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전국병원불자연합회 유재환 회장

"붓다께서 병들고,힘들고 아픈 사람을 도우라고 하셨다. 그게 내가 봉사하는 이유"

2018-04-05     김성동

『금강경』의 첫머리를 보자. 부처님께서 공양할 때가 되자 바리때를 들고 마을로 들어가 한 집 한 집 밥을 빌었다. 걸식을 마치고 절로 돌아와 공양을 마치고, 가사와 바리때를 거두고 발을 씻고 자리를 마련해 앉았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다가와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가. 법을 청한다. 불교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이다. 법을 청하는 행위가 없었다면, 부처님은 수보리의 생각을 묻지 않았을 것이고, 법을 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 범천梵天의 강력한 ‘권청勸請’으로 법을 설한 것도 그러하다. 그만큼 불교에서 ‘법을 청한다’는 것은 청하는 자와 청을 받는 자 모두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세계로 이끈다.

사진:최배문


|    요청이 오면 갑니다

“요청이 있어서요.” 전국병원불자연합회 유재환(61, 경희의료원 동서의학과) 회장이 의료봉사 가는 곳을 말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답변이다. 옅게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왜 의료봉사를 하게 되었는가?”란 질문이 민망했다. 아픈 사람이 아프니까 진료해달라고 요청하니,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청을 받아들이는 그 장면은 말 그대로 부처님이 권청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과장이 아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부처님같이’란 단어는 우리의 마음을 일상으로 여여하게 이어갈 때 어울린다. 문제는 우리의 일상이 늘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일상의 한 순간, 부처님 마음을 낸다면 그 순간은 부처님처럼 산 것이다.  

- 재작년 전국병원불자연합회(이하 병불련)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습니다.  

“예. 실무자들이 세종시에 자주 내려가면서 어렵게 보건복지부에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병불련이 많은 의료봉사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위상도 많이 달라졌겠습니다. 

“사단법인이 된 후 ‘국제의료재단’ 등에 공식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회원들이 사비를 갹출해서 의료봉사 활동을 했기 때문에 늘 물품이 부족했죠. 이제는 차량과 의약품 등의 도움을 일부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정부에서 주관하는 해외의료봉사 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졌습니다.”

- 해외의료봉사 활동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동안 활동을 많이 했으니 신청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정부의 해외의료봉사 활동을 신청했는데 안 됐습니다.”

- 왜 그렇죠? 그동안 병불련의 해외의료 활동이 활발하고, 꾸준했는데요. 

“이게 참, 불교단체라서 그런지, 잘 안 되었어요. 우리가 의료진과 의료장비도 더 많고, 활동성과도 더 많은데요. 심사하는 분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입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좀 걸리는 부분입니다. 아무튼 올해 또 신청할 계획입니다. 잘 되겠죠.”

- 의료봉사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는가요?

“요청이 오면 갑니다. 그동안 사찰에서 요청한 곳은 대부분 갔습니다. 큰 사찰에는 의외로 환자가 많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곳은 이미 의료 혜택을 받고 있는 곳이니까요. 또 다문화 가정들과 불법체류자들이 많이 있는 곳을 갑니다. 올해부터는 안산공단, 인천 남동공단 등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또 천주교 봉사활동 단체인데, 신부님들이 의료봉사 요청을 합니다. 요청이 오니까, 갑니다.”

- 천주교 단체에서 요청하고, 병불련이 의료봉사를 가는 군요. 종교간 화합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맞아요. 신부님이 병불련에 요청하니까요.(웃음)”  

- 불교 단체에서도 요청을 하지 않나요?

“요청하는데, 많지는 않아요. 몇 번 가면 의료봉사 활동을 할 정도의 인원(환자)이 없어요.”

- 의료봉사 활동도 환자가 어느 정도 있어야 지속적으로 활동이 가능하군요.

“예. 환자가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합니다. 또 의료봉사 활동이 정해지면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의료봉사 활동이 종교를 따지지는 않습니다.”

- 그래도 ‘전국병원불자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의료봉사를 하니, 결국 전법인 셈입니다.

