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因果應報)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15     관리자


불교 에서는 모든 생(生)을 통하여 작용하는 보편타당한 인과응보의 법칙을 매우 중요시 한다. 그렇다면 선행과 악행에 대해 얼마만큼 어떤 행태로 인과응보가 따르는가 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 인간이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은 못 되지만 다만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자기의 업보가 반드시 자기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도 미친다는 것이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基意)
시제불교(是諸佛敎)라 했다.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고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와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마음이 삼독심으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이다.
삼독심(三毒心) 즉 탐(貪)·진(瞋)·치(痴)란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말한다. 이러한 삼독심으로 인간들의 마음이 뒤덮혀 있기 때문에 진실을 볼 줄 아는 능력, 속을 들여다 볼 줄 아는 혜안(慧眼)이 상실되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슬프고 불행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서로 잘 살려고 갖은 악행을 부끄러움 없이 저지르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무상한 인간의 삶 가운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숨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마음을 깨닫는 것은 우연히 별을 보거나 닭우는 소리를 듣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꾸준한 정진의 결과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진이란 무엇인가. 정진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노력이다.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 본래의 마음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1월 15일 오전 10시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 두 남매가 서울 남대문 앞 도로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교통사고 현장의 목격자를 찾고 있어 주위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일이 있었다.
이들 남매는 극장기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다가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듣고 달려 갔으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한참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시간에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사고가 났는데도 목격자가 없어 뺑소니 차량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이 어린 남매의 아버지를 사망케 하고 달아난 사람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자기의 자식이나 아니면 후손에게도 거기에 따른 무서운 벌이 내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루 빨리 그 범인은 자수하여 어린 남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지은 업, 즉 악업이건 선업이건 그 업은 천 마리의 어미소를 풀어 놓아도 송아지는 자기 어미를 찾듯이 세세생생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말고 우리 모두 선업을 짓고 살아가도록 하자. 업보란 피할 수 없는 인과응보의 법칙인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명심행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