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잭프룻과 닭

2018-01-29     심재관

잭프룻

잭프룻을 보면 그렇게 큰 열매가 어떻게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달려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큰 과일의 둘레는 웬만한 성인의 허리둘레만 하고 무게도 30~40킬로 정도에 이르니 가히 과일의 제왕이라고 할 만하다. 수박의 두 배쯤 되는 크기니까 아마도 나무에서 달리는 과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과일의 위용 때문에 이 열매는 예나 지금이나 인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식품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기원전 3세기경의 아소카 대왕이 석주 위에 칙령을 새겨 잭프룻의 재배를 권장했겠는가. 방글라데시에서 표방하는 국가과일이 이 과일이며 또한 인도 최남단 케랄라 주 정부가 선정한 공식 과일 역시 잭프룻이라는 것은 남아시아가 얼마나 이 열매를 사랑했는가를 보여준다. 지금도 여전히 인도 남부에서 망고와 바나나와 함께 3대 과일로 꼽을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웬만한 타밀나두의 가정에서 이 나무를 한두 그루 집안에 기르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경 속에서 이 나무는 파나사婆那娑 혹은 반나파半娜婆 등으로 불렀는데(學名 Artocarpus heterophyllus와 Artocarpus integrifolia 모두를 가리킨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panasa를 음사한 것이다. 후대에 이르러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바라밀수波羅蜜樹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위의 단어들이 와전되면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보인다. 지금도 바라밀수는 잭프룻을 가리킨다. 

인도뿐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이 나무는 과일을 얻기 위한 것뿐 아니라 목재로도 널리 이용해왔다. 특히 인도의 경우 비나veena와 같은 전통 악기를 만드는데 이 나무를 애용했으며, 베트남이나 발리 지역은 왕궁이나 종교건축물을 짓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잭프룻 열매 하나 정도면 대여섯 명의 수행자가 식사를 할 만큼 양이 충분하며 그 맛도 특유의 단맛이 있다. 당나라 구법승 현장 스님이 인도를 여행할 때 아마도 지금의 아쌈 지역 일대에서 잭프룻을 재배하는 모습을 기록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수행자들도 이 맛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잭프룻은 나무의 잔가지보다 기둥 쪽에 많이 달리며 가끔씩 뿌리 쪽에서 위를 향해 열매가 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잭프룻은 특별히 더 달기 때문에 예로부터 귀하게 취급되었으며 왕이나 귀족에게 진상하던 종류였다.

이와 같은 유용성 때문에라도, 잭프룻은 불교인들의 성스러운 ‘여덟 가지 성물聖物들’(아슈타망갈라As.t.aman.gala)이 완전한 한 세트로 정착되기 전에 초기의 몇몇 성물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이 8대 성물은 쌍어雙魚, 매듭, 양산, 법륜, 물병, 연꽃, 깃발, 고둥 등이지만 마투라 등지에서 발견되는 초기의 성물 조각들은 연꽃 대신 잭프룻으로 보이는 과일이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고대 인도인들 또는 불교인들에게 이 과일이 인기 있었다는 것은 바르후트Bharhut 탑 속에 조각된 잭프룻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다. 아마도 바루후트의 조각은 역사 속에 가장 일찍 조각된 잭푸룻의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가 특히 불교 승려 사회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그들의 승복에 대한 규정 때문이었다. 『마하박가Mahāvagga』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시 승려의 복장에 대해 여러 규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승려의 가사袈裟를 염색하는 일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한 과정까지 규정해 놓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승려의 옷이 더렵혀진 것을 전해 들은 후, 승려들의 옷을 몇 가지 색으로 제한하여 염색하여 입을 것과 그 염색 과정들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규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후대의 첨가된 이야기이겠지만, 어떤 색깔의 가사를 입어야 하는지, 염색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고, 건조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과 같은 일들을 규정해놓고 있다. 여기서 가사의 색깔은 밝은 황색, 갈황색, 어두운 황색, 청색, 주황색, 푸른색, 검은색 등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색깔로 규정한 것은 『마하박가』에 보이는 바와 같이 규정된 식물의 껍질과 뿌리, 몸통, 잎, 꽃, 과일 등으로 염색해야 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그 색깔들은 당대의 염색을 하는 데 사용되었던 식물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색깔들을 의미한다.

현재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승려들의 가사를 염색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던 식물이 바로 잭프룻이다. 주로 잭프룻의 심재心材 부분에 해당하는 나무조각이나 톱밥을 물에 넣고 여러 번 끓여서 염색을 하는데, 여기에 강황과 같은 부재료를 섞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염료를 통해 황갈색의 옷감을 얻게 된다. 지역에 따라 염색과정에 소똥이나 진흙 등의 다른 재료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황색의 염색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재료는 잭프룻의 나무조각이었다. 

이러한 잭프룻을 이용한 염색 전통은 동남아시아와 말레이반도의 불교전통이 존속했던 모든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캄보디아와 태국, 미얀마, 수마트라와 자바섬에 이르기까지 황색의 옷감 염색을 위해 잭프룻은 필수적인 나무였다.   

