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내일이면 늦으리

“사람의 목숨줄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숨 쉬는 사이 (呼吸間) 에 있습니다.”

2018-03-02     박재현
그림:이은영

부처가 사문들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줄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人命在幾間) ” 한 사문이 대답했다.
“며칠 사이 (數日間) 에 있습니다.”
부처가 말했다.
“그대는 아직 도에 이르지 못했구나. (未爲道) ” 그리고 다시 물었다.
“사람의 목숨줄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다른 사문이 대답했다.
“밥 먹는 사이 (飯食間) 에 있습니다.”
부처가 말했다.
“그대도 아직 도에 이르지 못했구나.”
부처가 또 물었다.
“사람의 목숨줄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한 사문이 대답했다.
“숨 쉬는 사이 (呼吸間) 에 있습니다.”
부처가 말했다.
“잘했다. 그만하면 도에 이르렀다 (可爲道) 고 할만하다.”


『선문염송』 제10칙에 올라있는 공안公案 이다. 제목은 「인명人命」 즉 목숨줄이다. 절집에 오래 드난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큰 스님 법문으로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다. 훅 하고 들이쉰 숨이 내뱉어지지도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면 그만인 것, 사람의 목숨줄은 그처럼 부질없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이 이야기는 구조도 단순해서 ‘뜰 앞의 잣나무’나 ‘마른 똥 막대기’ 같은 공안에 비교하면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로 이해하기 쉬워 보인다.

‘며칠 사이’는 내일은 기약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들린다. ‘밥 먹는 사이’는 그보다 더 짧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숨 쉬는 사이’는 더더욱 짧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사람의 한살이가 호흡 한 번 되돌리지 못하면 곧 딴 세상이니, 사문들은 한눈팔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에 힘쓰라는 부처의 권고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원래 『사십이장경 四十二章經 』에 나온다. 여기서 “아, 그런가 보다!” 하면 안 된다. 절밥 좀 먹은 사람이라면 “어, 그래?”라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경전의 내용이 그대로 공안으로 올라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 이나 사교입선捨敎入禪 이라는 말귀에서 느낄 수 있듯이, 경經 을 기초로 하는 교 敎 와 구별 짓는 게 선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가의 공안을 집대 성한 『선문염송』에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진 『사십이장경』에 있는 이야기가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선문염송』의 해설서인 『염송설화』도 여기서 부터 짚고 들어간다. “고산 孤山 의 소에서는 ‘인명이 매우 촉박한 줄을 알게 되면 방일 放逸 하지 않게 되고, 방일하지 않으면 능히 도를 얻을 수 있다.’ 고 하였으니, 이는 교 敎 의 뜻이거니와 선 禪 의 뜻은 어떠한가?”라고 묻는다. 다시 설명하면, 이 이야기를 수행을 독려하는 말씀 정도로 받아들이면 그건 교가 敎家 의 이해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사람의 명줄이 호흡지간에 있으니 그런줄 알고 열심히 수행하라고 이해하는 것은 선가의 시선이 아니다. 그건 글자에 의지해서 글자 속의 의미를 채굴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선 수행자라면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여기서 재차 물을 수밖에 없다. 선 禪 의 시선 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읽으면 어떻게 다르게 읽히는 것일까.

바로 이어서 『염송설화』의 저자는 한 선사의 말을 빌려 힌트를 주고 있다. “세상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이 있고,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 가 있으며,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이 있으니, 이 열두 가지(十二事)는 매우 기특奇特 하도다.” 여기서 ‘기특하도다.’라는 말이야말로 참으로 기가 막힌다.

초기경전 중에 『기특경奇特經 』이라는 것도 있다. 내용은 단순하다. 어떤 사람이 후생(내생)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서 붓다와 그 제자인 가전연迦旃延 에게 각각 다른 때와 장소에서 각각 물어봤는 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대답한 것을 두고 기특하다고 표현 했다. 『벽암록 碧巖錄 』에도 있다. 제26칙에 「백장대 웅봉 百丈大雄峰 」이라는 공안이 있는데, 어떤 수행자 가 백장 화상에게 “어떤 것이 기특한 일입니까?” 하고 묻자, “홀로 대웅봉에 앉아 있는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말에서 기특은 신통하여 귀염성이 있다는 뜻으로 아이를 칭찬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하지만 한자어 기특의 의미는 좀 다르다. 말이나 행동이 기묘, 기교, 특출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심지어 비정상이거나 이상하다는 부정적인 의미까 지도 있다. 기특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 그러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치도록 만드는 생각이나 행동을 가리킨다. 경이롭다는 말이 의미상 가까운 표현이다.

