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능엄경정맥소』출간한 진명 스님

어느 수좌스님이 완역한 능엄경 해설서

2018-03-02     유윤정

차가 닿지 않는 곳, 전남 구례 지리산 산속의 토굴 ‘관음암’. 눈이 채 녹지 않은 산길을 막대기에 의지해 걸어 올라가야 보이는 외딴 토굴에는 수좌스님이 홀로 산다. 출가한 지 27년. 오로지 화두참구에 매진하던 스님이다. 진명 스님은 이 네 평가량의 작은 인법당에서 『능엄경정맥소楞嚴經正脈疏』를 완역했다. 우리나라 최초 『능엄경정맥소』 완역으로, 10년이 걸린 대작불사였다. 선방에서 정진하던 수좌 스님은 왜 『능엄경정맥소』 번역을 발원했을까.

사진:최배문


| 정맥소는 수좌의 길을 제시한다

전날 밤, 아궁이에 불을 넣어 구들장은 뜨끈했고, 스님은 객에게 아랫목을 내어주었다. 관음암 인법당에는 한 자 반 크기의 순백의 약사여래불이 모셔져있는 불단과, 경전이 꽂혀있는 책장과 좌식책상, 무릎보다 낮은 찻상이 전부였다. 전기는 들어왔지만 TV는 없고, 노트북은 있지만 인터넷은 안 된다. 다행히 휴대폰은 가능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원고는 어떻게 주고받으셨냐고 여쭈니 “원고는 컴퓨터로 작업한 후 USB에 담아, 산을 내려가 순천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원고를 주고받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진명 스님. 스님은 1992년 전강 대선사의 제자인 정공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사미계를 받던 해부터 해운정사, 봉암사, 송광사, 미황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고, 지금도 지리산 자락 토굴에서 수행 중인 선승이다. 출가 후 강원에 가지 않고 바로 선방으로 향했던 수좌스님이 『능엄경정맥소 (교광진감 지음, 진명 옮김, 전4권, 불광미디어) 』를 우리말로 완역하고 출간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능엄경』은 참 드라마틱합니다. 경은 부처님과 아난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시자 아난이 멀리 탁발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환술幻術을 잘하는 ‘마등가’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마등가는 아난을 음실淫室에 들여놓고 아난의 계행을 깨뜨리려 했습니다. 부처님은 멀리서 그것을 알고 문수보살을 보내 아난을 건져 와요.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로, 부처님은 중생들이 어떻게 수행에 들어가고 행하는가, 어떻게 성불할 수 있는가, 가르침을 이어나갑니다. 흥미진진하지요.”

진명 스님이 차를 내리며 『능엄경』의 첫머리를 소개해주었다. 『능엄경』은 선 수행에 있어 가장 수승한 수행지침서로 칭해지며 애독되어 온경전으로, 수행자의 필독서로도 칭해진다. 그리고 스님이 완역한 『능엄경정맥소』는 명대明代 교광 진감 선사가 『능엄경』을 철저히 분석해 선禪의 관점에서 경의 맥脈에 따라 낱낱이 해설한 주석서다.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한 경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서인 것이다. 진명 스님은 처음 이 『능엄경정맥소』를 접하고 읽었을 때 느꼈던 환희심을 함께 나누기 위해 한 자 한 자 우리말로 옮겼다.

“십수 년 화두를 참구하더라도 수행을 하다 보면 왜 화두선이 최상승선인지 의구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길이 맞나’ 하는 의심도 일어나고, 다른 방편도 찾게 됩니다. 정진은 팍팍 안 나가지, ‘이거 안 되는 건가’ 하고 떨어지기 십상이에요. 그럴 때는 교학적 관점, 철학적 관점이 서야 합니다. 바탕이 서면 견고한 자리가 만들어집니다. 만약 화두선을 하다가 마음이 흔들릴 때, 정맥소를 일독하면 ‘왜 간화선을 닦아야 하는가, 이 도리가 어째서 가장 수승한 도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맥소에는 이 문제에 대한 교학적·철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사진:최배문


| 이러한 대승요의를 어찌 혼자 볼 수 있겠는가

진명 스님이 『능엄경정맥소』를 처음 접한 것은 2009년, 망월사 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정진할 때였다. 강원을 따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교학이나 경經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화두참구를 할 때는 조사어록을 봤고, 조사어록을 읽으며 힘을 받아 정진했었다. 이때 각성 스님의 『능엄경 정해』 를 가까이했다. 그리고 『능엄경』을 풀이한 정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겨울안거를 마치고 부산 화엄사에 계시는 각성 스님을 찾아뵀다.

“노장님이 정맥소 한 질과 함께 종이 표 한 장을 주셨습니다. 정맥소에 현토懸吐가 달려있었는데, 이두吏讀였어요. 그걸 번역할 수 있게 돕는 이두 현토표였습니다. 노장스님이 준 표 한 장과 2,600 쪽짜리 정맥소 한 질, 한자사전과 허사사전을 들고서 다음 철, 개심사 보현선원에 입방했습니다.”

