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광주 광덕사 주지 효진 스님

'똥통'스님의 불교환경이야기

2018-03-02     김성동
사진:최배문

똥통. 효진 스님 (광주 광덕사 주지) 이 건네준 명함에 찍혀있는 글자다. ‘잘못 인쇄됐나?’ 하고 잠시 주춤거리자, 스님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그거 제 아호雅號 입니다”하며 웃었다.

- 왜 아호가 똥통이죠?

“하하, 그런 질문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아호를) 그렇게 정했어요.”

-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인가요?

“예. 맞습니다. 그럼 이 이야기부터 하죠. 왜제가 ‘똥통’이란 상스러운 단어를 쓰고 있는지.”
인터뷰가 스님의 계획대로 움직인 듯하다. 이럴 때는 인터뷰이를 따라가는 것이 답. 스님은 국제개발NGO인 ‘로터스월드’ 캄보디아 지부 장으로 2009년부터 3년간 캄보니아 시엠립에서 활동했다. 이곳에서 아동보육, 미용교육, 지역 사회개발, 교육지원 등의 사업을 맡았다. 학교를 짓고, 우물을 파고, 화장실을 지어주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화장실은 중요했다. 아이들의 위생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녀 중고등학생들은 화장실이 없어 들판에서 볼일을 보는 상황. 화장실을 만들어 아이들이 이용할 수있도록 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화장실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오수처리장이 없었기 때문. 급한 대로 오수처리장 시설을 갖추고 화장실 기능을 개선했으나, 스님의 머릿속에는 묵직한 의문이 하나 남았다. ‘오수처리장 없이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 수 없을까.’

 

| 오수가 발생하지 않는 변기를 개발

2011년 귀국 후 광주에 내려와 줄곧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법당에서도, 공양할 때도, 도반을 만날 때에도 화두처럼 들러붙었다. 물을 쓰지 않는 변기. 마침내 스님의 생각이 다다른 곳이다. 오수가 발생하지 않는 변기를 개발한 것이다. 이변기가 “모든 수세식 변기를 대체할 수 있다”고 스님은 말했다. 특허를 받은 이 변기는 몇 번의 시험을 통해 이제 ‘시제품’까지 나온 상태. 스님이왜 명함에 ‘똥통’이란 단어를 썼는지 이해됐다.

- 스님이 개발해 특허를 낸 이 변기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소변과 대변을 분리하는 시스템입니다. 소변은 액비로 쓰고, 대변은 생분해되는 비닐로 포장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퇴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변기는 일곱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물을 아낄 수 있고, 둘째는 오수가 없기 때문에 오수처리 비용이 필요 없습니다. 셋째는 인과 질소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오염도 없습니다. 넷째는 액비와 퇴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퇴비를 대량으로 모으면, 여기서 배출되는 대량의 메탄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등 다양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자연순환 생태계에 도움을 줄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별도의 화장실 청소가 필요 없습니다.”

- 실제 스님께서 어느 정도 활용하고 계신가요?

“제가 지금 이 변기를 쓰고 있습니다. 핵심은 물을 쓰지 않고 소변과 대변을 분리해서 포장하고 재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자원화할 수 있는 것 이죠. 실제 저는 소변을 액비로 활용하고, 인분을 모아서 절의 텃밭에서 퇴비로 쓰고 있습니다. 이게 규모가 더 커지면 더 큰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 오줌과 똥으로 자연생태가 순환된다는 것이군요.

“소변과 대변을 액비와 퇴비로 자연에 되돌려 주면, 우리가 자연에서 먹거리를 취하고, 다시 이를 자연에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사람 으로, 사람에서 자연으로 순환하는 생태계가 만들 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가르침에 완전 하게 부합됩니다. 제가 명함에 ‘똥통’을 쓴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더 시행착오를 더 겪을 수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갈 겁니다. (웃음) ”

- 이 변기가 상용화된다면 산에 있는 사찰에 아주 유용할 것 같습니다.

