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견문록] 금강선원 기초참선

집심執心 집신執身, 마음 몸 운전 잘하는 법

2017-09-28     유윤정

여기 수행수칙이 있다. 내려놓기(放下着), 지금 그리고 여기(卽今此處), 눈 가는 데 마음 두기(心存目想),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如實知見), 내 안 들여다보기(回光返照), 늘 깨어있기(惺惺寂寂).
『기초참선』 ‘일주일에 한 번 조용히 앉아 참된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 적혀있는 90쪽짜리 책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서울 개포동 금강선원 제31기 ‘기초참선’ 반의 교재다. 선원장 혜거 스님이 직접 지도한다. 고요하게 지금 여기 깨어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참된 나를 만나는 일. 제31기 기초참선의 첫 수업이 열리던 날, 수업을 기다리며 수행수칙을 세 번 내리 읽었다.

사진 : 최배문


|    참선을 할 수 있는 몸과 정신을 키우는 훈련을 하다

9월 11일에 시작해 12월 11일까지, 14주 동안 참선의 기초를 배운다. 기초참선반은 매년 봄과 가을에 모집하는데, 15년 이상이 되었다. 평일인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열리는 수업임에도 참가 인원이 마흔 명쯤 된다. 연령층의 폭도 20대부터 70대까지 넓다. 남성과 여성이 고루 앉아 있다. 초발심으로 모인 이 자리. 이 순간부터 도반이 된다.

혜거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기초참선은 참선을 할 수 있는 몸과 정신을 키우는 훈련이다.” 첫날, 교재와 함께 나눠준 A4용지에서는 기초참선반의 수행목표를 이렇게 설정하고 있다. “첫째,집중력·지구력·절제력·선정력 향상, 번뇌망상 다스리기, 삶속의 조화. 둘째, 기초를 철저히 다져 바르게 참선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함.” 그래서 14주의 시간은 알차다. 

혜거 스님은 14주 중 10주에 걸쳐 자각종색慈覺宗賾 선사의 『좌선의坐禪儀』를 강의하고, 이어 수식관數息觀을 지도한다. 수업은 혜거 스님이 강의를 하고, 질의응답을 나누면, 참가자들이 30~50분가량 실참한다. 이후 수행일지를 작성하고 조별모임을 갖는다. 기초참선반의 수료를 앞둔 마지막 주에는 3일 동안 하루 세 시간씩 가행정진한다. 가행정진을 마쳐야 졸업이다. 기초참선을 마치고 나면 금강선원 시민선방에 방부를 들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렇게 초심자들을 선의 세계로 이끄는 혜거 스님은 탄허 스님의 제자로, 스승의 회상에서 대교과를 수료하고 역경을 보좌했다. 1988년 금강선원을 개원해 선방을 열어 참선을 지도했고 청소년을 위한 참선 프로그램도 꾸준히 개발해 왔다. 금강선원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은 기초참선을 비롯해, 참선 고급반, 능엄경, 화엄경, 일체유심조, 선하불교대학 등으로 혜거 스님이 모두 직접 맡고 있다. 종무소에 걸린 월간 계획표에는 수업을 제외하고도 일정이 빼곡했다.

사진 : 최배문

 

|    심존목상心存目相, 눈 가는 데 마음 두기

혜거 스님은 초심자의 바른 참선을 위해 어렵지 않은 말을 선택한다.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설명이 쉽게 이해되니 잠시라도 들었던 의혹이나 의심이 사라지고 참선에 대한 믿음만 남는다. 

“내가 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은 신神 때문이에요? 자기 때문이에요? 내 몸뚱이와 마음을 내가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달려있지요.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운전 잘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고만 나면 다행, 잘못하면 끝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저녁 이 자리에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 마음, 내 몸 운전 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스님은 몸뚱이 운전을 잡을 집執 자, 몸 신身 자를 써서 ‘집신執身’이라고 했다. 마음을 붙잡는 것은 ‘집심執心’이다. 내 몸과 마음이 함부로 못 가게 잘 운전하는 것, 몸 붙잡고 마음 붙잡는 훈련을 배우는 것이 참선이라는 것이다. 

