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견한 관세음보살

나의 인연이야기

2007-09-15     관리자


나에게 얽힌 불법과의 인연을 되돌아 볼 때,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일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감이 좋을 것 같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집에서 하찮은 일로 화를 낸 일이 있는데,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이 들어 화는 커가기만 했다. 물론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생각이 브레이크의 기능을 발휘하기보다는 거꾸로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어 진심(瞋心)의 불꽃은 더욱 치열하게 타오르는 것이었다.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나는, 날이 밝자마자 집을 나섰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어디로 갈 것인가. 갈 데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디론가 가야 할 것만은 확실했다. 잠시도 이대로는 있을 수 없을 바에야, 어찌되었건 가고 볼일이 아니겠는가.
걷고 있자니 몇해 전에 개통된 고속도로 생각이 났다. '옳지, 이왕이면 그것이나 한번 달려보자.'
이리하여 터미널까지 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번에는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나를 잠시 망설이게 했다. 어차피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닌 바에야 어디건 무슨 상관이랴만, 이런 꼴로는 아는 사람과 맞닥뜨리는 것이 싫어 가본 적이 없는 전주 표를 끊었다.
전주에는 두 시쯤에 도착했다. 처음 타본 고속버스 속에서도 화만 내고 있던 나에게는, 전주라고 신통한 것이 되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거리를 좀 걷다가 눈에 띄는 대로 다방 몇 곳을 들어가 본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시설도 좋고 한적하기도 한 그 다방들도, 나에게는 가시방석 이상의 것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십분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오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쉬어볼까하고 어느 여관에 들어섰지만, 그렇다고 쉽게 잠이 올 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곧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어디로 가나? 무수히 되뇌이던 이런 생각을 다시 하면서 서 있자니 택시가 눈에 띄기에 올라타고는 내장산으로 갔고, 거기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에는 백양사로 갔다.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결론만 말하자면, 진심의 불꽃에 휩싸여 있는 나에게는 절도 산천도 하등 흥미의 대상은 될 수 없어, 기실은 지옥의 몇 번지쯤을 전전하고 있은 셈이었다.
백양사 옆 여관 방 천장에는 꽤 큰 거미가 줄을 치고 있었다. 내장산도 백양산도 안주할 곳이 못 된다면 어찌해야 하나? 다음 문제는 기차가 통한다는 장성에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버스를 타기로 했던 것인데 이것이 관세음보살을 뵈올 기연이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아무데서나 손만 들면 서는 버스가 어느 마을에 정차했을 때였다. 멍청하니 차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나는, 차안을 향해 손을 흔들고 섰는 쉰 살쯤 돼보이는 한 여인이 시선에 들어오는 순간, "아, 관세음보살!"하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고, 지금껏 금시에 끊어질 듯 팽팽히 당겨져 있던 신경의 줄이 확 풀리면서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것은 분명히 관세음보살이셨다.
그렇다고 그 여인이 특별히 남다른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르기는커녕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햇볕에 검게 타고 주름이 파인 그런 얼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히 웃고 있던 그 여인은, 그 순간의 나에게는 분명한 관세음보살이었던 것이어서, 지옥의 불길로부터 이 나를 구해 주신 것이었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하는 중에 범부의 몸을 빌어서 몸을 나투심이 화신(化身)의 비밀임을 나는 이때에 알았다.
그러고보면 나는 70년이 넘는 생애를 통해 무수한 부처님과 무수한 보살을 친견했던 것이고, 그 가피에 의해 이만큼이나마 살아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서재에는 언젠가 석지현 스님이 부다가야에서 가지고 오신 보리수 잎의 액자가 걸려 있고, 현재훈 형이 녹야원에서 사다 주신 작은 불상도 놓여 있다. 나는 구하지 않았건만 부처님 쪽에서는 이 못난 나를 늘 지켜 주셨음을 어떻게 의심하겠는가.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명심행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