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선禪 밖의 선

2017-09-28     박재현
그림 : 이은영

만해를 되살리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너무 가상하다. 이런 노력은 주로 문단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속되어 왔던 것 같다. 문단의 주목도에 비해서 그동안 불교계에서 만해에게 보낸 관심의 정도를 생각해 보면 좀 남사스러울 지경이다. 오죽하면 만해를 ‘스님’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선생’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의논하는 일까지 벌어져야 했을까.

만해를 기리는 행사 중에서도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것이 만해축전이 아닐까 싶다. 이 행사는 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등에서 주최하는데, 인제군 일원에서 며칠을 두고 대규모로 진행된다. 이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단과 관련된 이들이다. 행사 중에 만해대상 수상자는 특히 주목을 끄는데, 올해 제21회 수상자는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지난 3년간 8만 명을 구조한 구호 단체 ‘하얀 헬멧’이었다. 또 지난 2015년에는 신영복 선생이 수상했는데, 공교롭게도 수상하고 반년 정도 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에서도 매년 6월경에 만해를 기리는 추모다례재를 열고 있다. 만해의 생애에서 선학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은 때문인지, 매년 행사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는 듯하다. 이 행사의 성격은 만해를 추모하고 기리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 또 어쨌든 법리상 조계종과는 별개의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인지라, 불교계 전체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행사에는 만해의 유일한 혈육인 한영숙 여사가 매년 참석하고 있어 주목을 끄는데, 여사가 1934년생이니 만해는 겨우 열 살을 넘긴 딸내미를 남겨놓고 세상을 뜬 것이 된다.

얼마 전에 나는 만해통일문학축전이라는 행사에 다녀왔다. 올해가 제3회 행사라고 하니, 아직 많이 알려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행사명에 ‘통일’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 행사 역시도 참여자들의 상당수가 문단 관계자였지만, 애초에 만해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좀 더 부각하고 싶어 ‘통일’이라는 말을 포함시킨 눈치였다. 이 행사는 원로라고 불릴 만한 연세 높은 어르신들이 겨우겨우 어렵게 끌어왔던 것 같다. 대표자인 백발의 노신사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관계부처를 발이 부르트도록 드나들며 협조를 끌어낸 사실을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만해에 관해서는 학술적 연구성과 외에도 다양한 저작물이 많다. 영상물로 제작된 것도 적지 않고, 학창시절에는 수업시간에도 배웠다. 이런 여러 경로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해에 대해 보거나 들었으니, 그는 역사 속의 여러 인물들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묘한 것은, 만해는 어쩌면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도 없는 어중간한 인물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만해의 간과된 모습 가운데 하나는 선사禪師로서의 만해인 것 같다. 선을 주제로 한 만해의 글을 보면 어떤 선지식과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다. 선에 대한 그의 안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 바로 선외선禪外禪, 즉 ‘선 밖의 선’이다. 선의 바깥에서 선을 도모하면서, 그는 참담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때부터 그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만해는 출가 수행자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에 대해 민감했다. 깨달은 자가 마지막에 시장통으로 돌아간다는 십우도十牛圖의 입전수수入廛垂手가 선의 본령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선 밖의 선’이라는 말에 담아냈다. 여기에는 세상과의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던 당시의 불교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포되어 있다. 그는, 먹물 옷을 입고 이뭣고(是甚麽)를 중얼거리는 수행자 가운데 속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비통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리고 화석화된 선과 차별화하여 선 밖의 선을 들고나온 것이다.

만해에 따르면, 조선의 선은 구세救世의 방편이 되지 못하고 독선과 염세의 변명이 되어 있었다. 『조선불교유신론』 가운데 「사원의 위치」를 논하는 부분에서는 이러한 기조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사원이 지리적으로 산에 위치하는 것이 독선과 염세의 분위기를 더욱 조장한다고 봤다. 그래서 조선 불교의 폐단인 염세와 독선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세는 곧 사회와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 관계 속에서만 역할이 나온다. 역할의식은 곧 관계의 자각이다. 금욕적 수행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인 데 반해서, 책임이란 타자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책임은 개체의 독존을 전체의 결속으로 교환하며, 고요함을 번잡함으로 바꾼다. 그렇게 불교는 마침내 세상과 접속하게 된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독선이다. 독선은 관계의 병리현상이다.

만해는 선 밖의 선이야말로 진정한 선이라고 확신했다. 석가모니는 물론이고 중국 조사선과 비불교도들까지도 포함하는 선의 근본정신이 바로 선외선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오늘날까지 아는 자가 없는 것은 천고의 유감”이라고 그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만해의 개인적 취향이나 성향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근대 시기는 윤리적으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윤리의 문제가 과연 개인의 심정이나 양심 혹은 의식의 차원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인지를 전면적으로 반성하게 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사회에서 윤리의 문제를 개인의 양심 내지는 마음의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근대 시기에는 사회구조적인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러한 사조는 옳든 그르든 근대 동북아시아 전체를 휩쓸었던 주요한 흐름이었다. 

근대 이전의 윤리문제가 하부구조와 유리된 상부구조만의 문제였다면, 근대 이후로는 하부구조 쪽으로 무게중심이 급속히 옮겨갔다. 윤리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의식이나 양심의 차원에 국한되어 논의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만해의 선외선, 대중불교, 대처帶妻 수용 제안 등이 모두 이러한 정신사적 흐름 위에 있다. 이러한 맥락을 간과하게 되면, 근대시기 불교계에서 나타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생뚱맞아 보인다.

그 사례로, 대처를 말하면 가장 먼저 들이대는 것이 계율과 파계 같은 말들이다. 그런데 만해의 관점은 전혀 다르다. 그는 이것이 파계 여부를 다툴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비록 결혼이 계율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행하기 어렵다고 해도, 마땅히 결혼이 불교의 시기와 근기에 이롭다 할 때에는 방편으로 결혼을 행해 때와 근기에 적응하다가 다시 결혼이 불교의 시대적 상황에 이롭지 않은 때가 온다면, 그때에 가서 이 방법을 거두어 옛날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는 바, 그렇게 하는 경우 누가 잘못이라고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대처를 두고 파계 여부를 따지는 것은 개인의 심정을 기준으로 윤리성을 판단하는 전근대적 윤리관이다. 이에 비해 만해는 근대가 내포하고 있는 윤리적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윤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그 역할과 책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간파했던 것이다.

보름쯤 지난 일이다. 서울 지역에 있는 한 사찰에 별 용무 없이 다녀왔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맑은 하늘이 너무 아까워 산에 오른 김에 들렀다. 꽤 큰 규모의 대웅전 외벽에는 늘 그렇듯이 십우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마다 한 귀퉁이에 제목이 작게 적혀 있었는데, 맨 마지막 열 번째 그림에 입전수수入廛手垂라고 적혀 있었다. 수수垂手와 수수手垂 사이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절 입구에는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라고 새겨진 돌기둥이 서 있었는데, 그건 혹시 수수手垂라고 적힌 걸 보더라도 굳이 따지려고 들지 말라는 경고였던 것일까. 만해의 눈을 빌어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 돌기둥은 당장 돌려세워 놔야 한다. 수행자가 세상에 나갈 때 잘 보이도록 세워야 비로소 선외선이 되기 때문이다.                                 

 

박재현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저술로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깨달음의 신화』, 만해, 그날들』 등이 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겨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