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꿈속에서 본 남편의 여자

열린 상담실

2007-09-15     관리자

환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불가사의한 일들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다. 어느 날 20대 후반의 여성이 힘든 발걸음으로 진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푸석푸석 부어 있었고 눈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 동안 잠을 못잔 듯이 보였다.
"선생님, 처음에는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자꾸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의심이 변해서 확신이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남편과의 문제인 모양이구나! 라고 짐작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내용인 즉 다음과 같았다.
"남편과는 7년 동안의 연애 끝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겹게 결혼을 했어요. 사람이 별 인물은 없어도 워낙 자상하게 대해주어서 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지요. 결혼 후 첫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10개월쯤 되었을 때인데, 하루는 남편이 술이 취해서 밤늦게 들어왔어요. 평소 같았으면 그냥 쓰러져서 잠을 잘 사람인데, 그날 따라 샤워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속으로는 이상하게 생각을 하면서 수건과 내의를 챙겨주었는데 우연히 남편의 등뒤를 보니까 손톱자국이 여러 군데나 있었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훔치기 시작한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응어리가 졌던 모양이다.
"그래,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인가요?"
"그날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었지요.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휑하니 빈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몇 주가 지난 뒤에 남편이 똑같이 술이 취해 들어와서는 그날도 샤워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따져서 물었어요. '어디를 가서 누구와 술을 마셨느냐'고요. 그러나 남편은 친구와 마셨다고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된 뒤부터는 남편이 의심이 되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고 연일 악몽에까지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남편이 낯선 여자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술집은 위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낯이 익은 곳이었고, 남편과 함께 하는 여자의 모습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그래서 남편이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어느날 밤에 꿈속에서 본 그 술집으로 갔더니, 남편이 어떤 여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의 머리스타일이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아서 너무 놀랐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꼭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 본인에게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따져볼 겨를이 없어 보였다. 얼핏 이야기를 들어서는 남편이 원래 상당히 의존적인 사람인데 부인이 남편의 그런 욕구를 잘 충족시켜줄 동안에는 문제없이 잘 살았으나, 아기가 태어나서 부인의 관심이 그 쪽으로 쏠리자 다른 여자에게서 허전함을 충족시키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좀 더 시간을 두고 부부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부부치료를 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이런 경우에 있어서 꿈이란 정말 신통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서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여자의 모습과 술집의 위치가 꿈속에서 그토록 똑똑히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꿈이라는 것은 참 신비한 점이 많아서 아직도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점들이 매우 많다. 유명한 정신 분석가인 칼 구스타프 융은 서구의 정신의학자로는 보기 드물게 동양사상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꿈에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정신의학자로서는 최초로 밝혔다. 예를 들자면 그가 어느 날 한 환자를 치료를 하고 있는데 그 환자가 다음과 같은 꿈을 이야기하였다.
"수돗물을 틀었는데 수도꼭지에서 새까만 물이 흘러나와서 그 물에다가 손을 적시는 꿈을 꾸었어요."
이 꿈에 관해서 자유연상(꿈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말하는 정신과 치료의 한 방법)을 하는 동안에 그 사람이 현재 부정과 관련된 아주 위험한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꿈에서 새까만 물에 손을 적신다는 것은 부정한 일에 가담을 하게 된 상황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융은 그 사람을 보고 가능한 빨리 그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권유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에 그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처벌을 받는 일이 생겼지만, 융의 환자는 무사히 위험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그의 자서전에도 나온다.
이런 꿈의 기능은 의식의 힘과는 무관한 일종의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 인간의 능력 가운데서 의식이 차지하는 힘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신분석의 시조격인 프로이드도 평소에 인간은 무의식의 2% 정도 밖에는 사용을 하지 못하며, 98%는 무의식 속에 그대로 감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뛰어난 천재는 이 가운데에 10∼20% 정도를 되살려 사용한 삶들이라고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대부분의 능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배가 항해를 할 때, 해일이나 폭풍우 때문에 사고가 날 위험이 큰 경우에는 쥐나 동물들이 제일 먼저 바닷물 속에 뛰어드는 이상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선원들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비상사태가 곧 일어난다는 가정 하에 대비를 하며, 실제로 잠수함이나 배 같은 곳에는 이런 목적으로 일부러 동물들을 키우기도 한다.
원래는 사람에게도 이런 동물에서 볼 수 있는 위험예지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서 자연스러운 삶을 무시한 문화생활의 모든 것을 지식이나 머리로써 해결을 하려고 하는 동안에 우리 내면의 마음 깊은 곳에 내재해 있는 어떤 엄청난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조사(祖師)들의 어록(語錄)에서도 한결같이 알음알이로써 마음을 깨치려는데 대해서 경계의 말을 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지식이나 알음알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큰 능력 가운데에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울 때에 여자가 느끼는 마음의 감정은 이미 지식의 범위를 벗어난 간절한 염원과도 같은 것이다. 바로 이 절실함이 의식의 벽을 넘어서서 불가사의한 현상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은 아닐는지, 그런 점에서 우리가 행하는 일거수 일투족에도 머리 속으로 계산하기보다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절실한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문미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