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나를 흔들다]마음 밭에 꽃들이 자란다

2018-03-02     조경순
그림:박해상

| ‘선지식 스승 인연’을 발원한 기도

‘어서 나이 60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적이 있다. 마흔 중반에 접어들 때였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 기다리는 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미래에 대한 기대나 비전은 없이 그저 막막한 책임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나이가 60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생업으로 마트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일에 치이고 중·고등학생이었던 두 아이에게 기본적인 부모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치이고 있었다.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믿음도 없이 잘되든 못되든 물리적 나이 60이 되면 우리 가족의 삶이 어떤 형태로든 결정지어져 있을 테니까 하는 포기와 낙오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은 결국 병이 되었다. 당시에도 기도에 의지했다. 아니 매달렸다. 점심시 간을 아껴 가게에서 가까운 절을 찾아 절을 했다. 혼자 하는 기도였으니 마음이 답답해도 털어놓을 스님도 도반도 없었다. 그래도 기도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자금압박과 운영방법에 대해 남편과 의견 갈등이 커지고 체력의 한계와 아이들에 대한 불안과 죄책 감도 더해가면서 극심한 빈혈과 요통으로 결국 수술치료를 받아야 했다. 왜 이리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지 우울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쉬어가라는 부처님의 가피로 생각하고 회복 기간에 마침 고3이 되는 둘째 아이의 입시기도에 집중하기로 했다. 결심과 달리 집중은커녕 기도에 의심이 일어나고 몸도 마음도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제대로 알고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었고 대비주 수행도량 덕양선원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카페에 올라온 스님의 법문과 신도들의 수행일기를 통해 나도 이제 제대로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나서지 못해서 ‘선지식 스승 인연’을 발원으로 7일 기도를 했다. 기도의 응답처럼 얼마 후 덕양선원을 방문, 스님을 친견하고 ‘대비주 10만독 성취’ 과제를 받고 대비주 수행이 시작되었다.

일산법상 스님의 대비주 수행법 수행요목은 쉽고도 완전했다. 그동안의 나의 기도에 변혁과 날개를 달아 주었다. 따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던 절 수행과 달리 가게 일을 하면서도 대비주를 지송했고, 손님 한 분 한 분들이 복전이고 축원의 대상이며 나를 공부시키는 불보살님의 화현이었다. 전에 없이 가게 일이 즐겁고 24시간 기도하고 수행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위안이고 의지가 되었다. 지금 수지 독송하는 대비주 1 독이 ‘과거 업장을 소멸하고 현세의 소원을 이루고 깨달음을 얻고 성불’하는 그 1독이 된다는 믿음은 곧 일체의 근심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더러 고비를 만날 때는 언제든 여쭐 스님이 계시고 도반들이 계시니 든든하고 결국 한 걸음 더나아가는 기회였다.

 

| 그 마음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힘든 줄 모르고 오히려 즐겁고 행복한 수행이 이어졌다. 대비주로 힘을 기르고 스님의 법문으로 지혜를 닦았다. 스님께서 직접 수행하고 수많은 신도들의 수행을 지도한 사례들로 부처님의 법을 설하면 마음에 쏙쏙 와 닿는 만큼 업장들이 툭툭 깨어져 나갔다. 집중수행프로그램 ‘자성불 수행’으로 나를 바로 보고 왜곡된 잠재의식을 방하착하고 내안의 자비심과 지혜를 드러내어 내가 원하는 대로의 삶을 창조하는 주인공으로 거듭났 다. 마음의 응어리를 녹이는 ‘대비문 수행’으로 가족과 여러 인연들의 원망과 오해, 갈등으로 빗어진 관계들이 풀렸다. 관념과 사전적 의미로 이해하는데 머물렀던 그간의 경전 말씀들과 법문들이 차츰 온전히 이해되고 마음 깊은데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수행을 시작하고 얼마 뒤 대비주를 독송하면서 온몸이 뻣뻣해지도록 온 마음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내가 학업을 이루지 못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언성을 높여 ‘자수성가해라.’ ‘출가외인이다.’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 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말리지도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형편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술주정이 심한 데다 자식 공부시킬 생각이 없으신 거라고 언니 오빠들도 원망했다.