그때부터였다. 방선 때마다 아주 짧게 포행하고 돌아와서는 책을 펼쳐 봤다. 암호를 풀 듯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처음 그 의미가 드러나 선명해졌을 때는 섬광이 번쩍 튄 듯했다.

“쇼크였습니다. 화두참구를 하면서 그렇게 애쓰던 세계가 구절에서 발견될 때, 정말 환희용약歡喜踊躍 했습니다. 그동안 정진하면서 느낀 갈증들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문 울타리에 갇혀 있던 내용을 암호 풀듯이 풀 때마다 장막이 걷히고, 내용이 이해될 때마다 그 신심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대승요의를 어찌 혼자 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엔 일일이 연필로 옮겼었습니다.”

난해하고 방대한 분량이다. 유식, 대승기신론, 중론, 조사어록 등의 이해가 있어야 했다. 이해한다고 해도 발심하지 않는 이상 한 번 통독하기도 쉽지 않다. 상당한 끈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게으름 부릴 틈이 없었다. 안거 4철, 2년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그 뒤 제방선원에 방부를 들일 때마다 원고를 지고 다녔다. 글 밝은 스님들을 찾아 서슴지 않고 해결하지 못한 곳에 대해 물었다. 전체를 모아 읽으면서, 문단도 새로 끊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문장도 매끄럽게 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난해한 대목은 도표로 정리하고 역자 주를 붙여 설명했다. 선방과 토굴을 옮겨 다니며 초고부터 윤문까지 마치는 데 10년이 걸렸다. 스님은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했다.

“저같이 무식한 사람이 아쉬움 하나로 달려든 것이죠. 하지만 대중선방 사는 자세는 아니었습니다. 방에 엎드려서 책 펴놓고 있던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참 미안한 일입니다.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문에도 그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진:최배문


| 왜 화두선이 최상승선인가

수좌는 글을 멀리하라 하는데 번역하느라 화두 참구가 어렵진 않았는지 묻자, 스님은 “화두가 더 잘 들렸다.”고 답했다.

“다른 글이었으면 달랐겠죠. 정맥소를 읽으니 화두참구와 내용이 맞아 떨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정신이 바짝 차려지고 화두 드는 재미가더 일어났습니다.”

관법이나 염불법 등 많은 수행방편이 있는데 어째서 화두선이 최상승선이라 하는가. 스님은 『능엄경정맥소』를 읽으면 그 이유와 근거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왜 화두선이 최상승선인가’ 쉽게 설명해달라는 부탁에 스님은 이렇게 예시를 들었다. 첫 관문을 어디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장군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사관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다면, 백날 천날 올라가도 준위까지입니다. 장군은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사관학교에 간 사람은 장군이 됩니다. ‘한 방에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핵심입니다.”

‘육식六識을 관觀하여 닦는 법’은, 진여묘용眞如 妙用에 계합하려면 제6식에서는 도달할 방법이 없다. 제8식에서 닦는 법이야말로 ‘바로 진여묘용에 계합할 수 있는 방법’이며 그것이 화두선이라는 것이다.

『능엄경정맥소』는 제8식에 계합하는 묘리를 설명하며, 갖가지 마장을 어떻게 분별해내고 퇴치하는지 낱낱이 분석해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스님은 정맥소를 읽으면 ‘이렇게 닦으면 된다.’ 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게 되니, ‘지금 당장은 시원찮은 도가 성취 안 된다고 한들, 끝내는 그 성취를 이룰 것’이라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진이 더디고 잘 안 되는 상황은 하근기일수록 더욱 괴롭고 힘듭니다. 해도 해도 안 되고 미칠 것 같지요. 그러나 정맥소를 읽어가면서 제게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장원심長遠心이 생겼다고 할까요.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이러한 부처님 가르침의 이해를 갖췄기 때문에, 이제는 다음 생 그다음 생에도 이렇게 시원찮은 하근기 수행자로 살아도, 견디고 정진하며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스님은 “부처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능엄경』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진학하는 것처럼 차근히 이치 길을 터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엄경정맥소』는 사교입선捨敎入禪 하는데 최고의 텍스트이며, 또한 이제는 재가불자들도 기본기를 갖추고 있으니, 심화가 필요한 때 제대로 심화 단계에 들 수 있게 하는 해설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좌는 분별을 내려놓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옮기는 일은 종합하고 추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괴로웠지요. 하지만 이 『능엄경정맥소』를 읽으며 그동안 정진하며 느낀 갈증이 해소되고, 말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습니다. 매 순간이 가피였습니다. 이것이 『능엄경정맥소』의 힘입니다. 『능엄경정맥소』를 읽는 사람은 누구든 저 같은 경험을 할 거라 확신합니다.”

스님께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스님은 어서 공부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방에서 정진할 것이라 했다. 산골짜기서 바람이 불어 풍경이 뎅뎅, 울렸다. 법당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는 스님의 눈에 지리산이 투명하게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