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자애의 온기를 품은 사리불

2018-03-02     이미령

| 제자를 향한 반듯한 본보기와 따뜻한 배려

스승을 향해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극진하게 예를 갖춘 사리불 존자. 함께 수행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을 향해서는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한 우정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리불 존자의 이런 마음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향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라훌라는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 낳은 친아들입니다. 그가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찾아와 “재산을 물려 달라.”고 요청했을 때, 무일푼이던 부처님은 기꺼이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하고서 라훌라를 출가시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랑하는 친아들 라훌라에게 제일 먼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를 스승으로 인연 맺어 주었습니다. 그가 바로 사리불 존자입니다. 친아버지인 붓다가 혈육에게 준 첫 번째 재산은 스승이었습니다.

이후 원치 않는 출가를 하게 된 철부지 라훌라 스님 곁에는 사리불 존자가 있었습니다. 늘 곁에서 라훌라가 어엿한 한 사람의 수행자가 되도록 일깨우고 다독이고 이끌어주었지요.

어느 때인가, 아침 탁발에 나가는 길에 사리불과 라훌라는 봉변을 당했습니다. 한 남자가 느닷없이 나타나 두 사람의 길을 막아서더니 그들의 발우에 모래를 끼얹었습니다.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맞설 것입니다. 그런데 사리불 존자는 담담했습니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는 듯이 태연한 표정이었지요. 곁에 있던 어린 라훌라는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무뢰한은 소리를 쳐서 쫓아내거나 맞서 싸워야 하는데 스승이 담담히 그냥 지나치니 자신이 나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무뢰한은 라훌라에게 주먹질까지 해댔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에 비위가 상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사내의 주먹에 맞은 라훌라에게 피가 흘렀습니다.

“이래도 너희가 태연할래?”

사내는 약을 올리며 떠나갔습니다.

갑자기 당한 일에 라훌라는 분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승인 사리불은 제자인 라훌라에게 말합니다.

“분노를 품지 마라. 저 상대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품어라. 성냄을 견뎌라.”

라훌라의 마음에는 무뢰한을 향한 분노가 타올랐고, 이유도 없이 당한 폭행에도 담담한 스승을 향해 반발심이 끓어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리불 존자는 바로 이때가 스스로의 수행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줄, 다시없는 좋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라훌라는 화를 가라앉혔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신이 그 사내의 폭행에 화가 났는지, 아니면 왕자 출신인 자신이 매를 맞는다는 억울함에 더 화가 났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라훌라는 사리불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수행을 완성합니다.

사리불에게는 또 한 사람의 제자가 있습니다. 균제 사미입니다. 균제는 성자의 반열에까지 오를 정도로 수행을 완성한 사람이지만, 자신을 향한 스승 사리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언제까지나 그의 시자가 되고 싶어서 스스로 사미로서 평생을 살다간 인물입니다.

균제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숙명통)를 얻은 뒤에 자신의 전생을 살펴봅니다. 대체 자신을 알뜰히 챙겨주는 스승 사리불 존자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생에서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어느 날 장사꾼들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먼 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장사꾼들이 쉬고 있는 틈을 타서 개가 그들의 고기를 훔쳐 먹었습니다. 장사꾼들은 자신들도 아껴먹는 고기를 감히 개가 먹어 치우자 불같이 화가 났습니다. 무자비하게 개를 두드려 패고는 숨이 끊어지거나 말거나 그들은 개를 버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바로 이때 사리불 존자가 신통력의 눈으로 이 개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습 니다. 서둘러 개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치료해주었고, 성에 들어가 탁발해서 음식을 먹였습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기운이 돌아온 것처럼 보이자 존자는 개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넸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준 것입니다. 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였고, 사리불 존자의 법문이 끝나자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죽었습니다. 그 후에 사위국의 어느 바라문집 아들로 태어나 균제라 불리며 자라났지요. 몇 년이 흘러 사리불 존자가 그 집에 걸식을 하러 갔을 때 그집 주인이 말했습니다.

“존자께서는 사미를 거느리지 않고 홀로 다니시는군요. 제 아들을 제자로 거둬주십시오.”

사리불은 균제를 사미로 받아들이고 늘 곁에서 수행자의 행동거지를 일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길을 걸어가도록 알뜰하게 챙겨주었습니다. 사리불 존자의 친절하고 자세한 가르침에 차츰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린 균제는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승의 따뜻한 보살핌이 고마웠던 균제는 이 인연이 이번한 생에 우연히 벌어지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자신의 전생을 돌아본 것입니다. 스승의 깊은 은혜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는 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족계조차도 받지 않고 ‘사미’로 남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현우경』 속의 균제 사미 이야기는 사리불 존자의 됨됨이를 대번에 알려줍니다. 자신을 진리의 길로 이끈 스승에게, 그리고 자신과 나란히 수행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에게 그가 대하는 마음가짐은, 자신을 스승으로 삼아 수행의 길에 나선 후배와 제자들에게까지 따뜻하게 미칩니다.


| 사리불에게 법문을 청하는 부처님

지혜제일 사리불 존자는 이렇게 다른 이를 향해 한없이 따뜻한 성품을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 스스로에게는 티끌만큼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의도가 없더라도 자신이 살피지 못해 승가에 아름답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그는 스스로의 탓으로 여기며 부처님 앞에 맹세했습니다.

이런 존자인 만큼 사람들의 신망은 두터웠습니다. 하지만 이걸 시기한 박복한 자들도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부처님에게 사리불 존자에 대해 이러 쿵저러쿵 음해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모함이 들려오면 영락없이 사리불을 불러서 추궁하십니다.

“이러저러한 소리가 들리던데 사실이오?”

사리불 존자는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스스로를 완벽하게 살피는 수행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부처님은 잘 알고 계시니 그게 근거 없는 비난이라는 뜻이 담긴, 에두른 대답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내가 그대를 알고 있는 것은 지금 의미가 없으니 그대 입으로 결백을 증명해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난 존자는 승방을 돌아다니며 “사리불 존자께서 법문을 하실 테니 다들 모이십시오”라고 스님들을 불러 모읍니다.

사리불은 수행자로서 손짓 하나 발걸음 하나도 늘 알아차리고 있어서 다른 수행자들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는 없음을 부처님 앞에 밝힙니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을 완전히 항복 받은 사람임을 천명하지요. 게다가 뜻하지 않게 결백을 주장하게 된 지금의 처지에 대해서도 마음은 담담하고 평온함을 밝힙니다.

이런 사리불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모함했던 스님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빕니다. 사리불 존자가 그마저도 너그럽게 받아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부처님은 이런 모함의 자리가 오히려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리불이 법문을 들려줄 좋은 기회임을 아셨고, 그래서 짐짓 사리불의 사자후를 요청 하신 것입니다.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합니다. 지혜는 냉철하고 강인하고, 자비는 따뜻한 은혜와 사랑이라 이해합니다. 그런데 자비의 ‘자 (慈, metta) ’에는 우정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수행자가 세상과 도반을 향해 품는 그 마음에는 우정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라 해도 좋습니다.

성자 사리불의 지혜는 치열한 수행 끝에 찾아왔겠지만, 그 지혜의 온도는 따뜻했습니다. 생명을 보듬고, 생명을 지혜롭게 키운, 자애의 온기를 품은 성자가 바로 사리불임을 경전에서는 곳곳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