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의 평화모니] 하하하

2017-09-28     윤구병

음력 오뉴월(양력 칠팔월), 땡볕에서 김을 매고 있노라면 온몸이 비지땀으로 멱을 감고 옷은 젖은 물걸레가 된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그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밥 먹어유!”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 부처님 말씀도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다. 하하하!

김태완이 옮기고 토를 단(역주한) 『백장어록』에 이와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호미로 땅을 파는 울력을 하고 있었는데(김매고 있었는데), 어떤 승려(중노미)가 북소리를 듣고서 호미를 들어 올리며 “하하하!” 하고 크게 웃고는 절로 돌아갔다. 이에 백장이 말했다.
“훌륭하도다! 관음觀音의 문門으로 들어가는구나.”
뒤에 백장은 그 승려를 불러서 물었다.
“그대는 아까 무슨 도리道理를 보았는가?”
그 승려가 말했다.
“저는 배가 고팠는데 북소리를 듣고서 밥을 먹으러 돌아왔습니다.”
백장은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조당집祖堂集』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도리가 아직 바로 서지 못하고 먼저 복과 지혜를 얻는다면 마치 천한 것이 귀한 것을 부리는 것과 같으니, 도리가 먼저 바로 선 뒤에 복과 지혜가 있는 것이 낫다.”

이때 ‘도리’란 무엇인가? 백장이 이르는 도리는 ‘김맬 때 김매고 밥 먹을 때 밥 먹는 것’이다. 손발 놀리고 몸 놀려 제 앞가림도 하지 않으면서 힘들게 남이 마련한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를 가로채서 그것을 복으로 여기고, 공밥 먹으면서 지혜를 얻으려고 책 나부랭이를 뒤적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것은 아닌 때 밥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컨대 지금 있니 없니 하는 모든 법들은 전부 때아닌 식사를 하는 것이니, 또한 나쁜 음식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더러운 밥을 보배 그릇에 담아 놓는 것이니, 계戒를 어기는 것이고, 헛된 말이고, 아무것이나 마구 먹는 것이다.”(김태완의 번역을 그대로 따랐다.)

“아, 이제 기대고 있는 목숨을 보면, 쌀 한 톨에 기대고 나물 한 가닥에 기대니, 밥 먹을 때 못 먹으면 굶어 죽고, 물 못 마시면 목말라 죽고, 불 지피지 못하면 얼어 죽는다. 하루가 빠지면 살지도 못하고 하루가 빠지면 죽지도 못한다. 네 가지 큰 것(땅, 물, 불, 바람)을 입어 (살)자리를 붙드니, 먼저 이른 이(앞서간 노미)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는 것과는 달리, 불에 들어가면 타 죽고 물에 들어가면 빠져 죽는다. 불에 타 죽어야 한다면 타서 죽고, 물에 빠져 죽어야 한다면 빠져 죽는다. 살고자 하면 살고, 죽고자 하면 죽는다. 가고 머무름이 스스로 말미암으므로 이런 사람은 자유로움이 있다.” (이 대목은 내가 옮겼다.)

“옛날과 사람이 다른 게 아니라, 다만 옛날과 사는 게 다를 뿐이다.(不異舊時人, 秪異舊時行履處)”

어려운 말 하나도 없다. ‘쌀’을 ‘미곡’으로, ‘밀’, ‘보리’를 ‘소맥’, ‘대맥’으로 ‘이야기’를 ‘담론’으로, ‘말다툼’을 ‘논쟁’으로 바꾸지 않고도 할 말 다 한다. 백장답다. 안 그런가?

요즈음은 말길이 달라져 있는 놈, 힘센 놈들이 저보다 더 가진 게 많은 놈, 더 크게 힘을 휘두르는 놈들이 사는 나라에서 이 말 저 말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뜻도 모르고 쓰고, 그 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무식한 놈’, ‘교양 없는 년’으로 싸잡아 깔보고 짓누르는 판이어서 절집 중노미들도 이걸 본받아 어려운 글 끼적여놓고 ‘모르면 네 탓’이라고 윽박지르니, 뭇산이들은 입도 벙긋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불법佛法이 살길을 열어줄 수 있겠는가? 백장 말 그대로 깨끗한 그릇에 더러운 음식 담아놓은 꼴이다.

내가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쉬운 말로 합시다.’ 하고 말하면 발끈하는 놈년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쩌다 처음 만나 입에 발린 말로 ‘영광입니다.’를 내뱉는 것들에게 “제가 태어난 곳은 함평이고 그 옆에 영광이라는 데가 따로 있습니다.”라고 대꾸하면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지가 나 사는 꼴을 얼마나 지켜보았다고, 나를 ‘존경’까지 한단 말인가?