“그럼요. 단체들도 환자들도 의료봉사 활동하는 곳이 ‘전국병원불자연합회’란 것을 잘 압니다. 그것 자체가 전법이라고 봅니다.”

|    전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충북 제천 덕주사로 갓 소임을 받아 내려간 원경 스님(현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은 이렇다 할 지역 기반이 없는 사찰 법당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그 무렵 조계사 국장 소임 때 인연이 되었던 전국병원불자연합회 유재환 회장이 찾아왔다. 스님과 유재환 회장은 차를 마시면서 속내를 서로 이야기했다. 

“이곳에 홀로 와 커다란 부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기분입니다.” 

지금이야 교세가 제법 확장했지만, 10여 년 전에는 절 입구로 가는 길도 비포장일 정도였다. 더구나 덕주사 지역주민들이 대부분 노인들이고, 또 기독교를 믿는다, 덕주사 신도는 거의 없다, 덕주사가 지역주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등등. 답이 나왔다. 원경 스님은 조계사 소임 때부터 의료봉사에 관심을 갖고 직접 사찰과 환자와 병불련을 연결한 경험이 있었다. 

“덕주사 지역주민들을 위해 병불련에서 정기 의료봉사 활동을 하겠습니다.” 

이 결정으로 유재환 회장은 자동차를 SUV로 바꿨다. 덕주사 가는 비포장도로를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주사 지역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의료봉사 활동을 갔는데 지역의 목사님과 신부님이 환자를 교회나 성당의 셔틀버스로 실어 날랐습니다. 환자가 왔으니까, 당연히 진료하고 치료합니다. 이렇게 매년 2회에 주기적으로 8년 정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지역사회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제천 지역에서 공무원 등이 주로 천주교와 개신교를 도와주었는데, 의료봉사 활동 후에 불교계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덕분에 덕주사 교세도 많이 커졌습니다.”  

- 백령도에서도 의료봉사 활동을 꾸준하게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곳도 3년 정도 해왔습니다. 섬이고, 4천여 명의 주민들이 대부분 월남했던 분들의 가족이고,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곳은 섬이기 때문에 1박 2일 동안 진료가 이루어졌습니다.”

- 불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겠습니다.

“군부대에서 많은 협조가 이루어졌고, 병불련 이름으로 의료봉사를 갔기 때문에 주민들이 ‘불교계에서 이런 의료봉사 활동을 하는구나!’ 하고 박수를 많이 보냈습니다. 아주 기분 좋았습니다.(웃음)”

- 그렇게 의료봉사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이 개인 시간과 비용을 낸다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나요?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웃음) 주로 휴일을 이용하거나 개인 휴가를 내기도 합니다. 또 회원들 각자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서 의료기기도 사고, 의약품을 구매하니까요. 의료봉사를 강요할 순 없습니다. 마음을 내야죠. 그런데 마음을 내면 또 즐겁습니다.”  

- 병불련에 참여하는 의료진들이 몇 분이신가요?
 

“의사, 치과의사, 약사, 한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2백여 명 정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랑하자면 이웃종교 의료봉사 단체에 비하면 큰 편입니다. 최신 의료 장비도 많고요.(웃음)”

- 의료 장비는 어떻게 구입하죠?

“회비로 합니다. 아주 고가입니다. 의료기기는 작은 것이 1천만 원이고, 비싼 것은 1억 원이 넘습니다. 거의 병원을 차리는 수준입니다.(웃음)”

- 놀랍군요. 그럼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나요?

“뜻있는 회원들과 개인들이 발원해서 구입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저와 몇몇 분들이 구입했는데, 이제는 회원들이 십시일반해서 삽니다. 또 외부에서 기부금을 받기도 합니다.”

 

|    십시일반으로 보낸 비구니스님 생리대

- 회원들뿐 아니라, 외부의 도움도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사례인데요. 작년에는 티베트 비구니스님들께 생리대를 보시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1회용은 비용이 너무 비싸서 면 생리대를 구입해서 드리려고 했습니다. 비용이 2백만 원이 들었는데, 급하게 ‘카톡방’에 올렸어요. 회원들뿐 아니라 다양한 분들이 참여했습니다. 아주 금방 모여서 빨리 스님들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중요한 사례입니다. 앞으로 의료봉사 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기부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 병불련은 재정 운영이 아주 깨끗하고, 회원들이 스스로 좋아서 봉사하는 것이니까요. 많이 참여해주세요. 병불련 의료활동 자체가 전법활동이니까요.”(웃음)

- 의료봉사 활동의 모범으로는 대만 자제공덕회 병원입니다. 병불련에서도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점을 느꼈나요?   