바르게 앉는 법과 시선을 두는 법을 알려준다. 스님은 오른손으로 하나의 표를 들었다. 명상표다. 이 명상표는 참선을 배우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다.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참선이 익숙해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스님은 명상표를 앉은 자리에서 1미터 정도 앞에 내려놓았다. 참선을 할 때는 이 명상표에 그려진 흰 원에 시점을 고정시킨다. ‘심존목상心存目相, 눈 가는 데 마음 두기.’ 혜거 스님만의 맞춤 지도법이다. 스님은 “이 표는 한군데 응시할 수 있는 법을 배울 때까지만 필요합니다. 이걸 놓치지 않고 보면 분명히 어떤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고 했다.

스님은 “이 명상표를 놓고 참선하면, 참선보다 더 쉬운 공부가 없다.”고 말한다. 스님은 강조한다. “시선을 잘 집중해보면 분명 뭔가가 보이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스스로 궁금증이 생길 거예요. 왜 이러지? 왜 이런 것들이 생기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면은 그때부터 참선입니다. 스스로 궁금증이 생겨야 참선이지, ‘이것을 궁금하게 여겨라,’ 하고 남이 가르쳐줘서 하는 것은 참선이 아니예요. 내 것이 아니잖아요. 이해가 되나요? 이 말을 잘 이해하면 기가 막히게 공부 잘 할 수 있습니다.”

유의해야 할 사항도 참가자들에게 당부한다. “참선하면서 나오는 마음을 보며 ‘나오지 말라’고 싸우지 마세요. 마음이 흘러나오면 나오는 대로 놓아두세요. 나오는 생각을 억지로 막지 마세요. 아무 생각이 안 나면 그것도 큰일입니다. 우물을 파면 물이 나와야 정상이지, 안 나오면 그 우물은 못 써요. 마음이 계속 밀고 나와야 합니다. 마음은 정지되면 안 돼요.” 강의는 이어지고 참가자들은 집중한다. “마음이 계속 떠오르더라도 명상표를 놓치지 말고 집중하십시오. 그 시선에 마음을 얹으세요. 책을 열심히 읽으면 글 읽기가 늘고, 글을 열심히 쓰면 글 솜씨가 늘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면 그림 실력이 늡니다. 곧 참선을 열심히 하면 참선이 깊어집니다.”

강의를 마치고, 30분 좌선에 들어갔다. 반가부좌를 하고 눈을 반개하며 명상표를 응시한다. 터진 콩 자루에서 콩 쏟아지듯 생각이 와르르 쏟아진다. 생각은 흘러가는 채로 두자. 시선을 명상표에 둔다. 의욕은 그렇지 않은데 생각도 시선도 자꾸만 흐트러졌다.

‘하루에 30분은 무조건 놓치지 않는 훈련을 하라.’ ‘안 놓치기 훈련을 하고 난 후에는 30분 동안 일어났던 일을 거짓 없이 수행일지에 써라.’ 스님이 내준 숙제다. 스님은 100일만 빼놓지 않고 좌선을 하고, 일지를 쓰면 자기의 업이 보인다고 했다. 업을 알면 사라진다. 이게 바로 회광반조回光返照다. 하루 30분만 자리에 앉으면 인생이 달라진다. 집으로 돌아가 매일 30분씩 명상표를 두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 내 눈과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사진 : 최배문

 

|    우리는 저마다 각각의 섬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한 주 동안 열심히 숙제를 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자신과의 약속. 환한 표정이 당당하다. 수업은 지난주에 제출한 수행일지를 혜거 스님이 발췌해 읽으며 수행점검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명상표를 응시하며 느낀 변화와 과정에 대해 스님이 피드백을 준다. ‘다른 도반들은 이런 경험을 했구나.’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이어 『좌선의』를 강의한다. 『좌선의』는 좌선에 필요한 이론과 실습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선禪 수행자의 지침서다. 오늘 배울 구절은 ‘좌선 전의 서원誓願’이다. 스님은 이 문장은 반드시 외우라고 강조했다. 참선의 첫 번째 목표라 했다. 