그런데 대비주를 독송하는 순간, 지금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그 뒷마음이 읽힌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향에서 화재로 세간을 다 잃고 객지로 와서 정착하느라 무척 힘드셨단다. 그 넓은 논이 우리 집 땅이 아니라 소작이었음도 뒤늦게 알았다. 공부하겠다는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는 형편이 얼마나 괴롭고 힘드셨 을까. 술로 달래고 술주정을 빌릴 수밖에 없었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엄마의 괴로움이 느껴졌다. 가슴을 저미고 숨이 막혀왔다. 사랑이었구나. 아버지의 술주정도, 어머니의 한숨도 결국은 크신 사랑에서 비롯된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고 지극하게 참회하고 스님께 청하여 진심 어린 공양을 올려드리니 오랜 원망심이 사라졌다.

동시에 내 마음에 부모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학비 걱정에 두 아이를 과연 대학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짓눌려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을 느끼고 나의 그 마음도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모든 부모의 마음이 사랑 임을, 설사 자식을 거칠게 키우는 부모라 해도 어리석기 때문일 뿐 근본은 사랑임을 깨닫자 모든 존재들이 그야말로 무량한 공덕 덩어리로 다가왔다. 내가 아이들에게 느꼈던 죄책감이 근본은 사랑이었으나 어리석음이었음을 알았다. 이제는 대비주 수행 으로 더 지혜롭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마음 짐이 마치 화롯불에 눈 한 점 떨어지듯 흔적도 없이 녹았다.

 

| 저절로 원력의 삶을 산다

마음 법을 체험하고 수행에 가속이 붙었다. 마음의 짐도 내려진 데다 입시기도의 성취 비결은 오직 크게 믿고 기도하고 작복 하는 것이라고 배운대로 오직 부지런히 수행하고 부지런히 복을 지어갔다. 아이와 학비에 대한 걱정을 태평양 가운데 던져버리고 오직 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고 기다려주고 격려하는 마음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충실히 마치고 다음 과정을 밟고 있다. 전적으로 믿고 기다려 주는 부모가 진로 결정에 큰 힘이 됐다는 말을 듣곤 한다.

어떤 사람을 지극하게 사랑하는 마음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딸아이도 사춘 기를 정점으로 갈등을 빚으며 관계가 부자연스러웠는데 대비주 수행을 하면서 깊은 참회로 왜곡된 사랑을 회복하고 서로에게 삶의 친구가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지혜 자비 복덕을 구족한 배우자를 만난다’는 소원문대로 딸의 선택을 존중하게 되고, 새로운 가족이 된 사위에 대한 마음이 한 톨 비는 데 없이 흠뻑 고맙고 사랑스러우니 기실 수행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싶다. 남편과도 굳은 땅을 뒤집어 파헤쳐 돌을 거르고 거름을 치고 기름진 옥토로 가꾸듯 함께 수행하며 배우자다운 배우자로 거듭나고 있다.

대비주 수행자는 명확한 원을 가지고 수행한다. 원이 뚜렷하면 저절로 원력의 삶을 살게 된다. 나의 5대 원 중의 하나가 ‘글을 쓴다!’이다. 한때 완전히 포기하였던 꿈이 발원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 발원은 지난날 낙담으로 바라보던 나이 60을 한순 간에 목표와 희망이 있는 나이로 바꾸고 시린 마음 밭을 양지바른 꽃밭으로 바꾸었 다. 한 줄이라도 누군가에게 이로움을 주고 행복이 되는 ‘金文’을 쓰고 싶다. 무르익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76세에 화가가 된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나, 17년에 걸쳐 부품 하나까지 손수 헬리콥터를 제작하여 어릴 적 꿈을 이룬 오광표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시간은 사라지고 성취만 생생하다.

10만 독을 목표로 시작한 대비주 수행이 8년째 80만 독 성취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닦아야 할 것들이 수미산만 하지만 닦은 것들도 수미산만 하니 오직 믿고 나아간 다.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한다고 좋은 일만 있고 시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연대로 과보가 오고 지나갈 것이다. 그때그때 대비주를 지송하면서 대비주로 깨어있을 수있으니 정말 감사하다. 더불어 홀로, 홀로 더불어 ‘대비주 수행 10년 결사’의 길을 걷다 보면 대비주 수행자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신통장 광명장으로 주위 인연들을 더욱 이롭게 하는 보살의 길에 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