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 한국불교 신행에 사경寫經을 수혈하자

2017-11-28     김성동

●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인근의 삼진사三津寺는 직장인들이나 쇼핑을 나온 사람들이 잠시 들러 사경할 수 있는 절이다. 사찰에서 제공한 사경지에는 주로 불보살과 『천수경』 등 경전구절이 30자 정도 새겨져 있다. 한 번 사경을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비용은 사경지 값 500엔을 받는다. 사경에 참여하는 사람은 20-30대 여성에서 60-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시내에 나왔다 들르는 사람도 있고, 퇴근 후 오는 사람,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아 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1-2명씩 찾아오던 사람들도 계속 늘고 있고, 친구를 초대해 함께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경이 끝난 후 절에서 스님들과 상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교계 큐레이션 미디어인 ‘불광미디어’가 지난 9월 24일 전한 소식이다. 

●    대만의 전법 사찰들은 대부분 사경당寫經堂을 갖추고 있다. 신도들이 언제나 사찰에 와서 사경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신도들이 어디서나 사경할 수 있도록 수많은 종류의 사경 책자가 유통되고 있고, 직업과 연령에 관계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수행이기에 사찰에서도 사경 수행을 적극 권하고 있다. 사경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 ‘전에 느껴본 적이 없었던 편안함과 고요함’을 체험한다. 이를 계기로 사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거나 인근에 있는 절에 다니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으니 중생을 교화하는 사경의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만의 대표적 사찰인 불광산사는 사경당 네 곳을 운영할 정도로 사찰의 관심은 물론이고 신도와 관람객들의 참여가 많다. 이 소식은 불광산 인간통신사 리뤼차李律察 기자가 이번호 「불광」에 소개했다. 

●    우리나라의 사경 역사는 이미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신라 백지묵서白紙墨書 『대방광불화엄경』(국보196호)’에서 연기 법사의 발원문은 사경이 단순히 경을 베끼는 것뿐 아니라, 지극한 신행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사경지에는 사경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와 사경하는 의식, 사경의 공덕 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경 수행의 절정은 고려시대다. 『화엄경』, 『묘법연화경』, 『금강경』, 『아미타경』 등 수많은 경전이 사경되고, 금 사경과 은 사경, 변상도變相圖를 그리는 등 사경의 화려함과 예술성을 한껏 높였다. 나라와 국왕을 위한 사경도 많았지만, 개인 신도의 발원을 담은 사경문도 적지 않았다. 고려 문종 9년(1055년) 김용범이 사경한 ‘『대반야바라밀다경』권 175(보물 887호)’에는 조부와 부모의 명복을 발원한 내용이 나타난다. 

●    지금 한국불교 사경 수행의 현실은 초라하다. 선조로부터 1천 년이 넘는 사경 역사를 물려받았음에도 사경 수행하는 사찰은 손에 꼽을 정도다. 백중 등 특정한 날에 사경지를 볼품없이 인쇄하거나 복사해서 신도들에게 나눠준다. 그나마 일회성이다. 사경하는 마음과 사경의 방법을 알려주는 스님들은 드물다. 사경의 공덕과 회향에도 우리 선조들이 행했던 그 지극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원컨대 내가 닦은 이 공덕을 널리 일체중생에게 나누어 나와 남이 모두 함께 성불하소서(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우리 선조들이 사경을 마친 후 쓴 발원문이다. 사경 수행의 과정이 왜 중요한 수행이며, 사경의 공덕을 어떻게 회향하는지 알 수 있다. 이제 도심포교를 사명으로 하는 사찰은 불자와 대중들이 언제든지 사경할 수 있도록 사찰 시설의 일부를 사경실로 개방하고, 신도들이 주기적으로 사경 수행할 수 있는 사경반을 만들자. 한국불교 신행의 흐름이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