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방랑기] 경북 영주 부석사

단풍 지던 날, 조사전에 절하고 무이상無二相을 묻다

2018-01-02     이광이
사진:최배문

‘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법성法性은 원융圓融하여 무이상無二相이다. 무슨 뜻일까? 법은, 성은 무엇이고, 원융은 무엇이고, 무이상은 무엇인가? 칠언절구 하나로도 어렵고 쪼개질수록 더 어렵다.


이 비 그치면 겨울이다. 낮부터 내리던 비가 저녁공양 마치고 더 굵어졌다. 바람도 세차게 분다. 문고리가 덜커덩거리는 산사의 밤, 예불 끝난 저녁 7시가 오밤중이다. 저 바람에 몇 잎 안남은 것, 마저 지겠구나. 일엽지추一葉知秋, 잎이 하나 지는 것으로 가을이 오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겨울이 문지방을 흔든다. 의상 스님은 조사당에 계시는가, 부석사 마당에는 아무도 없다. 젖은 낙엽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만 처연하다. 겨울은 산사에 먼저 도착하였고, 이제 들로 내려갈 것이다. 계절이 승僧에서 속俗으로 간다. 

사진:최배문

661년 그 동굴에서, 썩은 물 한바가지 나눠 마시고, 한 사람은 서라벌로 돌아가고, 한 사람은  당唐으로 떠나갔던 그 운명적 갈림길이, 우리 불교의 큰 획을 긋는다.

하나는 선禪의 길이고, 하나는 교敎의 길이었거나, 나아가는 것도 한판의 바둑이고, 회향하는 것도 한세상이다. 어쨌거나 의상 스님은 그길로 당 화엄종의 이조二祖 지엄 스님 문하에 들어 교학을 크게 깨치고, 훗날 해동화엄의 초조初祖가 된다. 이때(668) 쓴 불후의 명저가 ‘화엄일승법계도’다. 의상 스님이 원래는 『대승장』 10권을 지었는데, 스승으로부터 ‘의리義理는 아름다우나 문사文詞가 아직 옹색하다.’는 지적을 듣고 저술을 불태우기에 이른다.

여기서 타지 않은 210자를 얻어, 7언 30구로 게송을 지은 것이 「법성게」이고, 글자를 사각 도형 안에 그림처럼 배열한 것이 ‘화엄일승법계도’다. 광대무변한 화엄의 세계를 단 210자로 압축하여 화엄경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 「법성게」의 첫머리가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다. 일연 스님은 “온 솥의 국 맛을 아는데 고기 한 점이면 족하다.”고 『삼국유사』에 썼다. 법성게에 관한 이 멋진 평은 ‘상정일련嘗鼎一臠’,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다.

‘산속의 중이 갑자甲子를 알지 못하나, 낙엽 하나로 가을이 왔음을 알고, 고기 한 점으로 솥 안의 국 맛을 알고, 깃털 하나로 마르고 습한 기운을 알고,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에 추위가 닥쳐오고 있음을 안다.’ 스승 지엄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성게」의 9번째 시구,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뜻을 물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것이다. 티끌 하나에 시방세계, 무량의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은 고기 한 점으로 온 솥의 국 맛을 아는 것과 같은 구조다.

씨앗 하나가 나무 한 그루를 품고 있는 것 하며,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보면 그것이 자기 유사성을 갖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 나무이며, 산봉우리 하나가 같은 구조로 무한히 순환하는 것이 산맥이며, 구불구불 같은 모양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해안이며, 우주만물이 그러하다는 이른바 ‘프랙탈fractal 구조’의 비밀을 이미 1,400년 전에 간파해버렸으니. ‘일미진중함시방’은 부분으로 전체를 꿰뚫은 경이로운 통찰이다. 

사진:최배문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 스님은 당이 신라를 칠 것이라는 특급정보를 갖고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고, 귀국 후에 낙산사를 창건한 데 이어 676년(문무왕16) 왕명에 따라 삼국의 요충지였던 죽령 인근에 절을 하나 창건하였으니, 그것이 오늘의 영주 부석사浮石寺다.

의상은 여기서 화엄사상을 널리 전파하면서 숱한 제자와 후학들을 길러냈으며 702년 78세의 나이로 입적하기까지 부석사를 떠나지 않았다. 들어가는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 나가는 일주문에는 ‘해동화엄종찰’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진:최배문

긴 겨울밤, 비는 언제 그쳤을까? 새벽예불 끝나고, 아침공양을 마쳐도 희끄무레한 하늘엔 별이 보인다. 무량수전 위로 북두칠성이 총총히 빛나고 있다. 새벽에 일주문 아래까지 내려가 느릿느릿 되짚어 올라오는 것이 즐겁다.

