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의 연화유치원 원장 자용(慈用) 스님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아이들에게 쏟는 부처님 사랑

2007-09-15     관리자


오전 한나절, 뿌연 서울 하늘을 벗어나자 초록색 물결이 한창인 산굽이와 더없이 파란 하늘이 눈 속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무릎까지 논에 담근 채, 더러는 논이나 밭 한켠 두런두런 어깨를 맞대고 새참일까 싶은 것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농부들의 모습도 차창 밖으로 자주 보였다. 지금이 올 한해 농사를 위해 그네들에게는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간이리라.
세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평창의 모습은 한적하고 작은 여느 읍의 모습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이러한 곳에 강원도 지역내 가장 훌륭한 시설을 갖춘 유치원이 있다는 사실이 다소 놀랍기까지 한 생각이 들었다.
극락사는 번듯한 절집일 거라는 상상과는 달리 바로 눈앞에 보이는 도량의 규모는 앞의 유치원 건물과는 달리 너무도 협소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자연 시선은 깔끔하게 보이는 적벽돌의 건물로 모아졌다. 담이 없어서일까 절과 유치원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다만 담이 있었던 듯한 자리에 커다란 살구나무와 또다른 나무(나중에 알아 보니 가죽나무라고 했다.)가 그늘을 만들어 주며 번듯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삼배를 마친 후 비로소 찾아들어간 유치원에서 연화유치원의 원장이자 극락사의 주지 스님이신 자용(慈用)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6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유치원은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였어요. 더욱이 이런 지방 읍에서의 유치원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그런데 1966년 연화유치원은 첫회 졸업생이 57명이나 될 정도였어요. 그리고 첫 졸업생의 딸아이가 작년 유치원을 졸업했고 둘째가 또 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아버지와 그 자녀가 동문(?)을 이루는 특이한 역사도 갖고 있지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일까 자그마하고 앳돼보이기까지 한 자용 스님께서는 연화유치원의 보물이라며 1회 졸업생들의 낡은 사진첩을 내보여 주신다.
연화유치원은 월정사의 직할포교당인 극락사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1966년 3월 탄허 큰스님 명의로 등록되어 초대원장을 현 대각사의 도문 스님이 지내신 바 있으며 현재까지 약 3,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자녀를 위해 한 가족이 모두 연화유치원을, 극락사를 드나들었을 터이니 곰곰히 생각해 보면 3,000여 명이라는 숫자는 적어도 만 명 정도가 극락사의 부처님과 인연이 닿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때 연화유치원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어린이 교육과 그 포교 효과에 일찍 눈뜬 타종교의 전폭적인 유치원 개원과 대처스님들의 투자미비와 방치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적으로 시설과 교육이 뒤떨어지게 되자 원생의 수가 13명 정도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절에 다니는 신자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기독교나 천주교의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게 된 것이다.
바로 자용 스님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92년 극락사의 연화유치원과 첫 인연을 맺게 된 당시의 일이었다.
"전주 기신사에 주지로 있을 때였습니다. 월정사 주지 스님의 권유로 92년 3월 3일 이곳에 와보니 2층 건물에 2학급이라던 말씀과는 달리 성냥곽만한 지금의 놀이방으로 있는 건물 하나뿐이었지요. 월정사에서는 만반의 준비까지 다해 위촉장까지 만들어 주지스님이라고 소개를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 두 달 동안 속으로 전주와 이곳을 저울질 해보기도 했지요. 어느 곳에서 제가 발전 가능성이 있을까 말이에요. 지금은 법당이니 요사채니 다 고쳐놓았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흙이 떨어질 정도였어요."
