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다라수와 공작새

2017-11-28     심재관
야자수에 경배하는 사람의 모습. 산치 제1 스투파. 기원전 1세기경.

다라수多羅樹
경전을 읽을 때마다 가끔씩 불국토의 모습 속에서 특이한 묘사와 마주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불국토의 불당은 허공 높이 솟아 다라수의 높이보다 일곱 배 높이까지 치솟는다거나 다라수를 일곱 겹으로 성을 둘러싸게 심는다는 묘사 같은 것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대집염불삼매경大集念佛三昧經』에서는 이렇다. 

불공견아, 모든 다라수多羅樹에는 광명이 무수해서 볼만했으며, 미풍이 불면 미묘한 음성이 나서 듣는 사람들이 환희하고 기뻐하였는데 마치 사람이 음악을 연주해 온갖 미묘한 음성이 나오는 것과 같았다. 듣고 기뻐하지 않은 이가 없으니 이 다라수에 바람이 불 때에는 미묘한 소리가 나서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서 기쁘게 함이 이와 같았다.

이런 묘사와 마주칠 때마다 필자는 오리사orissa에서 가끔씩 올려다보았던 다라수가 떠오른다. 길가에 늘어선 높은 다라수들은 벵골만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잎들이 부딪치며 미묘한 소리를 내곤 했기 때문이다.  
경전에 자주 나타나는 이 다라수多羅樹는 바로 산스크리트어 탈라tāla를 옮긴 말이다. 탈라는 남부와 동부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자수로 흔히 팔미라Palmyra 야자라고 부른다. 경전 속에서 다라수는 가로수나 궁전의 담장에 많이 조림造林했는데, 바람이 불 때면 잎들이 부딪쳐 나는 소리를 마치 풍경風磬소리처럼 들리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옛 인도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원예 기술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일 거다.    
이 나무는 흔히 인도의 고대 시문학 속에 표현된 것처럼 8백여 가지의 쓸모가 있는 나무다. 가히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kalpavr.ks.a)라 불릴만하다. 흔히 우리가 아는 대로 이 나무에서 야자 설탕이나 야자 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기록물을 남기는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 야자수의 펄프는 꽤 수입이 괜찮은 인도의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심지어 인도의 시골에서는 여전히 옛날에 전승되어 오는 방식대로, 논농사를 위한 관계시설을 이 야자수를 이용해 만들기도 한다. 야자수를 적당한 길이로 토막 내어 안을 비운 다음 요즘과 같은 파이프 형태를 만드는데, 이것들을 서로 연결하여 논 근처의 연못 밑에서부터 논까지 연결하여 물을 댄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야자수가 곧고 길게 자라기 때문인데 많이 자란 경우는 30에서 40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경전에서 보는 것처럼 이 다라수는 그 나무 자체보다는 이 나무의 곧고 길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일찍부터 길이의 단위로 사용되었다. 어떤 경전에서는 보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쁜 마음에 일곱 다라수 높이의 허공으로 뛰어올라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또 어떤 경전에서는 불당의 높이를 일곱 다라수 높이의 허공에 지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경전마다 이러한 표현들은 거듭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생각해보면 이 높이는 생각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하지만 왜 하필 일곱 다라수일까.
오래전부터 인도에서 나무들은 신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불교도나 힌두교도들이 나무에 비단이나 우유를 공양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나무 가운데 하나가 또한 다라수이다. 이 나뭇잎을 이용해 경전을 제작하기 때문에 불교도에게 야자수는 특히 더 신성시되었을 수 있다. 야자 잎 경전을 흔히 패엽경貝葉經이라고 하는데 이 제작전통은 아직 스리랑카에 일부 잔존해있다.   
경전을 만드는 일은 몸을 밧줄에 의지해서 야자수 꼭대기로 올라간 다음 야자수의 잎을 따는 일로 시작한다. 잎은 아직 펴지지 않은 머릿순을 이용한다. 이것도 꽤 길어 사람 키를 훨씬 넘기는 경우가 많다. 머릿순의 겉껍질을 벗기면 접혀있는 어린 야자 잎 순을 구할 수 있는데, 이것을 칼로 주름을 따라 길게 타면 된다. 그다음 물을 끓여 여기에 소금과 강황 등을 넣고 잎을 삶는다. 잎을 더 부드럽게 만들고 부패를 나중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삶은 잎을 그늘에 말린 다음, 매끈하게 다듬은 원형 막대기에 걸쳐서 양손으로 잡고 재빠르게 잡아당기기를 오랫동안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잎 표면이 윤기가 나면서 반들반들해진다. 이 잎들을 포갠 후에 재단하고 가장자리를 인두로 지지면 이제 경전을 쓰기 위한 패엽종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을 마친 뒤에 비로소 사경寫經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경은 철필로 긁은 야자수 잎에 잉크를 먹인 뒤 닦아내는 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사경도 스님이 하루에 대여섯 장의 패엽에 기록하는 정도이니 경전 제작은 꽤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다. 
가히 8백여 가지가 넘는 야자수의 공덕 가운데 하나이다.    