백장이 얼마나 인정머리 없는 중노미였는지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중노미가 꺼이꺼이 울면서 법당에 들어서자 백장이 묻는 말
“지금 뭐하는 거여?”
그 중노미 가로되,
“부모님이 함께 돌아가셨는디 (초상 치를) 날 잡아 주셔유.”
백장 그 말 듣고
“내일 함께 묻어버려!”

‘죽은 사람 얼른 묻고 산 사람 살길 찾아야지.’ 정떨어지는 말이지만 바른 말이다.

바른말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바로 살지 못하니, 바로 살릴 길이 없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다 빈소리거나 헛소리일 뿐이다. 다문 입에서 꿀꺽 삼켜지는 말조차 거짓말이 되었다. 

지난 구월 초에 나는 서울에 올라가 닷새 동안 청와대 앞 공원에서 ‘일 인 시위’를 한 적이 있다.(청와대 사랑채가 있는 공원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일 인 시위’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침 일찍(7시 반쯤) 그 자리에 가서 비닐자리 깔고 ‘오체투지’ 삼배를 하고 새 염불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를 읊고, 뒤이어 ‘나는 대한국민이 아니요, 나는 조선인민도 아니요,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요. 우리는 둘이 아니요, 우리는 하나요.’라고 외치고 나서 다시 삼배하고…. 하기를 한 시간 반 동안 했다. 그리고 변산으로 되돌아왔다. 그 뒤에 문재인이 러시아에 가서 푸틴을 만나 북녘에 ‘원유 금수’를 부탁하고, 그 사이에 성주에 ‘사드’ 포대 4기가 성주군민들 반대를 무릅쓰고 배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이 캄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메리카합중국을 방문했을 때 맨 처음으로 북녘에서 피난하는 사람들 십여만 명을 태우고 부산항에 들어온 배에 타고 있던 아메리카합중국 군인들 무덤이 있는 공원에 참배를 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리고 그 행사가 미국 국민들의 호감을 샀다는 기사를 보고 걱정스럽고, 이 이벤트를 누가 기획했을까 궁금했는데(이런 행사는 없느니만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북녘 눈으로 보면 ‘공화국’을 마다하고 남녘으로 간 사람들은 ‘친일파’나 ‘악덕지주’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적’이다. 그들 눈에 문재인은 그 ‘배신자’의 아들이다. 그렇잖아도 문재인이 남북평화를 입에 올리는 게 긴가민가하던 참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 뒤로 서해안에서 ‘한미군사훈련’을 벌인 것까지 보태서 ‘말로만’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 ‘일본 영토’ 상공을 거쳐 아메리카합중국의 군사기지가 있는 ‘괌’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댔다고 발끈하고 나섰으니, ‘아, 한·미·일은 한통속이로구나. 우리와 평화협정을 맺을 뜻은 눈곱만큼도 없구나.’라는 생각을 굳혔으리라는 짐작이 든다.

한쪽에서는 다른 나라 코앞에서 전쟁놀음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거기에 대한 앙갚음으로 ‘미사일’을 쏘아대고…. 이래서야 어떻게 평화가 오겠는가?

‘대북제재’에 러시아와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다? 소가 웃을 일이다. 게다가 ‘사드 배치’와 ‘원유 금수’를 내세워 중국과 러시아를 대한민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북녘 정권을 길들인다? 누가 이런 ‘국방외교정책’을 써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디밀었지?

내 눈으로 보기에는 (부처님 눈으로 보기에도 그럴 게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외교는 가시밭길이다. ‘이명박근혜’의 길을 그대로, 그보다 더 빨리 밟고 있는 듯하다. 다시 백장 선사의 말로 돌아가자. “큰 쓰임이란, ‘큰 몸은 숨어 있어서 모습이 없고, 큰 소리는 작고 희미한 소리 속에 숨겨져 있다.’는 말처럼 마치 나무속의 불과 같고 종과 북 속의 소리와 같아서 인연이 갖추어질 때가 아니면 그것을 있니 없니 하고 말할 수 없다.”

“부처는 여기저기 끼어들어 뭇산이들에게 배와 뗏목을 만들어 주면서 그이들과 함께 아픔을 견디니 그 애씀이 끝 간데없다. … 부처도 빈 몸이 아닐진대 고통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에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어긋난 말이니 내키는 대로 이런 말 내뱉지 마라.”
문재인이 성주군민들의 아픔을 알까?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로 자식 잃은 부모들의 아픔을 ‘나 몰라라’ 했듯이, ‘이 사람들의 아픔쯤이야.’ 하고(내 아픔으로 삼지 않고), 전쟁광 트럼프와 아베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눈치나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하하.                                                                         

 

윤구병 철학자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 2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