 

언젠가 발리Bali인인 내 친구는 자기 부인이 자기가 기르는 수탉을 질투하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그 수탉을 마치 형제처럼 아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마당에 나가 수탉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닭도 친구만을 유달리 따랐다고 하니, 닭과의 우정이 너무 진지해서 부인이 질투하더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말은 우스갯소리였다. 그렇지만, 나는 발리 사람들이 수탉에게 느끼는 신비로운 친화감을 익히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누구라도 발리에서 닭싸움의 열광적인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것이다. 클리포드 거츠Clifford Geertz는 『문화의 해석』에서 발리인의 닭을 마치 몸 밖으로 뛰쳐나간 ‘아트만ātman’ 정도로 기술하고 있다.

발리의 힌두인들이 갖는 닭과의 유대감은 오래전 인도에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다. 기원전부터 인도인들은 특별히 수탉을 영적인 동물로 신성시했을 뿐만 아니라(특별히 위태천韋陀天 신앙과 연관하여) 태양을 의미하는 동물로 받아들였다. 또한 수탉 싸움을 통해 점치는 방법도 알고 있었는데, 소위 ‘닭점’을 뜻하는 ‘꾸꾸따 샤스트라Kukkut.a śastra’는 27숙宿 별자리들이 인간의 운명뿐 아니라 닭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닭싸움의 결과가 인간의 운명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영향이 아마도 발리의 힌두인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들의 닭점에 대한 기록은 여전히 남아있다.

닭(또는 수탉)을 신성시했거나, 닭싸움을 즐겼던 곳은 인도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타난다. 한국불교의 천태종은 특별히 닭을 영적인 동물로 인식해 닭이나 계란 등을 신자들에게도 금기시하고 있다. 초기 인도불교 내에서도 그러한 흔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남아 있지 않으며, 티베트 불교의 전통 속에서 수탉은 오히려 삼독三毒의 하나를 상징한다. 그러나 초기 불교문헌부터 수탉이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동물로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자타카 문헌에서 수탉은 지혜롭고 영적인 동물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어린 날 읽었던 라 퐁텐La Fontene의 우화집Fables을 기억할 것이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여우와 학이 서로의 집에서 다른 방식으로 손님대접을 하는 이야기나, 은혜를 갚은 생쥐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었다. 라 퐁텐은 그 이야기들을 대부분 이솝의 이야기나 인도의 『팡차탄트라Pañcatantra』 등을 각색해 만들어냈다. 그의 이야기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팡차탄트라』나 인도불교의 자타카(Jātaka, 본생담) 문학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라 퐁텐의 이야기 가운데 닭과 여우의 이야기는 매우 짧지만 자타카에서 변형 없이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그린 자타카는 여러 동물 이야기로 나타나는데, 한 번은 닭으로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를 그렸다. ‘꾸꾸따 자타카kukut.a ja-taka’ 가 그것이다. 가끔씩 우리도 닭을 보고 ‘꼬꼬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인도사람들도 옛날엔 닭을 그렇게 불렀다. 옛 인도말로(산스크리트어로) 닭은 ‘꾸꾸따kukut.a’이다. ‘꾸꾸따 자타카’는 이렇게 그리고 있다. 
  
지혜롭고 성숙한 수탉은 매일 여우(또는 고양이)에게 잡혀 먹히는 자신들의 종족을 지킬 요량으로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터였다. 암여우는 그 수탉 때문에 닭들이 잘 잡히지 않는 것을 보고 수탉을 꾀여 잡아먹기 위해 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유혹한다.

“당신은 정말 늘씬한 날개를 가졌어요. 고상한 벼슬도요. 제가 당신을 드높게 섬길 테니 저를 부인으로 맞아주시면 안 될까요. 어서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저와 함께 걱정 없이 쾌락을 즐겨요.”

“여우님, 당신은 네 발을 가졌고, 나는 두 발을 가졌답니다. 그러니 다른 동물을 유혹해보세요. 짐승과 새는 하나가 될 수 없어요. 당신은 아름다우니 다른데 가서 매력을 뽐내보세요.”

여우는 수탉을 잡아먹기 위해 거듭 유혹했지만, 수탉은 목소리를 고쳐 냉정하게 대답했다.

“여우야, 넌 내 가족들의 피를 그동안 많이 들이켰잖니. 잔인하고 인정사정없이 그들을 죽였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남편으로 ‘드높게 섬기겠다.’고?” 

이 말을 듣고 여우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닭을 지나쳐 사라졌다.

이 대화는 수탉의 지혜로움을 그리고 있으면서 동시에 서로 본성이 다른 두 인간의 결합을 경계하는 글이다. 물론 이 수탉은 전생의 석가모니였다. 

비록 매우 짧지만 이 이야기는 매우 오래전 인도사람들의 입을 통해 거듭 회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캘커타 박물관에 있는 바르후트Bharhut 탑의 난간에 이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탑의 역사로 보아, 최소한 기원전 1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