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루드락샤와 물고기

2018-04-05     심재관

루드락샤

인도종교라는 공구박스를 열면 여러 가지 장비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업과 윤회 그리고 수행과 해탈 등은 인도의 종교들을 설명할 때 언제든 번갈아 쓸 수 있는 적절한 공구들이다. 이것들이 하드웨어라면 이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소프트웨어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의례와 규범들을 그것이라고 보자. 이 소프트웨어에도 액세서리는 많을 것이다. 그리고 필수 액세서리라면 당연히 염주念珠다. 인도에서 염주하면 당연히 루드락샤다. 

루드락샤(Elaeocarpus ganitrus)는 주로 북인도와 네팔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무로, 불경에서는 범어 명칭인 루드락샤rudrāks.a를 음사하여 악차惡叉라고 많이 불렀다. 악차는 범어로 aks.a를 음사한 것으로 rudra-aks.a를 짧게 부르는 말이다. 루드라rudra는 힌두교의 대표적인 신 쉬바Śiva의 별칭이니 루드락샤는 ‘쉬바의 눈’이란 뜻이다. 오로날라차(嗚嚕捺囉叉, rudrāks.a)라는 음사어도 있지만 한역경전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별칭을 사용해 금강자金剛子라는 말로 더 많이 부른다. 이 나무가 아시아인들에게 각별한 이유는 염주 때문이다. 

염주는 힌두교인이나 불교신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염주는 루드락샤로 만든 것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툴시tulasī 나무조각이나 리타rīt.hā 열매 등으로 만든 염주 등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인도에서 염주는 당연히 루드락샤로 만든 것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본래 힌두교에서 루드락샤로 만든 염주는 쉬바파 수행자들이, 툴시 나무로 만든 염주는 비슈누파 수행자들이 많이 걸고 다녔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불교가 불교만의 염주를 특별히 채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경 속에는 루드락샤 또는 금강자로 염주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많이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를 불교적인 상징물로 알고 있지만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 수는 없다. 이것은 식물에 대한 혼동 때문이다. 실제 보리수(ficus religiosa)의 씨는 들깨 씨만큼 아주 작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기후에서는 자랄 수 없는 생태를 가지고 있다. 보리수의 열매(실제로는 뒤집혀진 꽃)는 대략 1센티미터 내외 크기인데 그 안에는 수없이 작은 꽃들이 담겨있으며, 그 각각의 꽃 속에서 매우 작은 씨가 맺힌다. 이러한 특징은 피쿠스ficus계열의 나무들의 독특한 생태다. 따라서 실제 보리수나무의 열매로는 염주를 만들 수도 없으며, 아마도 다른 나무(피나무과에 속하는 것들)로 만든 것을 혼동한 경우일 것이다.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이나 『금강정유가염주경金剛頂瑜伽念珠經』 등과 같은 경전 내에서도 가끔 보리자菩提子나 연자蓮子라는 것으로 염주를 만든다는 구절이 등장하지만 이것은 실제 보리수 열매나 연밥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한다. 예를 들어 황등(黃藤, Daemonorops margaritae)이라고 부르는 등나무야자의 일종은 히말라야 지대나 동남아, 중국 남부 지역 등에서 수확할 수 있는데 보통 그 씨를 이용해 염주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보리자, 또는 성월보리자星月菩提子 등으로 불렀다. 전혀 엉뚱한 나무 열매도 보리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루드락샤 씨앗을 금강보리자金剛菩提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 간단히 이야기하면 보리자라고 해서 반드시 보리수의 씨앗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루드락샤는 고대로부터 인도인 모두의 것이었으며, 불교인과 힌두인들 구분 없이 이것을 즐겨 사용한다. 루드락샤는 사철 푸른 나무로 어린 나무일 때는 밝은 은회색의 표피에 피어있는 짙은 밤색의 작은 점들을 나무기둥에서 볼 수 있다. 대체로 곧게 자라고 2-30미터씩 자라기도 한다. 루드락샤의 열매가 익으면 깊고 푸른빛을 띠게 되는데, 그 빛은 마치 라피스 라줄리(청금석)의 빛깔과 매우 흡사하다. 그 깊고 푸른빛을 보게 되면 그 열매에서 염료를 추출해 사용하고 싶을 정도인데, 그러나 아쉽게도 이 열매의 푸른빛은 껍질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소 때문이 아니다. 그 푸른빛은 열매의 껍질이 갖는 매우 특이한 어떤 구조 때문인데, 루드락샤의 껍질은 푸른색만을 반사하는 독특한 큐티클 층의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이 열매를 말리면 검은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말린 열매의 껍질을 벗기면 매우 독특한 모양의 씨앗을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으로 만든 염주를 금강주라고 부른다. 특히 네팔과 같은 히말라야 지역의 열매가 더 크고 무겁다. 원형의 단단한 적갈색 씨앗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고 불규칙한 주름이 가득하며, 단단한 원형의 씨앗 중앙으로 자연스럽게 구멍이 나있다. 이 구멍을 통해서 실을 꿰이게 된다. 더 특이한 것은, 그 씨앗이 몇 개의 세로선으로 인해 마치 농구공처럼 다수의 면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누어진 면을 보통 ‘무키mukhi’라고 부른다. 이는 얼굴을 가리킨다. 보통은 세로선에 의해 나누어진 면이 몇 개인가에 따라 루드락샤의 종류를 구분한다. 많은 경우 20개가 넘는 면을 가질 수도 있다. 한 나무에서 여러 개의 무키를 갖는 씨앗이 만들어지지만, 대개는 5개의 무키를 갖는 루드락샤를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된다. 