스님은 현재는 열악하지만 이런 곳에서 한번 어린이포교를 위해 일해보자는 월정사 주지스님의 간곡한 부탁에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93년, 설계부터 시작해 문짝 하나까지 스님이 직접 고르면서 직영을 하다시피 지어나간 연화유치원은 200여 평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지어졌고, 이전의 유치원 건물은 놀이방으로 꾸며 놓았다. 그리고 현재는 300평 규모의 자연 학습장을 꾸미고 있다. 연화유치원의 교육 프로그램 중에는 매주 월요일 2층 모자관음상을 모신 강당에서 참선, 삼귀의를 비롯한 불교적인 교육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신도님들의 희생과 이해에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신도분들이 이 건물을 짓기 위해 군민 체육대회에서 커피장사를 하는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예요. 이 건물을 짓는데 6·7억 정도 들었는데 현재는 8,000만원 정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사찰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유치원에 쏟아 붓고 있는 거지요. 처음에는 논을 매립해 유치원을 짓겠다고 했더니 많은 스님, 신도님들이 평창지역에 이렇게 큰 유치원이 유지되겠느냐 하는 걱정, 비난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의 뜻이 있었는지 현재 130명의 원아가 공부하고 있을 정도로 강원도 내에서 가장 시설도 잘 돼 있고 교육도 잘해서 견학을 올 정도입니다."
연화유치원은 평창 지역 내의 맞벌이 부부와 바쁜 농촌 일손들을 위해 대도시에서조차 쉽지 않은 유아놀이방 시설을 개원,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 포교와 함께 지역복지사업의 한몫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스님이 처음 어린이 포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하운사 강원 시절 책을 사보기 위해 아르바이트식으로 시작한 어린이법회를 통해서다.
그 인연으로 80년대 초 승가대 재학시절에도 어린이법회를 맡아 달라는 요청에 의해 어린이법회를 계속하게 되면서 '87년에는 여수여천 불교협의회에서도 3년간 어린이법회를 창립, 지도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당시 보살피던 학생법회 학생들이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 사회인이 되어 지금까지 찾아오고 또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희 유치원의 경우, 통일교 목사님의 아이들도 들어와 있고 천주교인, 기독교인도 들어와 있는 등 타종교 가정의 아이들도 20여 명 정도 들어와 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부모님들은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들이 너무 좋아하시죠. 이렇게 작은 촌에서 사월 초파일 제등 행렬을 하는데도 육칠백 명 정도 해요. 유치원 자모들과 하게 되면 천주교나 기독교, 통일교회에 다니는 자모들도 다 나와서 함께 제등행렬을 하시죠. 그런 걸 보면서 이제 이 일에 확신을 갖게 되었지요."
일주일에 한번 이제는 인근 보덕사의 유치원까지 돌보고 계시다는 스님의 말씀이다. 스님은 취재 중 잠시 양해를 구하고 원아들을 직접 유치원 차량에 태워 귀가지도를 시켜주고 돌아오셨다. 그런 정성때문인지 일년에 한번 여름 불교학교에는 5백여 명의 어린이들이 모이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불교계 유치원은 인가된 수만 전국적으로 160여 곳, 비인가 유치원까지 합하면 2백5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전국의 유치원이 8천여 곳이 된다 하니 불교유치원의 수적 열세가 가히 짐작된다. 처음부터 대량의 물량공세와 지원으로 유치원 개원과 교육에 뛰어들고 있는 타종교의 모습을 보면서 대도시도 아닌 이곳에 이렇게 위치하고 있는 연화유치원을 보니 자못 어깨가 으쓱해졌다.
요즘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한층 깊어졌다. 바로 다음 세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조기교육 및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도 또한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유아기에 불성을 일깨워주고 보리의 씨앗을 키워주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제 불교계도 어린이들에게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포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기이다. 그들을 위한 준비는 바로 한국불교 내일을 위한 준비일 터이므로.
허허, 부처님이 웃어보이시는 극락전 앞 마당을 가로질러 아이들이 백여 걸음 뛰어 간다. 놀이방 앞 미끄럼틀이며 그네에 매달려 터트리는 웃음, 웃음 머금은 아이들의 앳된 미소가 여름을 한창 앞두고 조금씩 엷어져가는 아카시아 꽃내음처럼 향기롭기만 하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신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