 붇다사 주지. 종열宗烈 스님을 은사로 화엄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승가대학과 은해사 승가대학원 졸업. 동화사, 통도사, 화엄사에서 강의했다. 의왕 용화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2008년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지안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고 ‘미불微佛’이라는 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