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그 여인을 막지 마라

2017-11-28     성재헌
부처님께 기도하는 여인 ⓒ불광미디어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죄로 끌려온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의 대략은 이렇다. 

예수께서 갈람산으로 가던 길에 성전에 들러 사람들에게 설교하던 중,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와 예수께 물었다. 

“선생이여, 이 여인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고 명하셨는데, 선생께서는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몸을 숙이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언가 끄적거릴 뿐, 말씀이 없으셨다. 사람들이 예수께 대답을 다그치자, 예수가 드디어 일어나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하나씩 빠져나가고 그 자리엔 오직 예수와 그 여인만 남았다.

긴 역사 속에서 여자는 신체적 능력의 차이와 사회제도의 제약으로 인해 늘 약자의 자리에 머물렀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간음이니, 치죄하려면 남자도 함께 데려왔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여자 혼자 조리돌림을 당했으니, 그 여인은 실로 부당한 제도에 희생된 ‘가련한 여인’이었다. 모세의 법률이라며 나름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그들의 법률은 해석도 적용도 편파적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용서와 자비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이다. 왜냐하면 자칫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악한 자들을 편드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초래될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고 당당히 일어나 말하였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보이셨으니, 예수께서는 대장부로 불리기에 마땅한 분이다. 가난하고 병든 자, 억울하고 의지할 곳 없는 자들 곁에 서는 행동을 보이셨으니, 예수께서는 진정 성인으로 존경받기에 마땅한 분이다. 

부처님도 그런 분이셨다. 그분이 성인으로 불리는 까닭은 보통 사람이면 도저히 하지 못했을 행동을 그분께서 보이셨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 억울하고 의지할 곳 없는 자들에게 의지처가 되어 주고, 보호자가 되어 주셨다. 

『법구경 주석서』와 『현우경』, 『경율이상』 등에 ‘가련한 여인’이었던 빠따짜라 비구니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의 대략은 이렇다. 

사위성에 한 부잣집 딸이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아름다운 딸이 혹여 손을 탈까 싶어 외출까지 금지하고 애지중지 키웠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의 뜻과 달리 심부름을 해주던 하인과 사랑이 싹트고 말았다. 결국, 몰래 집을 나간 두 사람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 정착해 몹시 가난하게 살아야만 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녀는 아기를 갖게 되었다. 산달이 다가오자 그녀는 남편에게 사위성의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오지 못할까 불안했던 남편은 아내의 부탁을 거절했다. 

또 세월이 흐르고 그 여인은 두 번째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아내는 산달이 다가오자 어린 아들을 안고 다시 친정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말렸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아내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뒤쫓았다. 그러는 사이 날은 저물고 폭우까지 쏟아졌는데, 인적 없는 길에서 산통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아내가 아기를 낳을 만한 장소를 찾아 어둑한 숲속을 헤매야만 했다. 그러다 그만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다. 아내는 비를 맞으며 남편을 기다리다가 나무 밑에서 혼자 아기를 낳아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아내는 독사에게 물려 죽은 남편의 시신을 근처 나무 아래에서 발견하였다. 가슴을 치며 통곡했지만, 핏덩이 아기를 안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인은 고단한 몸에 두 아이까지 데리고 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사위성으로 가려면 아찌라와띠 강을 건너야 했다. 하지만 밤사이 내린 폭우로 강물은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여인은 보따리에 두 아이까지 안고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 아이를 강가에 세워두고 먼저 갓난아기를 안고 보따리는 인 채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 언덕 위에 보따리와 갓난아기를 내려놓은 여인은 큰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강물로 들어섰다. 강물 한가운데쯤 이르렀을 때, 뒤돌아보니 큰 독수리가 언덕에 뉘어놓은 갓난아기를 채가려 하고 있었다. 놀란 여인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저었다. 이쪽 언덕에서 엄마만 기다리던 큰아이는 그게 자기를 부르는 소리라 여겨 물로 뛰어들었다. 결국 거센 물살이 큰아이를 휩쓸어버렸고, 갓난아기 역시 독수리가 유유히 채가고 말았다. 여인은 울부짖다 까무러치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다 사위성에서 오는 한 남자를 만났다. 다행히 그 사람은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 울부짖는 까닭을 묻는 그에게 여인은 말하였다. 

“한 아이는 독수리가 채가고, 또 다른 아이는 물살이 휩쓸어가고, 남편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답니다.”
여인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그에게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그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간밤의 폭우로 그녀의 친정집이 무너져 잠들었던 부모와 세 형제자매 등 일가가 몰살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결국 미쳐 버렸다. 갈가리 찢어진 옷에 거의 알몸으로 거리를 쏘다니면서 울부짖고 하소연하였지만 아무도 그녀를 반기지 않았고,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다들 혀를 차고 손가락질할 뿐이었다. 

정처 없던 그녀의 발길은 기원정사까지 닿았다. 마침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때라 많은 대중이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벌거벗은 여인이 다가오는 것을 본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그녀를 막아섰다. 사람들의 눈빛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너 같은 미친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멈추고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여인을 막지 마라.”  

벌거벗은 몸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다가온 여인은 휑한 눈동자로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정신을 차려 조심하고, 그대 마음을 고요히 하라.” 

그 말씀에 여인은 비로소 자신이 벌거숭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인은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주저앉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시자인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네 가사를 가져다 저 여인을 덮어주라.”

여인은 거리에서 늘 그랬듯, 하루 만에 남편과 자식과 부모 형제까지 모두 잃은 자신의 이야기를 울부짖으며 하소연하였다. 부처님은 그녀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따뜻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두려워 말라. 그대는 이제 그대를 보호할 수 있고, 그대를 인도할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이 엄청난 생사윤회 속에서 그대가 부모·자식·형제를 잃고 흘린 눈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라. 그대가 지금까지 흘린 눈물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물보다도 많으니라.”

그 자비로운 말씀에 여인은 정신을 차렸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이 되었으니, 그녀가 바로 빠따짜라 비구니이다. 

부처님은 이런 분이셨다.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미치광이를 ‘가련한 여인’으로 맞이해 법회 앞자리, 그것도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도록 허락하신 분이었다. 울분과 증오가 뒤섞인 두서없는 말도 끝까지 들어주고, 몸을 가릴 옷과 따뜻한 위로를 건넨 분이셨다. 

“저 여인을 막지 마라.”

세상의 모욕과 비난을 너끈히 감당할 대장부,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 곁에 서는 성자가 아니셨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한마디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