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불광사 선덕 혜담 스님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다.”

2017-11-28     김성동

올해 7월 불광사 선덕인 혜담 지상 스님(69)은 두툼한 양장본 책을 냈다. 『무한 창조력을 발휘하는 길』. 은사인 광덕 스님의 ‘호법법회’ 법문을 세 권으로 묶었다. 일반 단행본보다 큰 판형이며 페이지도 1천 쪽이 훌쩍 넘는다. 일반 출판물이 아닌 1백 권을 소량 제작해 자료 성격으로 만들었다. 광덕 스님이 지난 1983년 1월부터 1994년 4월까지 대중에게 설했던 법문을 사제인 지성 스님이 풀고, 혜담 스님이 편집해 낸 것이다. 스님은 이 법문집을 내기 전까지 A4 용지 1천 장에 이르는 녹취록을 3년에 걸쳐 40여 회를 읽었다. 은사스님이 10여 년 동안 행했던 법문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은 것이다.

사진 : 최배문

|    마하반야바라밀이 순수불교선언의 시작
- ‘호법법회’에서 광덕 스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요. 

“순수불교선언에도 나와 있습니다. (안경을 고쳐 쓰며) 여기 보세요. ‘부처님이 보신 바로는 인간은 어느 누구의 피조물이거나 상관적 존재가 아니다. 사람의 참모습은 절대의 자존자自存者며 무한자며 창조자다. 일체 신성과 존엄과 가치와 권위는 그로부터 유인由因한다. 그것은 인간이란, 궁극의 진리인 불성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입니다. ‘인간이 신神이고, 인간이 부처님의 모습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모습이고, 자연의 모습이다.’ 이런 기조로 법문이 계속됩니다. ‘우리야말로 창조주다. 우리 자신이 창조주임을 믿고 실현할 때 일체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런 것이 광덕 스님의 불교관이고, 메시지입니다.”

- 이 순수불교선언 속에 마하반야바라밀 사상은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는 ‘순수불교선언은 불교사상운동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다시피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잘못된 수행 관행에서 벗어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근본 뜻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반야행자들입니다. 반야경으로 대승불교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듯이 순수불교선언도 반야사상에 입각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염송도 반야경에 나옵니다. 저는 광덕 스님의 순수불교선언 자체가 마하반야바라밀의 시작이고, 뿌리고,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 반야경에 나오는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을 ‘큰 지혜의 완성’으로 해석하는데, ‘마하반야바라밀’은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생명 자체입니다. 다른 말로는 부처님입니다. 이것을 반야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이라고 합니다. 큰스님의 사상은 ‘이 세상에 불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왜냐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본래 부처이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과 나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를 반야경에서 ‘반야바라밀’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이는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요.”

- 광덕 스님은 불자들에게 늘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50일 기도를 일 년에 두 번 하는데, 매일 천 번을 하자, 5천 번을 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죠. 처음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할 때에는 마하반야바라밀과 내가 떨어져있습니다. 염송하는 자와 염송을 당하는 마하반야바라밀이 따로 있는 겁니다. 하지만 ‘마하반야바라밀’과 ‘염송하는 나’는 둘이 아닙니다. 불광사에 처음 오는 신도님들은 이게 잘 받아들이지 않아요.”

-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절에서는 신도들을 ‘업보중생業報衆生’이라고 합니다. ‘업보중생아, 그 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참회해야 한다.’ 그럽니다. 근데 불광사에 오니, ‘너는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너는 부처님과 같다. 부처님이 갖고 있는 모든 공덕생명을 너는 갖고 있다.’고 하니 잘 안 받아들여집니다.”

|    우리 모두는 마하반야바라밀이다
-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고 ‘부처님’이라면 초심자는 좀 낯설고,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80년대 말에 『대품반야경』을 2년 동안 한글로 번역하였는데, 그때 번역하며 큰 실수를 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염송 불로쇠사不老衰死’라는 말이 나옵니다. 보통 해석하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 늙지도, 쇠하지도, 죽지도 않는다.’입니다. 이건 거짓말이죠. 저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 쇠약하게 늙지 않는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근데, 7~8년 전에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반야바라밀의 입장에서는 늙고 죽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늙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왜? 마하반야바라밀은 부처님 자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아, 내가 번역을 잘못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지만, 나와 분리된 것이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이 내 생명이고, 창조주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겁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이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마하반야바라밀이 자기 모습을 나타낸 것이 삼라만상입니다. 이를 현현顯現이라고 합니다. 편집장님도 나도 모두 마하반야바라밀의 자기화입니다. 내 생명이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우리 모두, 삼라만상이 모두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너와 내가 모두 동일생명입니다.”

