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百中)과 우란분재(盂蘭盆齋)

불교 세시풍속

2007-09-15     관리자


8월의 세시(歲時)
양력으로 8월 3일이 음력 7월 7일이니 바로 칠석(七夕)이다. 칠석날 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칠석을 전후한 옛 풍속을 되새기기 위하여 차분히 살펴보자.
견우(牽牛)는 목동이요, 직녀(織女)는 베짜는 처녀라 하겠는데 둘이는 지극히 사랑하는 사이인데도 하늘나라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져 만나지를 못한다. 은하에는 다리가 없으니 사랑의 회포를 풀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안 지상에 사는 까마귀와 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에다 오작교(烏鵲橋)란 다리를 놓아 주는데 그 날이 바로 1년에 한번인 '칠석'이다. 그러나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새벽닭이 울기 전이라 해마다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견우와 직녀는 또 다시 1년 동안 밭을 갈고 베를 짜면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
이런 옛 이야기를 뒷받침이나 하려는 듯이 칠석날에는 까막 까치를 볼 수 없으며 어쩌다 있는 것은 병들어 하늘을 날아가지 못한 것이라 한다. 칠석이 지나 다시 나타난 까막 까치의 머리는 다리를 놓느라 모두 벗겨졌으니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은 무턱대고 신기하기만 했다.
또 이런 칠석날 밤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만난 기쁨의 눈물이라 했고 이튿날 새벽에 비가 오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 했다.
소년 소녀들에게는 또 남다른 칠석의 풍속이 있다. 처녀들은 '직녀성'에 베짜기와 바느질 잘하기를 빌었으며 소년들은 '견우성'과 '직녀성'을 소재로 삼아 시짓기[作詩]를 뽐내곤 했다.
이제 공해로 찌든 도회지의 밤하늘에는 은하수마저 잘 보이질 않게 되었지만 아직도 시골에 가면 견우 직녀의 이야기와 함께 또렷한 은하수가 보이는 이로 하여금 살며시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양력 8월 8일이 입추(立秋)이니 어느덧 가을의 문턱인가 싶고, 17일이 말복(末伏), 23일이 처서(處暑)이니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한다.
11일(음력 7월 15일)이 우란분재(盂蘭盆齋). 백중(百中)이고, 14일이 지장재일, 20일에 관음재일이 들어 있다.
'백중'은 불가에서는 지성껏 섬기는 효도 행사가 있는 날이자 농군들의 여름 잔치가 겹치는 날이기도 하다.

'백중'과 '우란분재'는 같은 날
'백중'을 백종(百踵) 또는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이라 부른다.
한편 '백중'은 '백종(百踵)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백중'이란 '하얀 발뒤꿈치'란 뜻이다. 농군들이 김매기가 끝나는 것이 이 무렵이고 보면 발에 흙을 묻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뒤꿈치가 하얘진다고도 하고 그와는 달리 여름 내내 김을 매다보니 발뒤꿈치가 하얘졌다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불교에서 유래한 백중은 '우란분재'에서 찾는다. 음력 7월 15일은 절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치는 날이다. 이 날 돈독한 신심으로 재를 올리고 스님과 대중에게 음식과 과일을 나누면 돌아가신 부모는 거슬러 7대 까지 극락에 가고 살아 계신 분은 백수를 누린다 했다. 그런데 이날 스님들이 뒤꿈치를 정갈히 닦는 습속이 있어 백종으로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부모가 살아 계실 때 불법을 능히 전해 드리지 못해 돌아가신 후 나쁜 곳으로 가시게 한 자식의 불효를 씻는 의식으로 '우란분재'가 경건히 치루어져 온다는 해석도 있다.
이 밖에도 주위의 고생하는 대중에게 정성을 다하여 선행을 베풀면 백배의 보답을 받으며 스님들의 고행을 도우면 살아계신 부모, 돌아가신 부모께 복을 드리고 농군의 고달픔을 내것인양 하면 가을에 풍년이 든다 했으니 이 모두 사해(四海)와 같은 불심의 원력을 일컬음인가 한다.
'망혼일'이라 하는 것은 백중날 밤에 술, 고기, 밥, 떡, 과실 등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조상께 올리는 위령제이다.
다음은 농어촌 백중 풍속을 알아 보자.
농촌에서는 백중을 전후하여 장(場)이 서는데 '백중장'이라 한다. 머슴을 둔 집에서는 하루를 쉬게 하며 장에 가 물건도 사고 놀이판에도 들러 흥취를 돋구게 한다. 그러니 백중을 전후하여 '난장'이 서고 씨름판은 장정들의 힘겨룸으로 떠들썩하다.
어촌에서는 이날 밤 횃불을 들고 해삼, 소라, 문어, 전복 등을 따는 사람이 많았다. 질이 좋은 해산물을 얻게 된다 하여 특히 제주도에서는 밤을 새워 일을 한다.
효도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겹치는 '우란분재'와 '백중'은 불자에게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온 겨레의 보편적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니 반갑기 그지 없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밀양 백중놀이
경상남도 밀양에서는 해마다 백중날 규모가 큰 '백중놀이'가 펼쳐진다. 이 지방에서는 백중을 백종(百踵)이라고도 하니 부모를 위하여 공양하는 음식을 백 가지나 장만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 끝에 여흥으로 노는 북놀이에는 다섯의 북이 등장하여 이른바 '오방놀이'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경상도 가락의 신명진 늦은 굿거리장단에 '덧배기춤'을 추니 역동적이면서 멋스럽다.
우리나라 인간문화재 가운데 최고령이신 하보경(河寶鏡, 90세)옹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 68호 '밀양 백중놀이'의 인간문화재로서 7대째 이고장에 살아오신 토박이 중의 토박이시다.
이제 기력이 부쳐 마음껏 북놀이를 할 수 없지만 지금도 밀양시 내 1동 [밀양 백중놀이 전수교육관]에서 진땀을 흘리신다.
신선인 양 회고도 긴 수염을 훨훨 날리시며 시범을 보이시던 하옹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샘솟듯이 솟아난다.
일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긴 백중놀이판의 '오북놀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북채를 번쩍드신 구십 노인 앞에 우리 모두는 옷깃을 여며야 한다.
'우란분재'와 '백중놀이'가 함께 있는 8월의 세시를 살피며 하해같은 조상의 슬기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명심행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