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경영] 지도자의 품성

지혜·자비·용기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2018-01-02     이언오

|    이순신의 백의종군과 명량해전 420주년  

금년은 이순신이 백의종군 길을 걷고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지 420년 되는 해이다. 당시 조정은 당파로 갈라지고 백성은 신분으로 찢어져 외적의 침공에 속수무책이었다.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어서 왜 수군의 서해 진출을 막고 나라를 구했다. 하지만 군주와 신하와 백성이 무지·무능해서 세월이 흘러 식민지로 전락했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후 다시 내우외환의 난국에 처해있다. 

이순신은 23전 23승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철저한 준비와 신중한 행보 등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움에 나섰다. 천시天時 판단과 지리 이용, 기동 전개와 전력 집중은 해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뛰어났다. 병법서를 깊이 읽고 스스로 궁리했으며 현장에 적용해 봄으로써 제승방략制勝方略, 이기는 전략을 구상했다. 생각·말의 지식이 아니라 행동·성과로 입증되는 실천적 지혜를 달관했다.

전쟁의 고통은 참불인견慘不人見, 참혹해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전사, 병사, 아사를 합쳐 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 사람의 귀와 코 12만 개가 베어져 교토의 큰 무덤이 되었다. 이순신은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하겠다는 한마음으로 전쟁에 임했다. 가족과 부하를 극진히 위했고 신분 상관없이 어려운 이들을 배려했다. 자비심으로 본인 고통과 적군 살생의 잔혹함을 견뎌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 길에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전멸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겨우 수습한 13척을 갖고 명량에서 왜선 133척을 맞았다. 전날에 부하들에게 “필사즉생必死卽生, 죽기를 각오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대장선이 홀로 1시간 이상 분전하는 동안 겁쟁이 부하들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순신의 용기가 천시·지리를 움직여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이 가는 곳마다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다들 살았다고 안심했으며 장정들은 가족에게 “아선종공我先從公, 나는 장군을 따라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믿어서 희망을 가졌고 따름으로써 힘을 실어주었다. 이순신은 명량해전 다음해 노량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순신이 수결로 썼던 일심一心은 지극 정성과 구국 일념을 대변한다. 영웅의 뜻을 잇는 사람들이 없어 같은 외적에게 결국 나라를 빼앗겼다. 

지금 외세에 휘둘리고 동족끼리 적대하며 국내는 사분오열이다. 지도자들이 권력·부·명예를 탐하며 바른 가치를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의 자리 집착도 지탄받아 마땅한데 자식·측근에게 대물림까지 하려 든다. 역사에 영웅으로 남거나 죄인이 되는 것은 자신이 하기에 달려있다. 지도자는 난세에 위기를 방지하고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스님들이 전투에 참여했고 사찰 종들은 녹여져 화포가 되었다.

『법화경』 깃발에 기독교 선교사를 대동했던 왜적은 너무나 흉포했다. 자비의 불교, 수행의 승려였지만 살생을 회피하지 않았다. 공을 세우고는 천민으로 남아 불법을 이어갔다. 오직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불교계는 그때만큼 중생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지도자로서 혹은 지도자를 따라서 중생을 불국토로 이끌고 있는가. 

 

|    지도자는 지혜·자비·용기로 중생을 구제

지도자 자리에는 중생 고통이 모이고 증폭된다. 마지막 한 중생의 고통까지 치유하는 일은 웬만한 원력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 본분에 소홀하면서 다들 지도자 자리에 목을 매단다. 나쁜 지도자는 크고 오래가는 악업의 흔적을 남긴다. 불교 계율은 개인적 잘못보다 세상에 고통 주는 것에 훨씬 엄격하다. 술을 마시면 작은 죄, 팔면 큰 죄를 짓는 식이다. 나라를 어지럽힌 오국誤國 지도자는 최악의 지옥에 떨어진다. 

중생은 삼독에 빠져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비겁하다. 지혜가 어리석음을, 자비가 이기심을, 용기가 비겁함을 해독시킨다. 지도자는 이들 덕목을 갖추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삼독에 빠지기는 쉽고 벗어나기는 어렵다. 소수 지도자가 대다수 중생을 깨우치고 이끌 수밖에 없다. 삼독 중생에 둘러싸인 지도자는 외로움과 어려움이 불가피하다. 성과는 후세에 드러나기도 하나 많은 경우 그냥 묻힌다. 보살의 길이기에 스스로 선택해 걸어갈 뿐이다. 