“너무 좋죠. 그것이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오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곳은 다 활용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이 ‘똥통’으로 시작된 ‘물을 쓰지 않는 변기’를 주변에 널리 알려 함께 관심 있는 사업자를 찾아다녔다. 마침 광주NGO센터에서 크라우딩 펀딩으로 출품해 1등을 수상했다. 작년 11월에 나온 ‘시제품’은 이 수상 상금으로 만든 것이 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다. 주변에서 창업을 추천했다. ‘창업이라니. 출가한 중이 무슨 창업 을….’ 이런 생각으로 멈칫했지만, 결국 이 변기 하나로 조선대학교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했다. 이제 스님은 절의 주지이기도 하지만, 변기 CEO이 기도 하다.

사진:최배문


| 불교가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 

출가 전 조계사 길상풍물패 6기 상쇠를 맡았다. 쇠를 치다가 은사 월성 스님을 우연히 만났다. 은사스님이 “자네 머리나 깍지” 하니, “잠깐 시간 좀주세요”하고 법당에 가서 2시간 정도 앉아있었 다. 결심이 서자 곧바로 은사스님께 말했다. “출 가하겠습니다.” 그 길로 출가했다. 쇠 하나 들고 출가한 셈이다. 주변 정리도 출가한 후에 했다. 그때가 20대 후반이다. 그 후 94년 2월에 사미계를 받았다. 법주사 강원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미얀마로 가 1년 동안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귀국 후 광주와 서울 등지에서 몸을 의탁하며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활동을 시작할 때우리 사회를 많이 흔들었던 두 가지 사건이 발생 했다. 2008년 이른바 ‘명박산성’이라고 불렀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과 ‘기륭전자 투쟁’이었 다. 승가단체로는 유일하게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참여했다. 이 참여의 가장 선두에 있었던 스님이 바로 효진 스님이다. 당시 직책은 실천불교전 국승가회 사무처장. 많은 날들을 광화문에서 보냈다. 불교와 역사와 삶이 수없이 교차하는 현장을 직접 몸으로 겪은 셈이다. “불교가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있는데, 사회 문제에 불교가 거의 존재 감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요.” 외롭고, 적지 않은 회한을 안겼던 시기였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이하 불교환경연대) 공동 대표. 2016년부터 맡아 현재 스님이 가장 자랑하며 많은 활동과 애정을 갖고 있는 직책이다. 무엇 보다 왕성한 활동과 서로서로 에너지를 주고 있는 회원들이 좋다. “불교환경연대에서 어린이 청소년 활동과 시민사회운동도 하고 있었기에 내가 평소 가고자 했던 지향과 잘 맞았습니다. 결합 하자마자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소모임이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잘 운영되고 있고, 회원들이 참여가 아주 높습니다.”

스님이 주지로 있는 광주 광덕사도 불교환경 연대 산하 사찰인 듯 환경사찰로 그 역할을 이어 가고 있다. 광덕사 옥상에 세워질 30kW 태양광 발전소. 이 발전소 이름이 ‘해품절’. 여기서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할 예정이다. 또 하나는 절 마당 끝에 있는 약 100여 평의 텃밭. 스님이 이를 도시 텃밭으로 내놨고, 이 텃밭을 광주전 남불교환경연대 소모임인 ‘친환경 살림을 선도해 가는 모임’ 에코맘 식구들이 관리한다. 전남광주 불교환경연대 소모임 풍물패도 스님의 절에서 연습하고 있다. MOST행복센터 (평생교육원) 운영, 협동조합, 두부와 콩나물 판매, 산지의 농산물을 도시와 연결, 된장과 매실 엑기스와 사과식초 판매, 광주전남 탈핵운동본부 공동대표 등 스님의 활동 성은 불교와 환경의 틀에서 움직였다.

