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따뜻한 지혜를 품은 성자 사리불

[우리가 미처 몰랐던 10대 제자 이야기]

2018-01-29     이미령

지혜는 명쾌해서 이치를 잘 분별합니다. 예리해서 무엇이든 다 뚫습니다. 힘이 세서 그릇되고 사악한 것을 가차 없이 쳐부숩니다. 그런 지혜를 갖춘 사람으로 으뜸가는 이가 사리불 존자입니다. 부처님은 그를 가리켜 지혜제일이요, 법의 장수라고까지 칭송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승경전에서는 사리불의 지혜를 곱게 봐주지 않습니다. 편협하고 옹색하고 불완전한 지혜로 깎아내립니다. 저 유명한 『유마경』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기서 사리불의 지혜는 소승적인 지혜로 규정되고, 제발 그 품을 넓히라며 유마 거사에게서 사정없이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초기경전을 음미해보면 이건 좀 억울하다 싶습니다. 애석하게도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과의 인연을 마칩니다. 사리불의 사미는 스승의 다비를 마친 뒤 그 유해를 발우에 담아 부처님께 보여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덧없기 짝이 없는지라 부처님은 담담하게 사리불의 발우를 들여다봅니다. 자신의 발우에 담긴 자신의 사리라…. 그 담담한 부처님의 눈길 속에 허전함이 슬며시 배어 나옵니다. 훗날 ‘세상이 텅 빈 것만 같다.’는 속마음도 부처님은 비치십니다. 그만큼 사리불 존자를 향한 부처님의 신망은 두터웠습니다.
그의 지혜가 소승적이었다면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리 없습니다. 초기경전을 펼치면 사리불 존자의 자취를 참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면 그 지혜에 압도당하기 이전에 마음이 먼저 따뜻해집니다. 그 예리하고 명석한 지혜는 분명 인간의 온기를 담고 있습니다. 

 

화엄사 영산회상괘불탱(1653년, 국보 제301호) 부분. 부처님 좌우로 아난과 가섭 등 10대 제자가 있다. 화엄사 제공

|    진리와 스승을 향한 행복한 섬김

“소문 들었어요? 아, 글쎄 사리불 존자께서 ….”

“나도 들었어요. 동서남북 방향에 대고 절을 하신다면서요? 세상에나…! 아니, 존자께서는 아라한 아니신가! 어찌 그런 모습을 보이시는 걸까요?”

기원정사가 술렁거립니다. 밤마다 보이는 사리불 존자의 행동 때문입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존자는 가만히 이곳저곳을 응시한 뒤에 어떤 특정한 방향을 향해 공손히 합장하고 그 방향에 머리를 두고 누웠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동서남북상하 여섯 방향에는 우리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이 존재하고 있어서 그 방향에 절을 하며 복을 비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목욕재계하고 사방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행복은 방향의 신에게 빈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선업을 지어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이 이야기는 『육방예경』에서도 자세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밤마다 어떤 특정한 방향을 찾아 그쪽에 합장하고 절을 하기 때문입니다. 

소문을 들은 부처님은 사리불 존자를 불렀습니다.

“그대에게 이런 소문이 돌고 있소. 사실이오?”

사리불 존자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게는 진리를 일깨워준 부처님이 가장 큰 은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연을 맺어준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앗사지 장로입니다. 오래전 제가 다른 사상가의 제자로 지낼 때 아침 탁발에 나선 그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아라한의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밤마다 앗사지 장로가 계신 곳을 가늠하여 그분께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이 계신 곳으로 다리를 뻗을 수 없어 머리를 그 방향으로 두고 잠을 청하는 것입니다.”

앗사지는 부처님 최초의 다섯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앗사지는 일찍 아라한이 되었고, 사리불은 부처님을 만난 지 보름 만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아라한의 경지로 따지자면 두 사람의 지혜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초기경전에는 앗사지보다 사리불의 지혜를 더 많이 언급하며, 지혜에 관한한 사리불을 따를 자가 없다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도 인정한 최고의 지혜로운 사리불이건만 그는 자신에게 법의 인연을 맺어준 앗사지를 향해 끝없는 감사의 마음을 품고 지내고 있습니다. 마음만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예를 표하기까지 합니다. 깨달았으면 그것으로 끝일 테고, 자신이 섬기거나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구부릴 더 높은 이는 없을 텐데 사리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라한인 사리불은 진리 앞에서 자신을 낮췄습니다. 그리고 그런 진리를 깨닫게 해준 부처님을 향해, 나아가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어준 앗사지 장로를 향해 허리를 굽혔습니다. 그리고 행복해했습니다. 그에게는 온통 감사하고 행복한 인연뿐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행복한 표정으로 길을 가는 사리불 존자를 보고 어떤 외도는 이렇게까지 조롱합니다.

“아직도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오?”

하지만 사리불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미 소의 젖이 달콤하고 영양이 풍부하면 송아지는 그 젖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승의 가르침은 달콤하고 유익한 젖과 같아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그래서 그 가르침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존중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사리불 존자입니다. 그분의 지혜는 그래서 한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    도반을 향한 따뜻한 우정

사리불 존자의 마음이 오로지 저 높은 곳에 자리한 진리와 스승만을 향하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수행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에게는 도타운 우정으로 전해졌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부루나 존자를 찬탄하셨습니다.

“스스로도 욕심이 없고, 동료수행자들에게 욕심이 없는 것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도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동료수행자들에게도 그것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도 조용히 지내며, 동료수행자들에게도 그것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도 정진하고 동료수행자들에게도 정진할 것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도 해탈하고 동료수행자들에게도 해탈을 이야기하는 자가 바로 부루나 존자이다.”

사리불은 부처님 곁에서 부루나 존자를 찬탄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당시 사리불은 부루나 존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서 이토록 찬탄하시니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느 날, 부루나 존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난 뒤에 그날 저녁 머물 숲으로 향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사리불 존자가 찾아갔습니다. 사리불은 부루나를 만나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한 뒤에 그에게 묻습니다.

“도반이시여, 그대는 세존 아래에서 무엇을 위해 깨끗한 수행을 하십니까?”

부루나는 자신이 세존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을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위없는 깨달음을 향해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는 부루나의 대답은 솔직하고 진지했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가만히 부루나 존자의 대답에 귀를 기울인 뒤에 짐짓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네, 내 이름은 부루나입니다. 도반들은 저를 그렇게 부릅니다.”

부루나 존자의 대답을 들은 사리불 존자는 크게 기뻐하며 말합니다.

“과연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그대로입니다. 존자처럼 훌륭한 분이라면 도반들이 머리 위에 받들고 다닐 만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반들에게 커다란 이득이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존자와 같은 분을 만날 수 있고 이렇게 공경할 수 있게 되어 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자신을 이토록 칭송하는 이가 대체 누구일지 궁금해진 부루나 존자가 물었습니다.

“존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도반들은 존자를 어떻게 부릅니까?”

그때야 사리불 존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그 이름을 들은 부루나 존자의 황송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만일 제가 존자께서 사리불님인 줄 알았더라면 어찌 아까처럼 대답했겠습니까? 사리불 존자와 같은 분을 만날 수 있고 이렇게 공경할 수 있게 되어 저 역시도 참으로 행복합니다.”

같은 스승을 모시고 진리의 한길을 걸어가는 수행자로서,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의 존재를 확인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을까요? 사리불의 지혜에는 이렇게 행복한 우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