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없이 살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목기의 명인 김을생(金乙生)

2007-09-15     관리자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허네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허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허네
전북 남원군 산내면 백일리. 지리산 기슭에 위치한 실상사(實相寺)밑에 가면 김을생(60세)씨 목기 공장과 전시장이 있다.
저 건너 보이는 지리산 정상을 바라보며 부르는 김을생 씨의 구성진 창가락이 텁텁하게 가슴으로 스민다. 김을생 씨는 가끔씩 이렇게 소리를 내어본다. 이곳 남원에서 태어나 전라 목기기술중학교(1951년 개교하여 1968년에 폐교된 목기기술학교로 지금의 김을생 씨 바루공장이 있는 곳에 위치했으며, 김을생 씨는 이 학교의 1회 졸업생이다.)와 전주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공병대위로 예편한 그는 몇 년의 객지 생활을 한 것 이외에는 평생을 이곳에서 목기 만드는 일을 계속해왔다. 조부 김영수(金永守)씨와 부친 원달(元達)씨로 이어져 내려온 3대에 이른 가업이었다.
"예로부터 이곳 남원이 목기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온 것은 지리산 주변에 많은 은행나무, 오리나무, 저나무, 물푸레나무, 소태나무 등과 천연 옻이 풍부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원에서도 특히 이곳 산내면 백일리가 중심이된 것은 실상사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지요. 한때는 수천명의 스님들이 공부하는 대가람이었다고 합니다. 실상사 스님들로부터 바루 만드는 기술과 옻칠 기법이 마을 사람들에게 전수 되었던 것입니다. 목기는 정밀한 공예기술도 중요하지만 옻칠이 그 생명력입니다. 천연 옻칠은 그 침투력이 강해 색깔이 변하지 않으며 좀이 슬지 않고 냄새가 없어 오래 사용할 수 있어요. 옻칠을 제대로 해서 만든 목기는 오래 담아 두어도 변질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목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많은 손질이 간다. 용도에 맞는 나무(바루는 은행나무, 제기는 물풀레나무나 오리나무, 물병과 밥통 찬합은 오리나무, 밥그릇은 물푸레나무 등)를 구해 자르고 초갈이 재갈이는 기계로 하지만 5푼 칼로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나, 사포질, 생옻칠은 반드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초갈이 한 뒤 6개월간 말리거나 찐 후에야 재갈이를 하고, 그 연후에는 일일이 그 흠을 잡아내는 곡서의 과정을 통해 본살처럼 만든 다음 칠을 해야 한다. 칠을 하고 말리고 또 칠을 하고 말리는 과정이 7~8번 되풀이 된 연후에야 비로소 목기가 완성된다. 어떤 것은 10번 이상 칠해야 하는 것도 있다. 대개 목기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8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김을생 씨 말에 의하면 자연산 옻은 침투력이 강해 평생을 목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벗겨지지 않으며, 썩지 않고 미생물의 번식을 막으며, 불에 잘 타지 않는다고 한다.
"수연낙명(隨緣樂命). 제 인생의 좌우명입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자신의 인연으로 받아들여 즐겁게 살아야지요.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저는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지요. 이생에 태어나 대가없이 살다가 자기 인연이 다하면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하시라도 돌아갈 준비를 하며 살아야지요. 어느 정도 배우면 누구나 목기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러나 만드는 사람의 근본이 어떠냐에 따라 목기는 달라져요. 그 마음자세가 중요하지요. 자신이 만든 목기로 인해 상대방에게 희열을 주고자 하는 정신이 배어있지 않으면 안돼요. 더불어 나누는 기쁨보다 더 큰 보람은 없지요. 모든 일에는 근본이 바로 서야 해요. 근본이 어지러우면 만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플라스틱 그릇이 한창 성했던 무렵, 목기를 만들던 사람들은 한 사람 두 사람 마을을 떠났다.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기 만드는 일을 자신의 평생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김을생 씨는 그 일을 버리지 않았다. 지리산에 올라 나무를 져다가 만든 바루를 등에 지고 전국의 사찰을 돌기도 했다.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산길을 목바루를 지고 땀흘리며 오르내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싸 짊어지고 다녔던 보자기는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뭐든지 쉽게 하려고 하지요. 우리의 전통 공예가 제대로 전승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전통공예는 그냥 보고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예요. 배우는 사람의 정성과 혼이 들어가야 해요."
현재 김을생 씨가 운영하는 금호공예품장에는 30여 명의 도제들이 바루, 불기(佛器), 제기, 술병, 다반, 찬합, 함지박 등 목기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이 나이가 든 동네 사람들이다. 그런데 김을생 씨의 외아들 연수(25세) 군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목기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민예품 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상을 받았고, 1983년에는 전국 민예품경진대회에서 특선을 했다. 그리고 올해는 목기 부문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명인으로서 공인을 받은 만큼 김을생 씨가 만드는 목기는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니 자연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전시장이 넓어지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요즈음 들어 우리의 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목기의 수요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커다란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애써 내보이려 하지도 않는다.
돈 많이 버는 것은 망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니 욕심을 내지 말라고 아들에게도 누누히 말한다. 지금까지 축적된 자신의 부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라 마을사람 모두의 것이라 생각을 한다. 돈이 없어 도시로 못간 마을 사람들의 땀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니 만큼 그 몫 또한 마을 공동의 몫이기도 한 까닭이다.
어렸을 때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던 김을생 씨는 아들 연수 군에게도 엄격한 교육과 함께 한학을 가르친다. 다행히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잘 따라준다.
공장 바로 옆에 있는 제심서원(濟心書院)은 김을생 씨가 시간 날 때마다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마을 어린이들에게 한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곳이다. 방학때면 40~50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서당이 된다.
얼마 전에는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토굴 하나를 마련했다. 매일 새벽 5시면 그곳에 올라 관음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다시 올라 그곳에서 하루를 정리한다.
"주위에서도 그런 말을 합니다만 저는 아무래도 전생에 출가수행자였던 듯 싶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좋아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라 그러지요. 천 개의 눈으로 삼라만상을 살피고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생을 아무렇게나 살겠습니까. 내세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많이 달라요. 불자들은 보면 바로 알 수 있어요. 욕심없이 편안하지요. 욕심없이 살면 마음이 맑아지기 마련이지요."
김을생 씨 바루공장에는 많은 스님들이 오며 가며 들르신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큰스님들도 여러분 계신다. 월하 스님, 청화 스님, 일타 스님, 혜암 스님.....
제기를 만드는 것에 비하면 바루를 만드는 것이 훨씬 많은 공정이 든다. 그에 비해 수요자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러나 바루 만드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스님들의 공양기 이기 때문이다.
남원에는 현재 7~8 군데 목기 공장이 있지만 바루를 만드는 곳은 두세 군데에 불과하다. 그러나 목기 만드는 일이 바루 만드는 일에서부터 비롯된 그 근본을 김을생 씨는 계속해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목기의 본고장에서 목공예를 전승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분야에 정성을 다하여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거늘 이후 자손들은 가업이 길이 빛나도록 갈고 닦고 할지니라."
세상의 바람에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의 목기공예 전승에 일가를 이룬 김을생 씨가 손수 쓴 유훈이다. 전시장 입구에 조각된 그 유훈이 길이 빛나 자손 대대로 이어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명심행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