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간의 크기

삶의 여성학

2007-09-15     관리자


요즈음 사람들 사이에서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인 모양이다. 얼마전 일반인 강의를 마치고 질문시간에 간 큰 남자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내용을 몰랐던 터라 필자는 간 큰 남자들이 큰 일 터뜨리는 것 아니냐고 동문서답을 했다.
그후 학생과 친구 등 여러 사람을 통해서 세대별로 '간 큰 남자 시리즈'를 전해 들었는데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모두 웃는 것 같았다. 남편 모시고 사는데 진력이 난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지금까지 말못하던 사정을 뒤집어 놓은 이야기가 내심 속시원한 구석이 있어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 집안에서 꼼짝않고 들어앉아 있던 여자들이 바깥출입이 잦은 변화하는 세태가 웬지 불안한 남자들에겐 여자들을 희화한 모습이 재미있어 뒤에서 웃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간 큰 남자 시리즈는 참새이야기 처럼 단순하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의 재담이 아니다. 이것은 아이들 표현을 빌리면 '연극하고 있다'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내용인즉 지금까지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고 얌전하던 마누라가 어느날 갑자기 드세져서 남편이 그 밑에서 눈치보며 설설긴다는 이야기를 꾸며대고 있는 것들이 내용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천지가 개벽되어 부부간의 권력 판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과거에 남편에게 찍소리 못하고 주눅들어 살던 여자들이 감히 고개를 쳐들고 기세 등등한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항상 아들과 남편으로서 높은 지위를 누려온 남자들이 평소에 호령해 마지 않던 아내에게 설설기며 '죽는 시늉'을 보인다는 코미디가 바로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아닌가 한다. 간 큰 남자 시리즈는 실은 주눅든 남자를 보이자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간이 크면 이렇게 우스운 세상이 된다는 암시를 다분히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남자는 간이 커야 남자답고 쓸모가 있는 사람이며 간이 작은 사람도 여자보다 항상 간이 큰 체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자는 자고로 간이 콩알만 해서 겁이 많은 듯이 보여야 여자답다고 생각해 왔다. 마당발에 간 큰 여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 왔고 여자는 꿈에도 간 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딸들이 여자의 본분을 못 지키고 간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귀가 시간을 어기는 딸도 간 큰 딸로 찍히고 눈 똑바로 뜨고 말대꾸하는 딸도 간 큰 딸로 치부한다. 남편이 어디를 출타하든 공손히 인사나 잘 하면 되는데 '오늘 어디에 가시느냐'고 감히 따지고 묻는 여자는 아내로서 부덕을 못 갖추었거나 간이커서 큰일날 여자로 경계하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남편은 하늘인데 오밤중에 무슨 짓을 하고 들어오든지 밥상을 대령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고 이런 것을 남편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호령하는 남편들도 있다. '사랑 받는 아내'가 되는 것이 모든 여성의 꿈이 되고 이상적인 주부의 모습이 되는 것처럼 매스컴에서 떠들고 있는 세상에서 '간 큰 남자 시리즈'는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한 편의 코미디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상담소에서 필자가 만난 여성들의 남편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선 간 큰 남편들이란 생각을 한다. 이들은 자신과 함께 사는 아내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면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꾸며대고 자신은 술과 외도로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아내가 항상 자기를 기다려 주고 따뜻하게 맞이해 줄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두 달 가량 상담을 했던 성국이 엄마는 자신의 남편을 '간 뗑이가 부운 인사'라고 욕을 하곤 했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남편은 남의 돈을 쓰고 돈 사고를 내고 혼인빙자 간음으로 고소를 당하는가 하면 항상 술에 취한 알콜중독자였다. 자신의 잘못으로 가정이 깨어지고 아이들과 아내의 삶이 깨어질 위기에 처해 있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네탓'만 고집하는 구제받지 못할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대개 남자는 또는 남편은 하늘인데 무슨 짓을해도 '남편'이란 이름으로 다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남편 우월병이 골수에 든 사람이다.
과거 우리 할머니들은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남편 '밑에서' 모든 것을 참고 살면서 대신 가슴속에 한을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그 한을 늙으면 보자고 벼르는 심정으로 달래며 살았다. 한은 때로 화병으로, 속앓이 병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였다. 그리고 노년의 영감 증오병을 앓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쓸쓸한 노년을 황량하게 사는 서글픈 현상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아버지 어머니의 애초부터 어긋난 인생을 바라보면서 자식들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인과응보라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고 한다. 노년의 외로움을 서로 위로하며 사는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을 이분들은 젊은 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와 관계가 있다.
간이 큰 남자와 제멋대로인 폭군형 남편과 독불장군으로 혼자 이기적으로 살아온 전제적인 아버지들이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모르겠다. 옛날 할머니들이 흔히 할아버지를 기피하고 미워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짓고 받는 이치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앞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간 큰 남자'이야기는 그동안 간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서 숨조차 잘 쉴 수 없었던 여자들이 쪼그라든 간을 회복하고 제대로 건강하게 숨을 쉬고 싶어하는 소망을 재미로 삼아 왜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는 옛말대로 간 큰 남자 운운하며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은 제 발이 저린 사람들이 아닐까. 재미있으라고 한 이야기에 사설이 길어지는 이유는 그 재미 속에 여자가 살고 있는 현실을 비틀어 놓는 악의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주눅들게 하는 모습이나 또 누가 누구 앞에서 설설기는 모습은 이제는 지겹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그런 모습은 별로 아름다운 모습도, 사람다운 모습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처불상을 믿고 있는 불자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모두 제 모습이 아닌 것으로 비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불공의 대상으로 화하는 세상이 제대로 된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삼풍 참사를 가슴아프게 생각하면서 간 큰 사람들의 간이 언제쯤이면 제자리로 돌아가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인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명심행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