- 광덕 스님께서는 화두참선도 많이 강조하셨고, 법문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선어록을 대부분 읽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선禪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과 내가 모두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선에서도 동일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다 맞습니다. 방 거사가 마조도일 스님을 찾아가 묻습니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가 누구입니까?’ 마조도일 스님이 답합니다. ‘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셔라.’ 그 말을 듣고 방 거사는 깨닫습니다. 어떻게 서강의 물을 다 마실 수 있겠어요. 의문이 납니다. 방 거사는 알았습니다. 내가 서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동일생명입니다. 적지 않은 화두가 동일생명을 적용하면 해결됩니다. 물론 이는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넘어선 자리가 있습니다.”      

- 스님께서는 1969년 해인사로 출가해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께 계를 받았습니다. 이후 광덕 스님을 10년 가까이 모셨습니다. 광덕 스님과 관련해 가장 기억 남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께 계를 받고, 스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계를 받았으니 정식 스님이 된 셈입니다. 근데 원주스님이 계속 나를 행자처럼 대했습니다. 신도들 밥상을 차려오라고. 후원에서 밥상 차려서 신도 앞에 내놓았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니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스님인데, 계속 신도 밥상 차리라고 하니…. 벼르고 있다가 광덕 스님께 따지면서 일러바쳤습니다. ‘원주스님이 저에게 신도 밥상을 차리라고 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나요? 뭔가 잘못됐습니다.’ 스님께서 한참 듣더니 조용하게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지상아, 중생공양衆生供養이 제불공양諸佛供養이다.’ 이 말씀을 듣고, 앞이 캄캄하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웃음). 지금도 항상 큰스님의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다. 어느 경전에 나오는 말씀인가요?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 광덕 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절을 강조하셨습니다. 스님께서도 5만 배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범어사 강원에 있을 때 광덕 스님께서 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백일 동안 10만 배를 해라.’ 스님께서는 계를 받는 제자들 모두에게 절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강원을 다니면서 소임도 했으니, 하루에 1천 배를 할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스님께 말씀드려 하루에 5백 배를 했습니다. 백일 동안 5만 배를 마쳤는데 하심下心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왜 절을 하라고 하셨는지 이해됐습니다. 그 때 절했던 경험이 향후 중노릇하면서 큰 재산이 됐습니다.”

- 어느 자리에게 스님께서는 ‘광덕 스님께서 살아계시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광덕 스님께서 옆에 계시면 어떤 점을 여쭤보겠는지요. 

“스님께서 살아계실 때 내가 공부한 경지를 게송으로 보여드렸는데, 퇴짜를 맞았습니다.(웃음) 이후 내가 공부한 것을 보여드릴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올봄 무렵에 내 나름의 자신감도 생기고 그것을 게송으로 지었습니다. 내가 이 경지를 스승이 살아계실 때 보여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승이 계시지 않습니다.”  

|         스승이 없다면, 선어록으로 스승을 삼는다
혜담 스님은 지난 2008년에 큰 병고를 만났다. 마하반야바라밀 화두에 몰두하다 뇌혈관이 터진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다.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것이 가장 좋은 수행방법이다.”는 스승의 말씀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후 스승의 호법법문 1천 쪽을 수십 번 읽으면서 마하반야바라밀은 절대의 자리이고, 생사生死가 없는 자리인 것을 알았다. “큰스님께서는 10년간 선방에 계시면서 이미 그 자리를 봤습니다. 그 자리를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선방에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곧바로 도심으로 나와 전법에 목숨을 내놓은 것입니다.” 

- 광덕 스님께서 평소 가까이했던 스님들은 누구셨죠?

“은사스님은 여러 큰스님들과 교류가 많았습니다. 청담 스님, 성수 스님, 일타 스님, 석전 스님, 혜암 스님, 석주 스님, 지관 스님, 홍법 스님 등 두루두루 친하셨습니다. 특히 성철 스님의 가장 친한 사제가 광덕 스님입니다. 성철 스님은 광덕 스님께서 낸 책의 서문을 많이 써주셨고, 월간 「불광」에도 글을 많이 썼습니다.”

- 광덕 스님 외에 스님께 영향을 주신 분이 있다면 어떤 분인가요?

“혜암 스님(1920~2001)입니다. 제가 69년도 첫 행자생활을 해인사에서 했는데, 그때 혜암 스님을 모셨습니다. 당시 혜암 스님이 주지스님을 하셨는데, 주지 소임을 하면서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셨습니다. ‘아, 저런 분도 있구나.’ 하고 깊이 감동했습니다. 이후에도 종종 혜암 스님이 수행했던 지리산 칠불암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수좌계에서는 혜암 스님을 마지막 수좌라고 할 정도죠.”  