사진:최배문

| 신행활동과 환경운동의 결합

“저에게 환경운동은 도구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경전에만 있고, 선방에만 있고, 절에만 있다면 참다운 부처님 말씀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학교에 서, 직장에서 어느 곳에서든 부처님 말씀을 내가 항상 호흡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불자 님들이 아직 사회참여에 대한 부분에 너무 인색 합니다. 제가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우리들이 생 활 속에서 불교를 함께 호흡하고, 거기에서 일어 나는 다양한 문제를 부처님 품 안에서 해결할 수있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불자들이 환경운동이 신행활동과 결합해서 나타나길 바란다. 환경운동과 신행활동의 결합. 그 모습이 어떤 것일까. “신행활동과 참여 불교를 엮어서 봉사하고, 기부하며, 보시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또 가까운 미래에 신행과 노동을 같이 할 수 있는 신행공동체, 불교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신행생활은 무엇인가요?

“부처님이 나와 같이 숨 쉬는 것이 신행활동 입니다. 그것이 절이건, 염불이건, 참선이건,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찾을 수 있는 고향, 어머니 품같은 것이 바로 부처님 품이어야 합니다. 그래서늘 같이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일하면서늘 법당에서 부처님을 뵐 수는 없지만, 항상 일상 에서 108배를 하고, 짧게 5분 명상을 하고, 긴 호흡을 해서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내가 왜 사는 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평상시에 질문하고, 답하고, 다시 힘을 얻는 것이 신행활동입니다.”

- 스님이 생각하는 불교공동체는 무엇인가요? 사찰 자체가 이미 불교공동체인데요.

“물론 절도 공동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신행공동체는 하루의 반은 공부하는데 쏟고, 반은 노동하는데 쏟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이 할 수 없지만, 여러 명이 함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 협동조합을 하면서 여러 일을 배우는 것도 그런 준비 작업의 하나입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함께 교육받는 대안 학교도 그런 맥락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함께 생활 하지만, 노동은 사회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유명한 공동체 마을과는 다른 좀 느슨한 공동 체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태국에는 이런 공동 체가 몇 군데 있습니다. 공동체에 학교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일반 학교에서 공동체 학교에 와서 1년 정도 공부하고,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이후 다시 사회에 나가기도 하고요. 공동체가 닫혀 있지 않고 열려있습니다. 이런 공동체가 우리 사회 곳곳에 필요합니다. 또 불교공동체니까 신행이 빠질 수 없습니다.”

-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선 우리 불자 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결국 저는 부처님의 말씀이 ‘상구보리하화중생’이라고 봅니다. 그것을 더 줄이면, 결국 ‘자비’입니다. 나만을 위한 시간, 개인의 고통을 없애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그것과 함께 내 이웃의 어려움에 손을 내미는 것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 둘은 같이 가지 않으면 힘들어집니다. 하나만 치우치면 나중에 어딘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상구보리하와중생으로 귀결됩니다. 또 이것의 기본은 자비심이고 연민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저는 미얀마에서 수행하며 사무치게 알았지만, 이를 삶에서 행동으로 완전하게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습 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에고, 업의 덩어리가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에, 문제를 봤다고 해서 그게 100%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습니다.”

- 앞으로 우리 불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우선 부처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데 계속 적용해야 합니다. 세상은 고해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고, 더 좋은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봉사와 보시는 기본이고, 더해서 우리의 삶의 방식과 고통들을 부처님 말씀에 비춰서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이죠. 그것이 다양한 소모임 활동과 신행 활동을 통해서 해결해나가는 것입니다. 불교환경연대도 이런 방향으로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형차 모닝. 스님의 자가용이다. 스님께 “사찰에서 소형차를 오랜만에 봅니다”고 말하자,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기에는 소형차가 좋습니다. 주차하기도 좋고, 기름값도 적게 들고요” 하며, 웃었다. 목적지는 광주 연화사. 광주시내 절을 모두 돌아가면서 절 수행하는 불교환경연대 소모임 ‘절로절로’가 월 1회 1,080배를 하는 장소다. 오후 6시 30분, 스님은 죽비를 잡았다. 30여 명의 대중이 모였다. 딱. 죽비소리가 들렸다. 제일 먼저 효진 스님이 절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