  

야자수잎에 서사 된 불경. 대략 12세기경의 네팔 필사본.


공작새
공작(mayūra)은 인도의 국조國鳥다. 힌두교나 불교를 포함해 이슬람교까지 인도의 모든 종교는 이 새를 찬양한다. 공작의 멋진 풍모와 습생은 다른 조류와 쉽게 구별되기 때문에 왕과 귀족들의 권위를 대변하기 쉬웠다. 수컷 공작이 펼쳐 올린 꼬리의 모습은 화려하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의 깃털은 주로 그러한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왕의 권위와 영예를 대변한다는 점은 힌두 왕권의례 가운데 하나인 말 희생제(aśvamedha)에서 말과 함께 공작이 희생되는 점을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공작의 이러한 특징은 왕권의 권위와 명예를 넘어 인도 종교인들에게 수행자의 표상으로도 차용되었다. 평소 붓다는 이 새가 갖추고 있는 품격을 승려가 닮아야 할 덕목으로 새겨서 비구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예를 들면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작새는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하였다. 어떤 것이 그 아홉 가지인가? 공작새는 얼굴이 단정하고, 소리가 맑으며, 걸음걸이가 조용하고, 때를 알아 움직이며, 음식을 절제할 줄 알고, 항상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분산分散하지 않기를 생각하고, 잠이 적으며, 또 욕심이 적고, 은혜를 갚을 줄 안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공작새가 성취한 아홉 가지 법’이라고 하느니라. 현명한 비구들은 이러한 아홉 가지 법을 익혀야 하느니라.”

하지만 공작을 찬양했던 많은 이유 가운데 기품 있고 우아한 이 새의 외형적 모습보다 중요한 점은 공작이 독毒이나 독충, 또는 독뱀 등의 천적이며, 이들의 해악으로부터 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해독작용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인도 초기 베다 시대부터 민간에서 여러 해독작용에 이 공작을 이용해왔다. 『리그베다』나 『아타르바베다』에서 이러한 단서가 나타나지만, 인도 전통 의학서에 해당하는 『차라카상히타carakasam.hitā』에서는 독을 치료하는 제조과정에 공작의 쓸개를 사용하는 치료법을 남기고 있다.    

산치 스투파에 조각된 공작새의 모습. 기원전 1세기경.


공작이 이러한 해독의 효능을 지닌다고 보았던 것은 아마도 뱀과 독충을 쉽게 잡아먹는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때로 고대 인도의 왕들은 공작을 가까이 두었는데, 혹시 모르는 독살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이 들어간 음식을 공작에게 먹이면 꼬리를 펼치거나 특이한 울음소리로 반응하기 때문에 사전에 독살을 피하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독에 대한 저항력 때문인지, 이 공작은 뱀과 천적을 이루는 가루다(또는 금시조金翅鳥)와 동일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될 때가 있다. 인도신화에서 공작은 가루다garuda의 깃털에서 탄생한 길조로 묘사하는데, 같은 기능과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민간에서 강력하게 믿고 있었던 공작의 제독 능력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는 병에 걸린 왕비가 꿈에서 본 공작왕을 잡아달라고 왕에게 부탁하는 이야기가 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사냥꾼의 지혜로 생포된 공작왕은 자신을 목욕시킨 물을 마시고 주문을 외면 왕비가 치유될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공작왕은 신묘한 능력을 가진 의왕醫王의 새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공작의 모습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밀교의 주술과 다라니법을 통해 일체의 재난을 제거하는 공작명왕의 모습 속에서 그 후대의 발전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이 공작이 때로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과 연관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공작 깃털에 나타난 여러 원형의 문양을 마치 눈처럼 인식했던 것이고, 중생의 고통을 지켜보고 도움을 주는 관세음보살과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