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시시한 것들

2018-05-30     김성동

●    본질은 그러하다. 삶이 시시한 것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보잘것없다. 화려한 옷도 순간일 뿐이다. 누구보다 큰 집과 마당도 별스런 것이 아니다. 나를 받들고 챙겨주는 수많은 하인들의 충의도 시큰둥하다. 권력은 더 큰 권력에 속박당할 것이다. 재물은 욕망을 일으킨다. 수많은 이성과의 쾌락은 결국 허망할 뿐이다. 부부의 사랑도 애착의 삶이다. 아들은 아들의 삶이 있고, 부모의 기대는 나의 삶이 아니다. 이런 삶으로는 더 이상 완전한 삶, 갈등이 없고, 평온한 상태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죽음을 기다린다. 불안 속에 오랫동안 번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아가지도 못하고,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 

 

●    오래된 생각이다. 사랑과 집착을 버리고 집을 떠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보고 듣는 대상에 좌우되지 않도록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 세상 욕심에 물들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목숨을 해치지 않는 사람. 고통을 만나도 근심하지 않고, 기쁜 일을 만나도 들뜨지 않은 사람. 자기를 억제하는 마음이 태산같이 무거운 사람.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삶이 있을 것이란 확신. 창조된 것도 아니며, 언제까지나 훼손되지도 않는 것. 이 불안한 세상의 한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자유. 그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이제 나를 둘러싼 모든 인연들이 시시해졌다. 

 

●    거친 옷을 입었고, 한데서 잠자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못을 박은 요 위에 누었고, 죽음에 이를 만큼 숨을 참았으며, 대소변을 먹기도 했다. 음식을 먹지 않아 배에 손을 대면 등뼈가 만져졌다. 기력을 잃고 길가에 누워있자,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 모든 금욕과 고행은 그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지 못했다. 2천 6백 년 전 저 멀리 인도에서 벌어진 이 사건들은 이미 시공간을 넘어왔다. 집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수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걸었다. 어떤 이들은 길가에서 소리소문없이 죽어갔고, 어떤 이들은 다시 애착의 삶으로 돌아갔다. 어떤 이들은 각자覺者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했고, 어떤 이들은 지금도 절대의 자유를 찾아가고 있다. 

 

●    선정禪定을 얻는 사람은 어떠할까. 경전과 선각자들은 말한다. 사람이 과거에 지은 선과 악의 업으로 어디에 태어나는가를 알고, 빈부귀천과 수명의 길고 짧음을 알게 된다.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중생계의 세계를 낱낱이 보게 된다. 일체 중생의 생사윤회를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깊은 자비심을 낸다. 중생들이 악업을 지으면서 그것이 즐거움인 줄 착각하며, 훗날 큰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떠한 인연으로 생사生死가 일어나는지 꿰뚫어본다.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스스로 밝힌다. 모든 문제를 깊이 통찰하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긍정할 것은 긍정한다. 배척할 것은 배척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알고 본다. 환희롭고, 기쁘며, 고요하다. 

 

●    시시한 것들이다.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너저분한 삶은 그대로 지속된다.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며, 명성을 탐한다. 어떤 설렘도 없다. 스승이 『법화경』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석가족의 궁전에서 나와 가야성에서 멀지않은 곳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만, 내가 성불한 지는 실로 한량없고, 가없는 시간이 지났다. 오래 전부터 나는 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갖가지 방편으로 이롭게 했다. 중생의 온갖 분별로 일으킨 질문에 여러 가지 인연과 비유의 방편으로 법을 설해 해야 할 불사를 잠시도 쉰 일이 없다. 스승을 확인하고 만나야 한다. 스승과 친하게 지내며, 중생계의 세계, 그 시시한 것들을 넘어야 한다. 그 스승께서 지금 여기 우리를 돌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