불교는 깨닫고 체득한 지혜라야 고통을 치유한다고 본다. 지도자가 마음 닦는 수행과 현실 부대끼는 만행에 힘써야 하는 이유이다. 중생 고통이 다양하고 뿌리가 깊어서 지도자의 수행·만행도 끝이 없다. 최근 난국은 지도자들이 편견에 집착하거나 생각이 없고 현자·현장과 괴리되어 초래되었다. 마음을 참구하고 현자들에게 귀 기울이며 현장을 찾아야만 한다. 마음을 비워 복잡한 문제를 바라보고 화쟁和諍으로 첨예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불교는 자비의 행원으로 중생 고통에 응하라고 가르친다. 지도자의 자비 실천이 자리와 이타를 이로움으로 연결시킨다. 물질 방편으로 고통을 줄여주고 깨달음을 통해 진정한 행복에 들게 한다. 중생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구제하는 일을 의무로 여긴다. 중생 눈에는 지도자가 자원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지도자는 누가 시켜서 혹은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한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말씀하셨다. 수행의 용맹정진을 넘어 세상 고통에 맞서는 용기를 내라고 당부하신 듯하다. 지도자들이 현학과 안위에 젖어있는 것은 정진의 의미를 잘못 받아들이는 탓이다. 자신을 법화경 화택의 아이로 착각하고, 고통의 화마를 온기로 느껴서이다. 생각의 용기로 착각을 깨고, 행동의 용기로 화마에서 벗어나야겠다. 먼저 깨달아 솔선하며 마지막까지 고통 받는 중생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불교의 정체는 출가·재가 지도자들이 못나고 게을러서 야기된 일이다. 신도 숫자 감소는 결과, 사부대중의 행원 약화가 증상, 중생 고통을 제대로 치유해주지 못하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지장보살처럼 지도자가 지옥에 남아 중생 고통 치유에 심신을 바치겠다고 서원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물질을 수단 삼고 중생 위에 군림해서는 곤란하다. 수레의 소가 되어 중생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끌어야 한다.

|    승僧은 승속에 무애한 보살이어야

사람은 각자 지도자 씨앗을 갖고 태어난다. 중생에게 불성과 불종이 있는 이치이다. 본인 노력과 스승 지도의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일어나야 씨앗이 큰 나무로 자란다. 제자 스스로 노력하되 스승이 결정적 순간에 틀을 깨주고 도약시켜야 한다. 참선의 활달한 기풍을 지도자 육성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참선이 지향하는 지혜·자비·용기의 마음은 세속 지도자의 인품·역량과 연결된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어 불법의 기준, 승가의 구조를 만드셨다. 이순신은 삶의 기준에서 모범적이었고, 수군 조직 등 뛰어난 구조를 입증했다. 후세가 그 기준과 구조를 따르고 유지·혁신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 지도자는 바른 기준에 솔선하고 바른 구조를 만들어나갈 책임이 있다. 그래야 중생들이 기준에서 중심을 찾고 구조 속에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배우고 따르는 기준이 되는 지도자상 정립이 시급하다. 불상은 신심의 대상으로 유용하나 지도자의 상相을 넘어서지 못한다. 출가자는 지도자의 체體를 추구하지만 세속과 괴리되어 용用에서 한계가 있다. 체·상·용을 겸비한 보살을 세속이 따라야 할 지도자로 삼아야겠다. 대표적 보살로 교학과 실천의 정점에 도달한 원효를 들 수 있다. 원효는 국경, 신분, 승속을 화쟁으로 넘나들면서 저잣거리에서 만행을 펼쳤다. 외세 충돌과 내부 갈등이 심각한 현 상황이 요구하는 큰 바위 얼굴이라 하겠다.   

개혁해야 하는 구조로 기업·정부의 지도자 승계 방식이 있다. 승가의 지도자 선발, 특히 의발전수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가 순간 세속의 학식·신분이 삭제되고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부모에게 물려받아서, 조직에 속해있다며,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누리는 특권들을 최소화해야겠다. 승가는 도력이 지도자 자격의 전부, 스승이 재목을 알아보고 지명을 한다. 경륜 있고 사심 없는 원로들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거, 자격시험, 승진평가, 청문회 등은 실패를 줄이기 위한 보완책으로 사용하면 된다. 

역사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피뢰침 꼭대기에 전기가 집중되듯이, 역사에는 많은 사건들이 극히 짧은 순간에 모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부처님 탄생 즈음의 인도, 이순신이 활약했던 임진왜란, 내우외환이 정점으로 치닫는 지금이 아닐까. 난세에 영웅이 나며, 시대가 지도자 출현의 조건을 만든다. 출가 수행자를 떠받드는 삼귀의부터 재해석해야겠다. 스님 승僧과 수레 승乘은 발음이 같다. 스님을 중생을 이끄는 수레로 보도록 하자. 삼보의 승僧은 승속에 무애한 큰 수레, 보살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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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를 끝으로 ‘이언오의 팔정도경영’ 연재를 마칩니다. ‘팔정도경영’을 통해 바른 경영과 바른 삶의 방향을 짚어주시며, 항상 새로운 생각의 물꼬를 틀어주신 이언오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