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스님들 석고 초상 만드는 이성도 교수

상相을 만들다 형形을 새기다

2017-11-28     김우진

가을로 넘어가는 비가 내리던 날. 청주 한국교원대학교 이성도(64) 교수를 만났다. “제 교수실이 조금 비좁습니다. 교수실을 옮기면서 책 정리를 많이 못 해서요. 지금까지 이래저래 쌓아둔 것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교수실 앞에는 다양한 모습의 조각품들이 복도 한쪽 가득했고, 내부에는 책과 자료들로 둘러싸여 한 사람씩 줄지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작품 활동을 위한 사료와 소묘 스케치북, 불교 서적에서 교육용 도서까지. 정년을 앞둔 교수의 방에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 물건들로 가득했다.

 

사진 : 최배문

|    깎고, 빚고, 새기다

이 교수는 지난 9월 열린 ‘용성문화제’에서 제1회 올해의 불교미술인상을 수상했다. 그가 매진해온 선사들의 초상 작품을 통해서다. 고대에서부터 근·현대까지 역사 속에서 기억되는 선사들의 초상을 연구하여 석고 초상을 만들었다. 도의 선사, 보조 국사, 서산 대사에서 서암 스님, 성철 스님, 광덕 스님 등 현재까지 100여 개의 선사 초상을 조각했다.

“남아있는 사료들을 조사하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사료를 조사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선사의 얼굴과 다른 모습들도 있고, 또 초상이 불확실한 선사들도 많아요. 유실된 자료들이 많아 조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초상이 확실한 선사는 바로 작업을 합니다. 자료가 불확실한 선사들은 그 특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만들어야 할 상相이 확실해지면, 흙으로 형形을 빚는다. 몇몇 중간 과정과 석고로 본을 뜨는 과정들을 거쳐 조각을 완성한다. 재미난 것은 이때 조각의 네거티브(음각)와 포지티브(양각)를 반대로 하여 만들 때도 있다. 양각으로 표현하는 일반적 조각의 모습을 음각으로 표현함에도 완성된 작품은 같게 보인다. 이 교수는 “일종의 착시처럼 빛을 이용하면 재미난 조각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고 한다.

“제 활동은 역설적이죠. 부처님께서 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일을 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까요.(웃음) 하지만 형태를 통해 허상과 실체를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보이는 것이 실재하는 것인가’는 물음도 생각하죠.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이용한 것도 형식적으로 그런 셈이죠.”

2000년대 초부터 시작한 선사들의 초상 작업은 최근 들어 유학자들의 얼굴 조형으로까지 이어졌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유명한 유학자들의 초상도 선사들의 초상을 만들 때처럼 사료를 찾아 조각하며 작품들을 준비하는 중이다.

 

|    “인연이라고 하죠.”
“어머니와 할머니가 불자였기에 자연스레 불교를 접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절에 간 것은 서너 번뿐이었죠. 흐릿한 기억뿐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마산불교학생회 활동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불교에 관심이 깊어지며 기초교리와 신행 생활을 시작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무엇인가 만드는 것에 재주가 많았다. 학창시절 내내 미술에 특기가 있었던 이성도 교수에게 고등학교 시절 미술대학을 가보라는 선생님의 권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예술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지금보다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남학생이 ‘조소’를 하는 것이 흔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그렇게 조소라는 전공을 완벽히 이해하기도 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 그는 다시 불교학생회를 만났다. 

“참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요? 그 당시에는 대학마다 불교학생회가 많았습니다. 대학교마다 또 교내 단과대마다 불교학생회가 따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였죠. 군 제대 후 어쩌다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불교학생회를 하면서 혹은 어떤 인연들로 성철 스님, 경봉 스님, 운허 스님 등 그 시대의 큰 스님들을 많이 친견했어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배우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정치나 사회적으로 혹독한 시간이어서 불교를 향한 대중의 마음이 지금과는 달랐어요. 출가하는 주변 친구, 선후배들도 제법 있었죠.”

이 교수는 불교라는 인연으로 활동하며 대학교 3학년 때 경주 남산의 마애불을 처음 보게 되었다. 조각가로서 필수적인 여러 교육을 받았지만, 서양미술에 집중하여 조형을 익혔던 당시 실기 전공자의 눈에 비친 전통의 불상 조각은 신비롭고 새로웠다. 그렇게 전공인 조소와 불교의 인연이 점차 짙어지며 불상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대학원 시절과 여러 해의 교사 생활 동안 그의 화두는 ‘한국성’이었다. 작품 발표나 미술교육연구를 지속하면서도 전통 불상에 대한 조형이 머릿속에 항상 있었다. 선, 색, 형, 공간, 재료 등 조형의 원리와 별개로 한국미술만의 특징이 녹아있는 불상을 생각했다. 

|    요즘 시대의 부처
이성도 교수는 답사를 통해 직접 바라보고 자료를 찾아 공부하며 전통을 해석해왔다. 오랜 시간 ‘한국성’에 대해 고민하며 전통적인 조각 연구와 미술교육연구를 계속해 온 그다. 연구와 함께 한 사람의 조각가로서 시대 미의식을 반영한 불상의 모습을 제작하는 것은 그의 오랜 화두다.

“외국의 불상 조각을 보면 발우를 들고 있는 부처상이나 전법 교화하며 걷는 모습을 새긴 불상들도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불상에는 움직이는 부처의 모습이 없습니다. 정적인 모습이 대부분이죠. 불단 위 성스러운 부처의 모습도 좋지만, 세상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하는 부처의 모습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이 교수는 사회적 문제나 이슈 등에 불교가 참여하는 모습을 구상하고 있다. 그의 스케치북에 간단히 그려져 있던 밑그림들은 중생의 등 뒤에서 포근히 감싸는 부처의 모습이거나 대중 앞에서 모범이 되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보인다. ‘삶의 향기가 배어나는 불상’, ‘깨달음의 모습을 보여줄 불상’을 제작하는 것이 이 교수의 목표다.

“우리 문화재를 보더라도 모두 그 시대에 맞게 불상을 조성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과거의 모습만 따라가고 있어요. 이 시대의 부처상이 있어야 합니다. 패션처럼 유행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에는 따라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