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으로 올리는 수륙재(水陸齋)와 농신제(農神祭)

불교 세시풍속

2007-09-15     관리자


7월의 세시(歲時)
음력 6월 15일을 '유두'라 한다. 유두란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 즉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풍속을 줄인 말인데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은 일을 떨어 버리고, 한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 해서 너도 나도 개울을 찾았다.
유두 무렵이면 수박 참외 등 새로운 과일이 나니 먼저 조상께 올리는데, 이를 '유두차례'라 했다.
선비들은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계곡을 찾아 풍월을 읊으며 하루를 즐기니 유두연(流頭宴)이라 한다.
유두날 음식으로는 '유두면', '수단', '건단', '연병' 등이 있다. 유두에 국수를 먹으면 장수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 해서 집집이 장만하여 이웃에 나누기까지 했다.
'수단'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손으로 비벼 구슬처럼 만든 후 쪄서 찬 꿀물에 넣어 먹는 것이다. 꿀물에 넣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은 '건단'이라 한다.
'연병'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방망이로 문질러 동글납짝하게 만든 다음, 기름에 튀기거나 깨와 콩을 묻혀 꿀을 바른 것이다.
유두날 팥죽을 쑤어 먹으면 풍년이 든다 해서 역시 시절음식으로 삼았다.
양력 7월의 달력을 보면, '소서'가 음력 6월 10일, '초복'이 21일, '대서'가 23일, '중복'이 음력 7월 1일에 들어 있다.
이른바 삼복더위 가운데 초복과 중복이 이 달에 들었으니 여름의 한 복판이다.
복중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서늘한 산간 유곡을 찾아 삼계탕이나 닭죽을 쑤어 먹는 풍속도 있었다.
한편 피서를 겸하여 명산대찰을 돌며 영험하다는 약수를 찾는 인파로 끊이질 않았으니 멀리 석왕사(釋王寺)의 약수, 삼방(三防) 약수, 강서(江西) 약수, 달기 약수를 비롯하여 서울에도 천호동 약수, 남산, 정릉 등이 붐볐다.
또한 약수터 근처나 깊은 계곡에는 크로 작은 폭포가 있어 '물맞이'하는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꾀꼬리 우짖는 듯 했다.
역시 보기드문 풍속이 되고 말았는데, 찬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이라는 것이 있었다.
흐르는 산골물에 발을 담그고 앉았노라면 송사리들이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힌다. 탁족은 주로 선비들이나 규중의 아녀자들이 하루 날을 잡아 물놀이 겸 들놀이로 즐기는 것이니 음식도 풍족히 장만했다.
양력 7월 15일이 지장재일, 21일이 관음재일이다.

호국 영령의 넋을 기리는 수륙재(水陸齋)
'수륙재'란 본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바다와 육지를 헤매고 있는 고혼들을 위하여 나라에서 올린 '재'인데 요즘은 사찰의 주재로 이루어지고 있다.
'수륙재'의 깊은 뜻은 선인(仙人)은 맑은 물을 먹고 살며, 귀신은 맑은 땅을 먹고 산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호국 영령을 위무(慰撫)키 위한 위령제는 어느 나라에나 있어온 것인데 우리 민족이 불교의식으로 치루어온 수륙재는 그 어느 위령제보다 겸허하다 하겠다.
그의 유래를 중국의 양나라 무제(武帝)때 (서기505년)로 잡는 의견이 있는 바,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고려 광종(光宗) 21년(서기 970년)에 수륙재를 올리고 있는 기록이 보인다.
이어서 조선왕조의 태조가 진관사(津寬寺)에서 수륙재를 올려 건국 전후에 희생된 영가들의 천도를 빌고 있다.
근세에 들어 수륙재는 나라에서 주관하기보다 사찰과 불심 깊은 불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수륙재가 6,7월에 많이 올려지고 있다.
개인보다는 한 공동체, 일개 집단보다는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수륙재'가 새롭게 올려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성으로 올리는 농신제(農神祭)와 기우제(祈雨祭)
'농신제'를 지방에 따라서는 용신제(龍神祭) 또는 '논굿'이라 한다. 이른 봄에 시작하여 한여름까지 애써 가꿔 논 농사가 잘 되도록 치성을 드리는 것인데 그 방법 역시 차이가 있다.
산간지방에서는 찰떡을 해서 논의 물꼬 밑과 논둑 밑에 한 덩이씩 놓는다. 이렇게 하면 논둑으로 물이 새지 않아 농사가 잘 된다는 것이다.
전라북도 무주(茂朱)지방에서는 부꾸미(전병)에 송편처럼 소를 넣은 떡을 해가지고 새벽에 논에 가서 고사를 지낸다.
진안(鎭安)에서는 유두날 밀가루로 전을 부쳐서 논이나 물꼬 웃배미에 놓거나 찹쌀가루로 부꾸미를 부쳐서 논에 갖다 놓는다. 그러면 새벽녘에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먹기도 하는데 이처럼 기름에 지진 떡을 놓는 것은 논에 기름이 뜨게 해서 '멸구'를 없애기 위한 방편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물이 귀한 다랭이 논에는 논둑에 청솔가지를 사방에 꽂고 금줄 을 쳐서 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는 등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비가 자주 와서 물이 귀하지 않을 때는 별문제이지만 음력 6월이면 대개 논에 물이 흡족하기를 바래서 갖가지 방술이 생겨났는가 싶다.
그러나 '논굿'하면 아무래도 풍물패(농악대)를 앞세우고 농군들이 마을의 논둑을 고루 밟으면서 '지신(地神)밟기'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습속이라 하겠다.
이처럼 지신밟기를 하면 논둑이 단단해지는 곳은 물론이요, 돌아 다니면서 무너진 곳이 있으면 손을 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기우제'도 농신제나 마찬가지로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치성임은 물론이다.
옛날에는 지나친 가뭄이나 장마가 다 나라님(임금)의 부덕함에 있다하여 임금이 나서서 머리를 조아렸음은 오늘에 되새겨 볼만한 일이다.
불교에도 기우와 관련된 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 해룡왕경(海龍王經) 등 많은 경전이 있고, 스님의 법력에 의하여 비를 내리게 한 예를 옛 문헌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대자연의 조화에 겸허하면서, 온 누리의 평안과 풍요를 염원했던 절실한 원력이 그립기만 하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신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