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화가의 붓다의 마음] 이 삶이 꿈이라는 걸

2017-09-05     황주리
그림 : 황주리

며칠 전 참 이상한 꿈을 꾸었다.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는 꿈이었다. 

돌리면 빙빙 돌아가는 중국음식점의 커다란 원형 식탁 앞에 다들 앉아있었는데, 식사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중에는 외할머니, 아버지, 동생, 작은 이모부, 화가 이만익 선생님, 중학교 시절의 은사 김길수 선생님, 초등학교 동창 남인현, 그 외에도 한 스무 명쯤이 둘러앉아 있었고, 꿈에도 그리던 애견 베티가 생전처럼 내 발치에 앉아 있었다. 사회를 맡은 사람이 나가더니 내 환갑을 기념하여 축사를 한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십여 년 전에 죽은, 외사촌 오빠의 고종사촌 형이었다. 소녀 시절 언젠가 참 잘생긴 그를 좋아했던 아스라한 기억이 떠올랐다. 고3 어느 겨울인가는 그 사람을 모델로 인물 데생을 하기도 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어느새 환갑이라는 사실은 꿈속에서 더 실감이 났다. 와주신 손님들을 보니 거의 이승에서는 다시 못 볼 사람들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늙지 않은 사람들을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음식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도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손님 중에는 살아있는 내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번호표를 받아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것일 뿐, 산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죽음을 이미 경험한 분들에게 저 세상에 관해 묻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분들이 매 순간 깜짝 놀라게 달라지는 이승을 더 궁금해할 것만 같았던 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화가 이만익 선생님이 축사를 해주셨는데, 내용은 대충 이랬다. “삶은 시간 예술이다. 지나가는 매 순간을 색칠해라. 정성껏 온 마음으로.” 깨보니 아무도 없었다. 정말 며칠 뒤면 내 나이 환갑이다.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