거의 천년이 넘는 동안 힌두교와 불교인들은 이 루드락샤 염주(mālā)를 명상에 사용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루드락샤가 명상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집안의 평화와 건강, 번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 결과로 루드락샤의 형태와 종류에 따라, 표면에 보이는 무키의 숫자에 따라, 또는 그것들의 조합들에 따라 만들어진 염주에 다양한 전설이 만들어지면서, 덩달아 루드락샤 염주의 판매는 몇천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시장에는 조잡한 가짜 루드락샤가 넘쳐난다.      

그러나, 루드락샤에 신화를 덧붙이게 된 것은 훨씬 최근의 일이 될 것이다. 불교경전 속에는 기껏해야 루드락샤 염주, 즉 금강주를 통해서 주문을 외울 때의 복덕이 얼마나 크고 오래 지속하는가를 설명하는 정도다. 하지만 비교적 초기 경전에서 루드락샤를 말하는 대목은 특이하게도 이 나무의 열매가 얼마나 흔했는가를 보여준다. 유식唯識 경전 속에서 자주 언급하는 종자種子나 계界를 설명하는 대목에는 루드락샤를 비유하는 대목이 가끔 등장한다. 『수능엄경首楞嚴經』에서도 부처님은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무시이래로 모든 중생들은 마음이 전도되었기 때문에 그 업의 종자가 자연히 루드락샤(惡叉)가 쌓인 것처럼 되었느니라.”  

옛날에는 숲속에 쌓이고 쌓인 것이 루드락샤 열매였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염주를 만들기 위해 모두 집어가는 바람에 자생하는 나무의 씨앗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경전 속의 비유가 이해하기 힘들게 된 이유다.

 

물고기

고대 인도 당시부터 물고기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보호되어 왔다. 그것이 미덕이었으며 생존의 방법이기도 했다. 어부에게도 세금을 걷었다는 것을 우리는 인도의 고전 『아르타샤스트라Arthaśāstr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아쇼카 대왕의 비문 여러 곳에서도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물고기의 무차별한 남획濫獲을 막기 위한 방도를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우리야 왕조 당시에 물고기가 중요한 생계수단의 하나였을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자타카』와 같은 초기의 문헌들을 종합해보면 초기 인도의 사회는 생선과 같이 비린 것을 멀리하는 풍조는 아직 크게 진작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통 인도사회에서 비린내 나는 물고기를 멀리하는 풍조는 후기 고전기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부터 인도에서 물고기는 자유와 풍요의 상징이었다. 물고기는 곧 가뭄을 걱정했던 고대인들에게 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었으며, 물이 있는 곳이라면 경계가 없이 어디든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은 자유를 상징하기에 적당했다. 연못과 저수지는 고대 인도에서 마을의 경계가 되었는데 『마누법전manuśāstra』같은 경전에서는 마을 간의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저수지를 조성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저수지는 마을의 생활용수와 농사를 위해 필수적이었고 여기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도 관습적인 일이었다. 고대 인도인들에게 물고기는 물의 정령, 혹은 강의 여신들의 전령과 같이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부처님의 과거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은 과거에 어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에게는 시기심과 욕심 많은 동생이 있었다. 아버지가 죽자 큰 땅을 물려받게 된 형은 여러 곳의 소작인들로부터 돈을 걷기 위해 동생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동생과 함께 돈을 다 걷어서 돌아오는 길에 형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는데 강 속의 배고픈 물고기들을 위해 먹을 것을 정성껏 보시했다. 그것을 먹은 물고기와 강의 정령은 그의 공덕에 크게 감화된다. 그리고 형제는 강변에 배를 대고 잠시 휴식을 청한다. 형은 곧 깊은 잠에 빠지게 되지만, 동생은 그 사이에 그 돈을 모두 자신이 갖고 싶었던지라 꾀를 부렸다. 동생은 돈주머니와 똑같은 주머니에 자갈을 담아 두 개로 만든 다음 형과 함께 다시 배에 올라탔다. 배가 강의 중심을 지날 때 쯤, 동생은 넘어지는 척하며 두 개의 주머니 가운데 하나를 강물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돈을 모두 잃게 버리게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자신은 돌주머니라고 생각하고 강물에 빠뜨렸지만 집에 올라와 다른 주머니를 몰래 열어보니 그것이 돌주머니였고, 자신이 버린 것이 돈주머니였다.

한 편 동생이 어리석게 떨어뜨린 진짜 돈주머니는 거대한 물고기가 삼켜버렸다. 강의 여신이 명령해서 물고기는 그 돈주머니를 삼켰고 다시 어부의 그물에 걸렸다. 우연한 기회에 어부는 그 물고기를 형에게 팔게 되고 형의 부인은 물고기의 뱃속에서 형의 돈을 발견하게 된다. 돈에 그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생각하면, 독자들은 금방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등장하는 유수장자流水長者와 물고기의 인연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이들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