늘씬한 당간지주 비켜 서 있는 아름다운 길, 은행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양버즘나무들이 길 양쪽에 곡선을 그리며 늘어서 있다. 부석사 가람배치를 구품만다라에 비견하면서 셋으로 나눠 얘기할 때,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난 여기까지를 ‘하품’으로 본다. 단단하고 너른 축대가 펼쳐진 대석단 사이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단아한 삼층석탑 한 쌍과 마주하게 된다. 동이 트고 빛이 들어오자 흑백의 실루엣만 비치던 사물들이 비로소 색을 갖기 시작한다.

하늘도 푸른색을 띄고, 검은 지붕 위로 붉은 산벚나무의 잎들, 지장전 앞 늙은 은행나무가 쏟아놓은 노란 풀밭들, 비로소 선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더 오르면 범종루다. 정면 팔작지붕의 추녀선이 하늘을 날아갈 듯 날렵하게 뻗어있고, 아래 통로를 지나 올라서면 뒷면은 맞배지붕으로 단정하게 마감되어 있다. 여기까지를 ‘중품’으로 본다. 그다음이 안양문이다. ‘안양安養’은 극락을 뜻하는 말이니, 극락의 입구인 셈이다. 계단을 몇 개 오르면 석등이 보이고 그 사이로 노란 벽과 격자문, 배흘림기둥들, 추녀를 받치고 있는 활주가 드러나는 무량수전이다.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온 목조건축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건물…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을 얘기하는 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직이 들려주는 최순우 선생의 이야기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안양루 계단의 끝까지를 ‘상품’으로 보고, 무량수전 영역은 극락이 되는 셈이다. 태백산을 등지고 멀리 소백산을 바라보는 무량수전의 눈길, 그 눈길을 따라 포말이 부서지며 밀려오는 파도처럼, 겹겹이 첩첩이 늘어선 산들이 점점 확연하게 다가오는 풍경이 가히 이를 데 없는 장관이다.  

무량수전 오른편, 삼층석탑을 비껴서 산길을 오른다. 두 모퉁이를 돌아 나무계단이 나오고 왼쪽으로 휘어지는 그 끝에 처마가 살짝 드러나 보이는, 조사전祖師殿 입구다. 조사전은 늘 절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극락을 넘어 우주공간으로 날아 가버린 초월의 영역으로 봐서 그럴 것이다.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룬 계단을 오르면 단아하고 정갈한 모습의 맞배지붕, 조사전(국보 19호)이 있다. 동쪽 창 옆에, 의상 스님이 꽂은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났다는 선비화仙扉花가 푸른 잎을 내밀고 있다. 조사당 안에는 의상 스님이 모셔져 있고, 일대기를 그린 탱화가 걸려 있다. 

법성게는 ‘법성원융무이상’으로 시작해서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로 끝난다. 210자의 첫 자가 ‘법法’이고, 끝 자가 ‘불佛’이다. 나는 이 두 글자를 이어주는 것이 ‘무이상無二相’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요체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무주상’과 ‘무이상’은 같은 말이다. 뭔가 긍휼하여 베풂의 마음이 생겼다면, 그 마음은 둘이다. 베풀기 이전의 마음과 베푼 이후의 마음. 베푼 이후에 내가 그에게 베풀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상相’이다. 이 상을 계속 갖고 있으면 보시라는 것을 해봤자 사실은 나중에 갚으라고 ‘외상’을 적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무주상은 그 기억을 지우라는 것이다. 무이상은 베풀기 이전의 마음과 베푼 이후의 마음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뭔가 베풀었어도, 베풀기 이전의 마음 상태로 어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중中’이다. 중으로 돌아가야 하는 질서와 진리가 ‘법法’이고, 중으로 돌아가 체화된 상태가 ‘불佛’이다. 의상 스님이 알려준 법성게의 비밀의 열쇳말은 바로 ‘무이상’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사진:최배문


시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법성원융무이상’과 ‘구래부동명위불’에 대한 작가 백승권의 풀이를 옮긴다. 
‘이 세상은 언뜻 보면 따로따로 나누어져 있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서로 이어져 있어요. 언뜻 보면 여러 개의 모습이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한 가지 모습이지요.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았던 한 모습, 사람과 들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벌레와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땅과 물과 해와 달과 별이 바로 부처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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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끝으로 지난 2년간의 연재를 마칩니다. 한 달에 한 번 절에 머무르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광이

이번호를 끝으로 ‘이광이의 절집방랑기’를 마칩니다. 절집에 감춰져있던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를 이광이 선생님만의 미려한 언어로 드러내주셨습니다. 이광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광이
전남 해남에서 1963년에 태어났다. 조선대, 서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신문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산과 절이 좋아 늘 돌아다녔다. 한때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면서 불교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됐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을 하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