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태국의 불교

세계의 불교

2007-09-15     관리자

근래 들어 태국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 여러 조건이, 짧은 휴가나 신혼여행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방콕 공항에 내리면 태국 민속의상을 입은 소녀들이 일렬로 서서 남국의 꽃으로 만든 화환을 목에 걸어 준다. 그리고는 다소곳한 태도로 함장 인사를 보낸다.
합장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다소 어색해지기도 하지만 우리 불자들은 웬지 흐뭇한 감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관광산업은 태국의 국가 산업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입원이다. 전세계에서 연간 수백만이 관광객들이 태국을 찾고 있다. 이 나라의 문화 유산 및 관광 자원의 90퍼센트 이상은 불교와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인은 불교 문화재를 보기 위해 태국을 찾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인구 5천5백만, 땅 넓이 51만 4천 평방Km, 한번도 서구의 식민지였던 적이 없는 나라.
인구의 96퍼센트가 불교 신자이며 전국에 3만 개의 사원이 있고 승려 수만도 30만에 육박하는 명실상부한 불교국가. 국왕은 불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모든 남자들은 청년시기 일정기간을 의무적으로 사원에서 출가생활을 해야 한다.
태국의 수도 방콕은 수많은 사원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다. 마치 사원의 숲 그늘에 도시 전체가 묻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방콕이란 말은 '신들의 도시'라는 뜻으로 태국 사람들은 이 곳에 수많은 부처들이 살았다고 믿고 있다.
왕궁 역시 하나의 거대한 사원이다. 유명한 포 사원이 왕궁이며 황금 사원 에메랄드 사원 등이 포 사원을 위호하듯 주위에 서 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열반 사원이란 뜻의 포 사원은 18세기말 지금의 차크리 왕조를 세운 라마1세가 건립한 사원으로 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로 꼽힌다.
이 사원은 단순히 예불을 드리는 성지로서뿐만 아니라 왕의 국정운영이며 대중교육의 중심역할을 했었다. 1961년 입헌 군주제가 실시되면서 관공서로서의 역할이 축소되기는 했어도 예배소, 왕의 거처, 학교, 관공서의 다목적 역할과 기능을 하는 곳이다. 이처럼 태국에서 사찰은 성지일 뿐 아니라 학교로 관공서로 사용되어 왔기에 온 국민의 삶은 한시도 사찰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포 사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거대한 황금 와불을 만나게 된다. 대웅전이랄 수 있는 중앙 건물 내부를 관통하고 있는 이 와불은 그 길이가 46 미터나 되는 장엄한 규모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모습을 형상화한 이 와불은 그 거대한 규모와는 달리 사바세계의 번뇌를 꿰뚫고 있는 듯한 그윽한 표정과 풍만한 곡선으로 해서 사람을 위압하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을 다가온다.
포 사원은 누구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며 남자의 경우 반바지 차림은 허용되지 않는다. 부처님에 대한 경배 정신과 더불어 왕궁의 권위를 세우려는 태국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에메랄드 사원으로 알려진 푸라카오 사원은 1882년에 건립됐다. 이곳은 국가적인 행사와 왕실의 의식이 거행되는 곳으로 태국인들에게는 최고의 성역이다. 이곳에는 유래가 깊은 독특한 불상이 모셔져 있다. 바로 에머랄드 불상이다. 높이 66 센티미터로 생각보다 큰 불상은 아니지만 최고 수준의 순도를 자랑하는 에머랄드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작은 불상은 태국 왕실의 상징이다. 온 국민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이 불상은 오직 국왕만이 만질 수 있다. 국왕은 계절마다 미 초록빛 에머랄드 불상에 옷을 갈아 입히는 의식을 직접 집전한다.
태국의 전설에 따르면 이 에머랄드 불상은 인도에서 조각되어 스리랑카를 거쳐 태국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즉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지금의 법은 태국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밖에도 방콕에는 아룬 사원(새벽 사원), 수타트 사원(황금 사원) 등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원들이 즐비하다. 수트라 사원의 높이 8 미터 본존 불상은 전체가 황금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압도한다.