성주괴공과 생로병사와 생주이멸이 기특하다는 것은, 바람 불고 낙엽 지고 새가 우는 게 경이롭다는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늘 그러한 일상이 경이롭다는 뜻이다. 물 긷고 나무하는 게 바로 신통이고 묘용(神通并妙用 運水與搬柴) 이라고 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 경이로움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이 더 물 흐르듯 되지 않을 때 절감하게 된다. 먹고 자고 싸는 것 같은 의식도 못 했던 일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알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는다.

자연自然이란, ‘저 스스로 그러함’이란 얼마나 눈물겨운가. 때 되면 눈이 내리고, 꽃이 피고, 또그것을 바라보며 숨 쉬고 있는 내가 있는, 바로이 사건이 벌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인연因緣 의 절묘한 구성이 필요한가. 며칠 사이나 밥 먹는 사이는 틀렸고 숨 쉬는 사이는 옳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사람의 한 살이가 너무 긴박하다거나 부질없다는 뜻으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생겨나 잠시 머물렀다 흩어져 사라지는 그 인연의 경이로움을 숨이 가장 잘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진달래 우거진 꽃밭을 봤다. 어찌나 야단스럽게 피었던지, 지금 와서 한번 보렴.”
제자가 대답했다.
“사중에 일이 많습니다. 내일이면 좋겠습니다.”
스승이 다시 말했다.
“내일이면 늦으리, 오늘이어야 해.”
제자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갔다.


송암지원松庵至元 화상은 경기 안성에 있는 도피안사에 주석하고 있는 사문이다. 스님은 잠실 불광사를 한국불교 전법대본산으로 만들었던 금하당金河堂 광덕(光德, 1927~1999) 대선사의 제자다. 스님은 1971년 12월 2일 범어사금강계단 梵魚寺金剛戒壇에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송암 이라는 법호 法號 는 1989년 전법 傳法 의 부촉 咐囑 을전하며 스승이 내려준 것이라고 했다.

사제 간의 깊은 정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스님은 1999년부터 시작해서 10년에 걸쳐 『광덕스님 시봉일기』를 집필 완간했다. 무려 단행본 11권이나 되는 분량이다. 스님은 탑을 쌓는 심정으로 책을 엮었을 것이다. 앞의 이야기 주인공이 바로 이 두 스님이다. 송암 스님은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내일이면 늦으리’를 화두처럼 가슴에 안고 산다고 한다.

‘내일이면 늦으리’는, 내일은 꽃이 질 것이 니 늦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꾸지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생겨 나거나, 존속되거나, 흩어지거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주의 집중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생겨나는 것을 보고, “아, 생겨나는 것이란 이러하구나” 하고 얼마나 감탄해봤을까. 머물러 있는 것을 두고, “아, 머물러 있는 것이란 이러하구나” 하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감탄해 봤을까. 그렇게 주의 집중해서 마침내 성주괴공과 생로병사의 이치를 한꺼번에 꿰뚫어 보라는 뜻일 것이다.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은 너무 모질다. 그 앞에서 나는, “아, 흩어지는 것이란, 사라지는 것이란 끝내 이러하구나” 하고 되뇌지 못한다.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아무리 중인연화합소생衆因緣和合所生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오랜 숙연宿緣 의 두께 또한 만만치 않은지라, 밥을 물에 말아도 자꾸 목에 걸린다. 세상의 모든 흩어져 사라진 것들과, 그렇게 되고 있는 것들과, 또 그렇게 될 것들을 앞에 두고 아직도 성주괴공과 생로병사를 한꺼번에 꿰지 못하는 나는, 신음처럼 겨우 주문呪文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박재현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저술로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깨달음의 신화』, 만해, 그날들』 등이 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겨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