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으로 읽는 현대경영] 아함경영

아함경영, 창업의 용맹정진으로 이익·조직의 작동 시작

2018-03-02     이언오

| 『아함경』 초전법륜에 불교의 원형인 계·정·혜가 등장

부처님이 밝히신 진리의 등불이 지금도 빛나고 있다. 부처님 한 분으로 시작된 교단이 커지고 퍼져나가 중생의 든든한 귀의처로 자리 잡았다. 생멸이 무상한 가운데 오랫동안 이어졌으니 희유한 일이다. 부처님은 불법과 교단이 이처럼 지속될 거라 예상하셨을까? 세속 고통에 무기력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무어라 하실까?

불교의 DNA는 부처님 재세 시에 만들어졌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창조한 원형原型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불교는 역사가 되었다. 원형을 씨앗으로 해서 나무들이 자라나 거대한 숲이 우거졌다.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 위협에 대처하면서 일궈낸 성과이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첫 전법은 한편의 드라마다. 『아함경』 초전법륜에 그 장면이 생생하게 나와 있다.

부처님은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은 후 옛 도반들을 찾아가셨다. 사성제와 팔정도, 무상·무아의 지혜를 가르쳐 마음의 눈을 뜨도록 하셨다. 고행, 쾌락, 중도와 탁발 생활의 계율을 함께 실천하셨다. 불교의 원형인 계·정·혜가 등장하는 결정적 순간이다. 부처님은 계·정·혜를 구족하셨으며 열반하실 때까지 솔선하시고 아낌없이 나누셨다. 그 덕분에 부처님 열반 후에도 법륜이 계속 굴러 오늘에 이르렀다.

바퀴는 축을 중심으로 살이 테를 지탱한다. 축·살·테 일체가 바닥과 마찰하면서 나아간다. 축은 비워서 채우고, 살은 고정된 듯 움직이며, 테는 분리와 밀착이 무애하다. 축·살·테가 각각 중도이며, 그 셋이 따로 또 서로이다. 법륜의 축은 선정, 살은 계율, 테는 지혜이다. 계·정·혜도 홀로 서고 또한 어우러져 법륜이 굴러간다. 하나라도 부실하거나 전체가 부조화하면 법륜이 제 기능을 못한다.

부처님은 법륜의 체를 득하셨고 굴리는 방편에 통달하셨다. 제자·신자들이 몰려들어 불교가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소승은 계, 대승은 혜, 선불교는 정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소승은 교단, 대승은 철학, 선불교는 좌선에 갇힌 듯하다. 과거나 상대를 뛰어넘으려다 아我·견見·상相의 함정에 떨어졌다 하겠다. 초전법륜의 계·정·혜를 되살려야 불교가 살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기업은 계·정·혜가 잘못되어 있다. 이익을 위해 혜를 사용하며 조직이라는 계를 강제한다. 기업가의 마음, 즉 정이 삼독에 젖어있어서이다. 약육 강식 세상에서 기업을 새로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업이 특히 어렵고 고통스럽다. 계·정·혜가 기업의 고통 수준, 성공 확률,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 초전법륜에 창업 고통을 줄이고 성공·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나와 있다.


| 창업은 용맹정진으로 이익·조직 작동을 시작하는 일

창업자는 불교의 부처님에 해당한다. 창업은 초전법륜처럼 위대한 사건이 다. 뜻이 작고 잠재력을 몰라서 부처님과 같은 시도를 하지 않을 뿐이다. 부처님의 목숨 건 노력, 큰 깨달음, 동반자 설득, 솔선과 불방일은 그대로 창업자의 덕목들이다. 조금만 따라 하면 적은 고통으로 창업에 성공한다.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경험을 쌓아 재도전할 수 있다.

창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례와 동반자가 있으면 과정이 덜 힘들고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일정 고도 이상의 비행기에 올라타면 적은 에너지로 순항할 수 있다. 초전법륜 선례를 바탕으로, 한뜻으로 함께 정진할 동반자를 모아야 한다. 창업자가 어리석고 모자라서 뛰어난 선례를 현실화하지 못한다. 일으키는 마음, 실천하는 사람의 일심동체가 해답이다. 마음이 중생이고 부처인 이치이다.

창업의 정은 용맹정진이다. 창업자 마음이 깨어있고 용맹해야 각오와 접근이 남달라진다. 부처님은 6년 고행으로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 평생을 시류와 제약을 거슬러 법륜을 굴리는 데 매진하셨다. 창업은 새로운 연기 관계를 엮어내고 또 작동시켜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구체적 성과가 날 때까지 고통을 견디고 난관 앞에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심신의 에너지를 단기간에 집중하여 투입해야 한다.

창업의 계는 조직이다. 초기의 일하는 틀과 지켜야 할 기준이 구성원의 헌신 여부를 좌우한다. 초전법륜의 첫 제자들은 지혜에 목말랐고 수행이 체질화되어 있었다. 자발적 준수가 뒷받침되어 교단의 틀과 기준이 자연스럽게 정립되었다. 창업자가 모범을 보이고 시행착오를 통한 개선을 주도해야 한다. 경영이 어렵거나 규모가 커진 후에도 통제보다 자율, 보상보다 열정을 우선해야 한다.