“대만 자제공덕회 의료봉사 활동은 우리가 배울 점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제가 눈여겨본 것은 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하는 분들입니다. 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하는 자긍심이 아주 높았습니다. 그게 부러웠어요. ‘나는 자제공덕회 병원에서 자원봉사하는 불자다’라는 프라이드가 강했습니다. 우리 불자들도 자원봉사자로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불교로 보면 가장 큰 보시이기도 합니다. 은퇴 후에 이렇게 자원봉사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 자제공덕회 병원이 유명한 이유도 자원봉사자의 활동 때문일 겁니다.

“맞습니다. 또 제가 봤을 때 낮은 진료비와 그 지역 주민 규모로는 (환자가 부족해서) 그렇게 큰 병원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 외부 환자들이 많이 온다는 것인가요?

“아뇨. 보시로 운영된다는 겁니다. 의료기기와 의료진 급여 등은 대부분 외부 신도들의 보시로 운영됩니다. 굉장히 상징적입니다. 최고의 의료기기와 의료진은 환자만으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외부의 기부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제공덕회가 그런 사례입니다. 대만 내 불자와 해외 대만 화교들이 끊임없이 보시합니다. 그 힘으로 운영되는 겁니다. 십시일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해외의료봉사 활동도 많이 나갑니다. 주로 어디로 가시나요?

“인도 지역을 많이 갔습니다. 주로 중부 후블리 지역에 갔는데, 비행기로 도착해서 기차나 버스로 15시간을 가야 합니다. 2016년은 다람살라에 처음으로 갔습니다. 티베트 스님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갔는데, 많은 스님들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보람도 많았습니다. 그때 다람살라에 계신 스님들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우리들뿐 아니라 인도에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분들을 도와 달라. 우리들이 인도에 거주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그래서 스님들뿐 아니라 인도 주민들도 진료했습니다.” 

|    누구나 보시와 봉사를 할 수 있다

2008년, 암 진단을 받았다. 몇 차례의 진료와 수술로 회복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도 수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스스로 죽음의 문 앞에서 돌아온 뒤에는 또 다른 경계가 열렸다. 의료봉사를 워낙 좋아했지만, 앓고 난 후 마음이 더 넓어졌다. 좋아서 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스스로 마음속에 있어왔던 욕심과 집착도 아주 많이 사라졌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체감된 것이다. 

“제가 불자이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경전에 나온 이야기들을 더욱 느끼게 됐습니다. 경전의 내용으로 살아가면 우리 마음이 넓어집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이제는 상相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 우리는 상을 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있는데, 이분은 재물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분들은 몸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재물로 봉사하고, 보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재물이 아주 많으니까요. 그런데 재물 보시를 하지 않아요. 집착하고, 상에 사로잡히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부자들이 보시에 인색한 경향이 많습니다.(웃음)

“어리석어서 그래요. 그런 분들도 어느 날 죽음이 다가옵니다. 건강검진을 열심히 해도 갑자기 죽는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돈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부자의 재능은 재물을 보시하는 겁니다.”  

- 보통 사람들은 집착하고, 욕심으로 살아갑니다. 이 분들에게 보시를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보시는 자기의 살림 형편에 맞게 하면 됩니다. 『금강경』을 아무리 읽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잖아요. 현세를 살면서 보다 부처님께 다가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불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극락왕생이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세에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현세에서 부처님께 가까이 가는 것, 이것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아프고, 힘들고, 병든 사람들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제가 의사니까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다른 분들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면 되죠. 팔정도에 나와 있잖아요.”

-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실천하자, 그것인가요?  

“맞습니다. 죽음은 한 순간에 옵니다. 보시하고, 봉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내는가가 중요합니다. 진실로 보시하고 싶어서 내는 그 마음, 그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을 현세에서 하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