- 스님은 젊었을 때 선방에서 정진도 하셨고, 또 선어록을 대부분 탐독하셨습니다. 한국의 선이 역할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요즘 스님들이 위빠사나에 심취하는데, 참된 수행법은 선禪입니다. 위빠사나는 관觀입니다. 참선은 지관止觀입니다. 지관은 나의 헐떡거림을 멈추면서 나 자신을 보는 겁니다. 지관이 한국 선의 특징입니다. 오늘 한국 선의 문제는 의심을 일으켜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의심을 일으킨다는 겁니다. 선은 의심입니다. 무자無字 화두를 받아도 의심이 안 됩니다. 왜 무無라고 하는지 의심이 가야 하는데,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심이 안 갑니다. 그러면 의심이 가는 화두를 찾아야 합니다.”

- 어떻게 찾습니까?

“그건 자기가 찾아야 합니다. 지금 선방의 병폐가 이것을 딱 짚어서 말해주는 스승이 없습니다. 옛날 선지식들은 수좌가 찾아오면 이 수좌가 지금 어디가 막혀있는지 알고, 거기에 해당하는 것을 줍니다. 요즘 선지식들은 그게 안 됩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표적인 선어록 중에서 하나를 자기가 찾아야 합니다. 나는 『벽암록』을 생각합니다. 100칙 가운데 나에게 맞는 하나를 찾아서 의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선어록을 보면서 자기가 가장 의심이 일어나는 부분을 화두 삼아 의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의심이 일어납니다.”

- 선禪을 하다가 위빠사나로 가신 분들의 이유 중 하나가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입니다. 

“선은 지관이 함께 있습니다. 지관쌍수止觀雙修입니다. 위빠사나는 관입니다. 어떤 것이 수승할까요. 젊은 스님들이 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진 : 최배문

|    나는 마하반야바라밀의 존귀한 사람이다
- 스승이 없는 시대에 선어록에 의지해 선어록을 스승 삼아 수행하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스승이 없으면 포기할 것인가. 아니죠. 자기가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선서禪書라는 수많은 스승이 있는데요. 최근 방장스님들의 법어를 보면 아주 이상합니다. 방장이면 방장의 법문을 해야 하는데, 방장스님들이 주지가 해야 할 법문을 하면 안 됩니다.”

- 방장의 법문과 주지의 법문은 어떻게 다를까요?

“방장스님의 법문은 법을 일러주는 법문입니다. 주지스님의 법문은 착한 일하라, 보시하라 등입니다. 많이 다릅니다.”

- 스님은 80년대 일본에서 반야경 공부를 하셨고, 또 귀국해 『대품반야경』을 번역하셨습니다. 일본으로 유학간 이유도 마하반야바라밀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반야사상이 주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큰스님께서 늘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시는데, 그 마하반야바라밀을 알려고 온갖 책을 뒤졌는데 알 수 없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이 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일본에는 반야경전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원 없이 봤습니다. 그때는 반야바라밀과 내가 따로 있었습니다. 여기를 보세요. 『대품반야경』 「무작품」 제43입니다.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만약 반야바라밀을 염송한다면, 이 선남자 선여인은 한량없고 가없으며 헤아릴 수조차 없는, 생각할 수도 없고, 칭량秤量할 수도 없는 복덕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반야바라밀은 이것이 크고 진귀한 보배(大珍寶)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이것을 크고 진귀한 보배라고 하는가? 이 반야바라밀은 능히 지옥, 축생, 아귀 및 빈궁한 사람을 없애고, 능히 왕족이나 귀족, 바라문, 대부호가 생기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모든 생명들이 다 반야바라밀의 자기화다.’를 뜻합니다. 부처님과 내가 동일생명同一生命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삼라만상이 마하반야바라밀의 현현顯現입니다. 이것이 반야사상의 핵심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마하반야바라밀의 존귀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줘야 합니다. ‘너는 무엇보다 존귀한 존재야.’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그렇게 자랍니다.” 

- ‘너는 무엇보다 존귀한 존재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자주 이야길 해줘야겠습니다.

“예. 자주 이야길 해주세요. ‘네가 창조주이기 때문에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 광덕 스님께서 재가신도 신행을 위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 보시기에 지금 재가신도 신행에 가장 필요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많은 불자들이 ‘내 생명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불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입니다. 큰스님께서는 항상 ‘우리는 고구마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구마는 땅 속에서 큽니다. 큰스님께서는 ‘고구마처럼 우리 스스로 충분히 성장했을 때 우리를 드러내자.’고 하셨습니다. 그게 우리 불광의 시작입니다. 그나마 큰스님께서 이렇게 드러내셨으니까 한국불교가 지금 도심포교를 이만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중요한 말씀입니다. 지금 도심포교하시는 스님들은 광덕 스님께 큰 빚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스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신지요. 

“(웃으며) 나는 다음 생에 이 땅에 다시 올 것을 확신합니다. 그때 나는 어떤 수행자가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