창업의 혜는 이익이다. 부처님이 지혜로 제자들을 모으셨다면 창업자는 기대 이익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익의 발생·분배가 선순환을 해야 창업의 첫 고비를 넘긴다. 창업이 고통스러운 것은 탐욕이 앞서는데 이익 실현은 불확실한데 기인한다. 특별한 기술이 있으면 괜찮지만, 대부분 시장이 척박하고 경쟁사는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이법利法의 외도에 통달 해서 조기에 실적을 내는 수밖에 없다. 현금 흐름에 밝아야 하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결단 내려야 한다.

창업 과정에서 생사의 고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초전법륜과 달리 창업은 원형이 허술한 관계로 모든 순간이 존폐의 기로이다. 내부 결속, 외부 위협 대처와 관련된 요소들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실패하게 된다. 소수 기업만이 창업자·구성원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 이익 순환과 조직 작동의 순항을 본격화한다. 창업자는 겨우 점오해서 계속 점수하는 보살이다. 근기가 낮아서가 아니라 사업하고 이익 내기가 원래 어려운 탓이다.

창업자의 삶은 고달프며 사회 인식도 별로이다. 사람들이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고 창업을 기피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음과 행동이 당연함에 머문다면 앞날이 계속 암담하다. 바퀴는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약한 힘을 가해도 운동을 지속한다. 관성이 붙으면 혼자서 돌아가며 멈추기가 오히려 힘들다. 불교 관점에서 마음먹는 순간이 창업, 각자는 모두 창업자이다. 생업生業은 그저 먹고사는 일이 아닌, 항상 살아 움직이는 정명正命이다. 불교, 특히 선불교의 강점인 파격과 무애행을 기업 창업에 접목해야 한다.


| 불교와 기업이 법륜의 두 바퀴가 되어 굴러가야

부처님 당시는 축의 시대라 불린다. 세계 각지에서 현자들이 출현해 정신의 축을 새롭게 정립했다. 전쟁과 상업의 확대로 고통이 야기되었고 치유의 지혜들이 제시되었다. 지금 전쟁과 경제가 요동치는데 중심을 잡아줄 정신은 빈곤하다. 불교가 정신의 축 역할을 해서 세속 고통을 치유해야겠다. 기업을 파트너 삼아 법의 바퀴를 쌍으로 굴리면,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한 노파가 수행자 품에 딸을 안기게 해서 시험을 했다. 수행자는 고목이 바위 대하듯 하다 쫓겨났다. 차갑게 물리쳐도 뜨겁게 당겨도 몽둥이가 돌아왔다. 딸을 꽃으로 피게 하는 것이 해답. 말법 시대에 불교는 계·정·혜가 노쇠한 고목이다. 기업이라는 꽃은 정신이 혼미·방일한 탓에 이익·조직의 악취가 진동한다. 불교가 계·정에 솔선하면서 기업의 혜를 도와야 한다. 기업은 바른 정신과 조직으로 이익을 내고 고르게 나눠야 한다. 출가자 법보시와 재가자 재보시가 상의相依하는 초전법륜의 재현이다.

국내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처해있다. 실적이 나쁜데 더해서 구성원 사기가 바닥이다. 도덕성 실추를 넘어 왜 기업을 경영하는지조차 모호해졌다. 창업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대기업 독점,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도 창업을 활성화하면 돌파할 수 있다. ‘창업, 이 뭣꼬?’ 화두를 들어야 한다. 창업 고통에 자극받아서 창업자가 용맹정진을 이어간다. 깨달으면 더 좋고 최소한 번뇌는 사라진다. 작고 쉬운 창업들을 시도하면서 현실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창업 경험이 지혜가 되어 이익·조직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초전법륜은 내리막에서 행해지지 않았을까. 당시 수행자가 많았고 교단은 다양했으며 세속은 그들을 기꺼이 지원했다. 부처님 가르침이 피뢰침이 되어 시대정신의 스파크가 발생했다. 정신을 갈구하는 열기들이 모여 들어 법륜의 운동을 가속시켰다. 현재 법륜이 골짜기에 떨어져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부처님 법륜은 여여한데 중생의 마음에는 병이 골짜기와 오르막을 만들어냈다. 각자가 조금씩 깨닫고 함께 꾸준히 실천해서 법륜을 밀어 올려야겠다.

소승을 1차, 대승을 2차, 선불교를 3차 불교혁명이라 한다면 앞으로 4차 대개혁이 요구된다. 초전법륜 순간으로 돌아가 불교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구현해야겠다. 계·정·혜의 진가는 봉암사 결사의 성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다시 한 번 수행 종풍을 진작하고 현장의 자율성·역동성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에게 배워 포교당 신설, 불교사업 창업에 나서야겠다. 재가자 역할 증대, 타 종교 및 세속과의 소통·협업도 요구된다. 불교가 나날이 새로워야 세상에 좋은 날이 온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