‘부夫 학반야보살學般若菩薩은 선당기대비심先當起大悲心 하고 발홍서원發弘誓願하야 정수삼매精修三昧하야 서도중생誓度衆生이요 불위일신독구해탈이不爲一身獨求解脫爾이니라.’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먼저 대비심을 일으키고, 큰 서원을 발하며, 정밀하게 삼매를 닦아서, 맹세코 중생을 제도할 것이요, 자신만을 위해 해탈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이익을 주기 위해 참선을 해야 한다. 보살수행자는 중생과 세상을 위해 발심해야 한다. 거듭된 당부. 풀이를 듣고 머리에 가슴에 새겨본다.

이어진 40분의 실참 시간. 40여 개의 좌복이 깔려있는 법당에서 우리는 저마다 각각의 섬이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나의 섬에서 일어난 일을 일지에 빼곡히 적는다. 이 일지의 내용은 실참을 마치고 이어진 조별모임 시간에 함께 나눈다. 10여 명이 한 조다. 여기엔 구참자가 한 명씩 들어와 있다. 참선하며 일어나는 의문을 그때그때 점검해 도와주는 역할이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20대 신참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18분 이상 집중 못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오늘은 언제 40분이 됐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명상이 너무 잘 되어서 놀랐다.” 구참자는 궁금증을 풀어준다. “그게 함께하는 힘이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데도 선방에 나오는 것은, 함께할 때 느낄 수 있는 집중의 몰입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신참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은 수행하며 어떤 느낌을 받았다는데, 저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어요.” 구참자는 신참자가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자신의 경험을 선례로 들며 이야기한다. “피아노 바이엘 배우면서 쇼팽 안 된다고 하는 거랑 같아요. 초점만 안 놓쳐도 분명 변화된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구참자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면 스님께서 직접 점검을 해준다. 이날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 하나 있다. “참선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수행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수행이다.”

 

|    거울 노릇하려면

참선하는데 화두를 들지 않아도 되는가. 혜거 스님께 수행을 지도하시면서 화두는 따로 안 주시냐고 물었더니, 스님의 답변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필요할 때, 사람의 업에 따라서.” 화두는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참선을 하면 육식六識이 아주 맑아지고 경쾌해지고 예민해집니다. 정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맑아져 있어요. 그럴 때 자리에 앉으면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화두를 받아야만 참선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선을 진짜로 안 해본 거예요. 화두도 남의 것이야. 내 안에서 일어난 것을 내가 궁금해 할 줄 알아야 해요. 스스로 떠올린 궁금증이 가슴에 꼼꼼하게 사무치면, 끝도 없이, 점점 더 궁금증이 커져갑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궁금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가면 ‘어떤 하나’가 궁금하기 시작해요. 같은 주제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궁금할 때, 이때가 화두를 들 때입니다.”

참된 참선을 위해 14주 동안 정진하는 까닭이다. 이제는 제법 손때 묻은 『기초참선』 책을 펼쳐든다. 스님은 지금 앉은 자리에서 조금 더 가까이 몸을 앞으로 숙이고서는, 눈을 천천히 응시하며 이야기를 건넸다.

“그래서 맨 앞의 참선 수칙 여섯 가지를 달달 외우고 지켜야 합니다.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참선이에요. 기초참선은 이걸 잘 지킬 수 있는 습관이 들 때까지 하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는 누가 시켜서,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와서 하는 것입니다. 습관이 들었으니까. 죽으나 사나 자기가 공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