태국이 사원들은 대부분 황금빛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각양각색의 탑들이 사원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태국인들은 황금이 인간의 번뇌와 업장을 소멸해주는 영물로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태국의 사원에 가보면 불상이나 탑 조각품 등에 금박 종이를 붙이는 태국인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다. 불상에 금박종이를 붙이면 자신과 가족의 복락을 보장받는다는 믿음에서 지극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사찰의 불상이며 코끼리 상은 아예 금박 종이가 뒤덮혀 본래의 모습이 가려져 있기 일쑤다. 각 사찰 입구의 매점에서는 금박종이 테이프가 고가로 팔리고 있다.
또 태국의 사원에서 독특한 것은 각 양식의 탑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 사원이며 에머랄드 사원 등의 마당은 각양각색의 탑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태국의 사원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캄보디아 양식, 미얀마 양식, 스리랑카 양식이 그것이다. 캄보디아 양식의 탑은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대개 도자기로 장식돼 있다. 또 미얀마 양식은 상단부가 둥근 원뿔로 되어 있는 단순한 스타일이다.
스리랑카 양식은 탑의 기둥이 강조되어 있고 그 기둥의 장식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태국의 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스타일이 캄보디아 양식이 탑이다.
캄보디아가 외환이며 내란 등으로 자신들 고유의 문화재 대부분을 소실한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태국이 외국의 침입을 받지 않았고 특히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국가라는 점과 남의 것을 받아들여 자기화 하는 태국인의 융화 정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태국에 3만 개의 사찰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태국 전역은 불교 유산이 도처에 남아있다. 그 가운데 북부의 치앙마이는 1천 년 된 사찰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며 '시암'이라 불리우던 태국 옛 왕조의 도읍이었던 아유타야 시에는 중세시대의 불교를 알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태국불교는 카나 송 타이(Khana Song Thai)라는 단일 승단에 담마유트(Dhammayut) 파와 마하니타야(Mahanakaya) 파 두 파로 구성돼 있다. 담마유트 파는 다소 보수적이며 마하니카야 파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파는 가사착용법이라든가 작법상의 근소한 차이가 있을 뿐 교리상의 차별은 거의 없다. 태국교단은 승왕(僧王)에 의해 통괄되며 최고기관은 승왕을 의장으로 하는 대장로회이이다. 승왕은 종신제이며 생불로 추앙받는다. 현재 태국의 승왕은 썽뎃 프라나냐상와라 스님이다. 태국은 연간 14개의 경축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있는데 이중 4개가 불교와 관련된 축일이다. 불탄일(음력 6월 보름), 설법일(초전법륜기념일 음력 8월 보름), 교리일(음력 3월 보름), 금욕일(양력 8월중)이 그것이다.
승려는 비구와 사미로 구별되는데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30만 명의 승려 가운데 1/3이 장기 승려이고 2/3가 단기 승려이다. 단기승려는 3개월에서 1년까지를 수행기간으로 정하고 출가하는 의무 승려를 말한다. 약 20만 명의 단기승려는 계속 들어오고 나기기 때문에 일정 수가 유지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일단 승려가 되면 교육에서부터 건강 문제, 노후생활까지 보장된다. 승려증만 있으면 승가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으며 버스 등 공공 교통시설 이용도 무료다.
태국 불교는 상좌부 불교의 맥을 잇고 있어 승려들은 227 항목의 계목을 열심히 암송하며 생활 속에서 지켜가고 있다.
그래서 탁발의 전통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고 신도들은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을 의무이자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고 있다. 한가지 특기할 사실은 여성이 승려의 몸에 접촉하는 것을 최대의 금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스님의 신체는 물론 가사 끝에라도 여성의 손이 닿게 되면 양쪽 모두 큰일이 난다.
태국은 지난 92년 여름 오랜 숙원이던 민주화를 이룩했다.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았던 수친다 총리가 시민들의 봇물 같은 저항에 밀려 국외로 망명했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것이다. 그 뒤 태국은 민주화 시대를 맞아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시민 혁명과 민주 발전의 주역이 바로 태국의 불교도들이었다는 사실에 같은 불교도들이었다는 사실에 같은 불교도로서 긍지와 자부를 느끼면서 태국과 태국불교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원해 본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문미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